삶에서 항상 붙들고 있어야 하는 질문 세 가지가 있다.
- 무엇을 하고 싶은가
-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은 파리가 사자 꼬리를 쫓아다니듯이 살아가는 내내 삶을 쫓아다녀야 하는 파리 세 마리가 아닐까 싶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내면 삶이 고장 나기 시작한다.
삶의 특정 시기마다 이 중에서 강조되는 질문이 있다. 그런데 그중 하나에만 집중해 나머지 둘을 잊고 지내면, 아무리 그 하나의 질문이 중요하더라도 그 사람이 정확히 나아가긴 어렵지 않을까. 내 삶이 가장 안정적으로 지탱될 때는 이 세 가지 질문이 거의 3분의 1씩 충족되지 않나 한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는 오랜 시간을 견디게 하고, 스스로를 잃지 않게 해준다. 이 끈은 대체로 먼 미래를 향해 있고 그 미래를 향해갈 힘을 준다. 다만 내가 겨냥하던 그 미래에 정확히 당도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데, 거기에 크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내게 도래한 미래도 언제나 상상한 적 없던 것들이었으나 모두 좋은 것들이었다. 이 질문의 힘은 도달하게 하는 게 아니라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도달하지 않아도 좋다, 나아갈 수 있으면 충분하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방향전환과 현실감각을 가능하게 한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는 이 ‘할 수 있음’에 의해 늘 수정을 겪는다. 올바른 현실감각에 따라 수정된 것은 거의 늘 옳고 실제로 도달 지점이 된다.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글을 썼으나, 소설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좋은 에세이와 다른 종류의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먼저 기자가 되는 것도 괜찮다. 나는 할 수 없는 것은 하지 않았다. 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고, 그런 삶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삶에서 실제로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해야 하는 것에 복종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실천적 힘이 아닌가 싶다. 나를 핀셋으로 집어 올려서 해야 하는 것 속에 집어넣고, 두 다리를 파묻어 버리고, 그것에 집중하게 하기. 사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실질적으로 무언가의 토대가 된다. 해야 하는 걸 하지 않으면 삶은 유령 혹은 텅 빈 공기 방울 같은 것이 된다. 해야 하는 것만이 삶에 무언가를 남기고, 축적을 해주고, 궤적을 그려내며, 만들어내고 창조해낸다.
내가 늘 어느 질문에 지나치게 빠져 있는지 생각한다. 너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지내다 보면 서둘러 해야 하는 것을 생각한다. 반대로 너무 해야 하는 것만 하고 살면 무엇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인지 떠올려 본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을 재고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해야 하는 것이 할 수 없는 것일 때는, 해야 하는 일을 바꾼다.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그리고 해야 하는 걸 해야 한다. 삶은 그 바깥에는 없는 듯하다. 그 바깥에 있는 건 삶이 아니다. 허비, 나태, 태만, 공허뿐이다.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