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을 겨울의 시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어느덧 겨울은 지척에 서 있다. 차가운 바람은 옷을 겹겹이 껴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옷의 빈 구멍을 찾아서 몸속 깊숙이 들어온다. 문밖을 나서면 기다린 듯 반갑게 맞는 바람에 싫증이 나기 시작하고, 이제는 이불 밖을 나가는 것도 꽤 큰 결심이 아니고는 할 수 없다. 집에서 뒹굴 거리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늘어난다. 수많은 포털 사이트를 돌아다니던 와중에 나는 귀여운 일러스트로 그려진 ‘염리동 소금언덕 지도’를 … [Read more...] about 소금장수들의 마을, 염리동 소금언덕
음악가와 그의 음악을 닮은 문화공간들
요즘은 음악인들이 음악 하나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아무리 뛰어난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도 인기 방송사의 경연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는 이상 대중에게 알려지기 쉽지 않다. 때문에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인디 음악인들의 경우, 음반 판매와 라이브클럽에서의 공연만으로는 대중에게 다가가기 힘들며, 수입을 올리는 것 또한 어렵다. 생계를 위해서는 음악이 아닌 다른 일을 병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많은 인디 음악인들이 개인레슨을 진행하거나 고정적인 아르바이트, 혹은 일과 직장을 … [Read more...] about 음악가와 그의 음악을 닮은 문화공간들
“이화동 벽화마을 가는 길이 어디에요?”
나는 이화동에 산다. 이화동 주민이라면 하루에 한 번씩 꼭 듣는 질문이 있다. “벽화마을 가는 길이 어디에요?” 영어, 중국어, 때로는 일본어, 혹은 서툰 한국어. 수십번의 답변을 해주며 나는 벽화마을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최고의 가이드가 되었다. 하지만 이화동 주민이 된 지 4개월이 된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벽화마을을 가 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좋은 곳이길래 세계 각지에서 이화동 벽화마을을 찾아오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의 끝자락에서 이화동 주민은 드디어 이화동 벽화마을을 직접 … [Read more...] about “이화동 벽화마을 가는 길이 어디에요?”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다
어느 가업(家業)의 마침표 부모님은 수개월 전, 20년을 넘어 25년째를 바라보던 등산장비점을 정리하셨다.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진 아웃도어 대리점들 속에서도 별다른 상술 없이 그저 정직하고 친절하게 영업을 해오셨기 때문인지 소중한 단골들이 가게를 꾸준히 찾아주셨다. 하지만 청주 성안길 상권의 쇠퇴와 함께 찾아온 현대백화점, 아울렛의 개장은 영업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산을 타다가 만난 남녀가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 속에서 넘칠 것도 없지만 부족한 것도 없이 한 외아들이 자랄 수 있게 해주었던 … [Read more...] about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다
청춘과 낭만의 상징, 신촌 콜렉션
“신촌역에 내리가 그레이스 백화점 앞으로 나온나. 그레이스 백화점 끼고 올라와가 공원 사거리 있거든, 거기서 보면 형제갈비라고 큰 고기 집 있고 쭉 올라오면 독수리 다방이라고 있다. 그 사이 길로 오면 신촌 하숙이라고 간판 보일끼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속의 대사를 보면 당시 신촌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다. 대학생들이 북적거리던 그 때의 신촌은 낭만이 있었다. 어른과 아이 사이, 조금 촌스러워도 풋풋한 대학생들의 모습을 닮은 거리는 신촌만의 매력을 … [Read more...] about 청춘과 낭만의 상징, 신촌 콜렉션
NEWTYPE 을지로
조명이 듬성듬성 켜진 어두운 거리, 셔터 내린 가게들, 무너질 듯한 박스와 철재 더미로 음산한 느낌을 풍기는 을지로의 밤. 밤거리에서 꽤 담대한 편인 나에게도 을지로의 밤은 조금 어렵고도 두려웠다. 영화 〈피에타〉의 음울한 분위기를 드러내기 위한 극적 장치로 을지로의 공구 거리가 활용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람들이 부산히 움직이고 기계가 돌아가는 을지로의 낮 역시도 다른 의미로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철물, 공구, 금속, 조명, 타일 도기, 인쇄 등 지금까지 을지로를 지탱해온 분야들에 … [Read more...] about NEWTYPE 을지로
공연, 어디까지 가봤니?
지하철을 탔을 때 열에 아홉은 이어폰을 꽂은 채 앉아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음악이 우리 삶 속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실감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장르, 그리고 다양한 국가의 음악을 즐긴다. 카세트 혹은 씨디 플레이어를 통해 음악을 듣던 시기와 비교할 때 스마트폰 그리고 음원의 세대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와 유사한 모습이 공연 문화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크나큰 곳에서만 열리는 콘서트가 공연의 전부인 줄 알았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다양한 … [Read more...] about 공연, 어디까지 가봤니?
우리 어디에서 만날까?
시간의 흐름 속, 약속장소 “노을이 나무에 걸쳐질 쯤, 네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서 만나자.” 인도의 라다크족이 ‘약속 시각과 약속장소’를 정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흥미로운 문장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약속을 만들어 내는 대화 방식은 그들에게 아주 익숙하다. 이에 비해 현대인의 약속을 위한 대화는 편리함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상대방을 어떤 목적으로 만나 무엇을 할 것인지에 따라 이전보다 다양한 여건 및 선택지를 고려해야 하고, 그로 인해 … [Read more...] about 우리 어디에서 만날까?
익선동에서 보낸 오후
악기로 유명한 낙원 상가의 뒤편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익선동’을 만날 수 있다. 종묘, 종로, 인사동, 북촌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1930년대 서민을 위한 한옥마을로 개발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이라는 타이틀을 지녔다. 외적으로 전통적 한옥의 모양을 갖추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근현대 서울의 일상적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은 곳이 아닐까 싶다. 급격한 시간의 흐름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숨죽여 옛 모습을 간직한 동네였던 만큼 노후화된 흔적이 다수 보이지만 근래 카페와 갤러리, 레스토랑 … [Read more...] about 익선동에서 보낸 오후
SEX IN THE CITY
어둠이 내려앉을수록 서울의 뒷골목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유흥, 마사지, 도우미. 뒷골목에 번쩍거리는 네온사인. 건물 외관에 크고 작게 적힌 단어는 어둠에 걸맞은 유희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은밀한 메시지다. 인류가 문명을 형성한 이래로 성을 사고파는 행위는 아이러니하게도 일종의 ‘출입제한구역’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져 왔다. ‘밤공간’의 주요 고객은 대부분 전통적인 남성 중심 섹슈얼리티 인식을 지닌 남성들이고, 이들은 같거나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며 암묵적인 연대를 … [Read more...] about SEX IN THE C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