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시간의 흐름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숨죽여 옛 모습을 간직한 동네였던 만큼 노후화된 흔적이 다수 보이지만 근래 카페와 갤러리,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며 북촌, 삼청동, 서촌이 지겨운 이들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낙원상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간판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평범한 서울의 뒷골목과 마주한다. ‘이게 최근 화제의 중심이라는 익선동 골목일까’ 하는 의문을 품을 때쯤 다양한 벽화 속에 모습을 드러낸 카페 ‘식물’이 제대로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식물’ 옆으로 난 골목에 들어가면 첫인상이 전해준 밋밋함을 벗어나 눈에 띄는 색을 입은 다양한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익선동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개성 있는 건물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알아차릴 수 있는데, 바로 외관의 변화와 무관하게 한옥의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스텔톤 노란색의 대문이 인상적인 ‘솔내음’의 안을 들여다보면 마치 시간여행을 하듯이 고즈넉한 한옥이 눈에 들어온다.
골목을 따라 내려가다 보이는 ‘거북이 슈퍼’의 경우에는 허물어진 콘크리트 벽과 검은색 프레임을 활용하여 인더스트리얼 느낌을 강하게 표출한 동시에 지붕의 한옥을 보존했다. 익선동 골목의 느낌에서 확장될 수 있는 힙한 요소와 전통적인 골조를 조화롭게 연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동다방
- 서울 종로구 익선동 166-81
골목 입구에 위치한 샛노란색의 독특한 간판을 따라가면 보이는 ‘익동다방’은 골목 깊숙이 숨었다. 따듯한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에서는 유순한 골든래트리버 복순이를 만날 수 있다. 갤러리 카페이기도 한 익동다방에서는 2016년 2월부터 4월까지 〈시대동경〉이라는 제목으로 성립 작가의 개인전 및 작가와의 대화, 드로잉 수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거북이 슈퍼
- 서울 종로구 익선동 166-79
‘거북이 슈퍼’는 모던한 인테리어와는 다르게 옛날 동네 슈퍼의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다. 여러 종류의 병맥주를 다양한 과자, 혹은 연탄에 직접 구운 먹태나 오징어나 쥐포 등과 함께 즐길 수 있다. 둘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예스러운 좌식 테이블도 있어 구멍가게 감성이 물씬 느껴진다.
프루스트
- 서울 종로구 익선동 166-72
거북이 슈퍼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프루스트’는 하얀색 일색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향 브랜드 겸 홍차 카페다. 프랑스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영감을 받아 프루스트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향 제품들을 시향하고 구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원데이 클래스부터 마스터 클래스까지 다양한 클래스를 통해 이색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밥, 카페를 반복하는 단순한 데이트가 지루하다면 이곳의 클래스를 체험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열두달
- 서울 종로구 익선동 166-54
‘SKIM45’ ‘mmham’ ‘ROOT’ 등 다양한 숍이 함께 모인 마켓&다이닝 플레이스 ‘열두달.’ 각각의 숍이 자신만의 특색을 지닌 메뉴를 선보이는 재미있는 곳이다. 햄과 델리 제품 전문인 mmham에서는 수제햄 플레이트와 훈제 목살 오일 파스타 등을, 채소를 활용한 메뉴가 전문인 ROOT에서는 연근 크림 파스타, 뿌리채소 오븐구이 등을 선보인다. 특색을 잘 살린 메뉴가 여럿 어우러져 그 매력이 배가된다.
이렇게 매력적인 장소들이 좁은 지역을 가득 메운 것 외에도 이곳만의 매력을 꼽자면 멋진 장소와 골목의 열린 문틈 사이 일상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점점 많은 사람이 찾지만 아직은 지역 고유의 매력을 유지하고 있는 동네, 서울의 중심에서 조용히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곳. 어딜 가든 사람이 넘치는 서울이 싫증 날 무렵 익선동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