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음악인들이 음악 하나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아무리 뛰어난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도 인기 방송사의 경연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는 이상 대중에게 알려지기 쉽지 않다. 때문에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인디 음악인들의 경우, 음반 판매와 라이브클럽에서의 공연만으로는 대중에게 다가가기 힘들며, 수입을 올리는 것 또한 어렵다.
생계를 위해서는 음악이 아닌 다른 일을 병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많은 인디 음악인들이 개인레슨을 진행하거나 고정적인 아르바이트, 혹은 일과 직장을 다니면서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그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다른 일에 치여 음악 활동에 소홀히 하게 되고, 심지어는 본업이 바뀌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들과 다르게 색다른 문화공간을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이익을 얻는 것과 동시에 음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이들이 있다. 어떤 곳일지 궁금해 찾아간 문화공간들은 각자가 몸담은 음악들과 왠지 모르게 닮아 있었다.
눈뜨고 코베인의 만화 속으로 여행, 망원만방
눈뜨고 코베인. 이름부터 독특한 이들의 음악을 처음 듣는 순간, 한편의 단편 만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4분 남짓한 눈뜨고 코베인의 음악은 일상적인 순간 순간들을 익살스럽게 포착하여, 만화적 효과를 만들어 낸다.
‘영국에 출장 가신 아빠가 벽장에 있을 리 없잖아’라고 아들을 다독이는 엄마의 목소리,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 슬픈 상황을 ‘내가 안 타는 불연소 화합물이라 분리수거 할 수 없어 내다 버려졌네요.’와 같이 설명하는 재치 있는 가사는 톡톡 튀는 멜로디와 어우러져 듣는 이에게 만화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더한다.
눈뜨고 코베인의 음악 전반을 작곡하고 작사한 보컬 깜악귀는 망원동에 위치한 만화방 망원만방의 공동대표다. 어렸을 적 방문했던 퀴퀴한 냄새와 먼지가 가득한 만화방들과는 다르게 깔끔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만화방엔 주말 이른 시간부터 만화책을 읽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때늦은 출출함에 주문한 뽀글이 라면과 근처 망원시장에서 판매하는 호박 식혜를 준비물 삼아 만화책 속으로 뛰어들었다. 오랜만에 편안한 공간에서 만화책을 쌓아놓고 읽으니, 만화 속 세상을 동경하던 어릴 적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만원 한 장으로 온 종일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만화책을 읽을 수 있다니, 요즘같이 찜통 더위로 지치는 날에 최고의 피서가 될 것이다. 눈뜨고 코베인의 음악을 함께 들으면 더욱 완벽하게 만화 속 세상에 들어설 수 있다. 물론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독서 공간이니 이어폰을 사용하는 것은 필수이다.
후후(WHOwho)의 자꾸 찾게 되는 댄스록의 중독성, 글로리펍앤카페
후후의 음악을 들으면 춤추지 않을 수 없다. 현란한 신디사이저 소리와 앳된 청년의 목소리, 신나는 기타 리프가 춤을 못 추는 나조차도 몸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일할 때 듣는 노동요로 후후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는 일을 하더라도, 후후의 음악을 들으면 어깨가 들썩이고 발가락을 까닥이는 등 신이나서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후후는 여타의 밴드와는 다르게 신디사이저를 주요 악기로 쓰며, 록의 기본인 일렉기타 소리와 함께 어우러지게 한다. 거기에 든든하게 받쳐주는 베이스와 드럼 소리까지 더해 중독성 강한 댄스록을 완성한다.
합정동에는 술집이 많지만, 자꾸 가고 싶어지는 가게는 손에 꼽는다. 때문에 합정에서 약속이 있을 때면 장소를 선택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걱정도 끝난 것 같다. 후후의 신디사이저를 맡고 있는 정영광이 운영하는 글로리펍앤카페가 그 해답이기 때문이다.
3층에 위치한 글로리펍앤카페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술집과 카페를 겸하는 공간인데, 작은 전시와 공연을 진행하기도 한다. 공연 무대가 그리 넓은 편은 아니라 어쿠스틱한 음악의 공연이 주를 이루는 편이다. 술집이 즐비한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에 위치해서 그런지 한창인 저녁 시간에도 한적한 분위기로, 흘러나오는 어쿠스틱 음악과 잘 어울렸다.
또한 잔으로 판매하는 소맥을 포함한 다양한 주류와 함께, 글로리펍앤카페의 인기메뉴라는 순살 훈제 바비큐 치킨과 라면 사리 안주는 재방문을 결심하게 만든다. 여유로운 분위기와 맛있는 먹거리, 그리고 공연과 전시까지. 자꾸 발걸음을 옮기게 만드는 공간은 중독성 있는 후후의 음악을 닮아있었다.
와이낫(Ynot?)의 원초적이면서 정교한 사운드, 클럽타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던데, 데뷔 15년이 지난 와이낫의 음악은 여전히 열정적이면서 신랄하다. 펑크록은 과격하고 빠른 리듬에 단순한 코드로, 사회에 퍼져 있는 가치에 대한 반대의 입장을 담고 있다. 와이낫은 거기에 국악적 리듬을 더하였는데, 펑크록의 서양적 리듬과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은 마치 두 리듬이 전투를 벌이는 듯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보통 펑크록의 연주가들과는 달리 와이낫은 하나의 음악적 고집에서 벗어나 실험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난 다 하고 싶은데, 왜 안돼?’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와이낫의 이름처럼 그들의 음악은 원초적인 사운드와 실험정신, 그리고 이 둘을 완벽히 합을 이루게 만드는 음악적 정교함을 동시에 거머쥐고 있다.
홍대의 라이브클럽 거리에는 작은 규모지만 오랜 시간 동안 홍대의 인디씬을 구축해온 전통적인 공연장들이 많다. 그곳은 수많은 인디 밴드들의 등용문이 되었으며, 그들의 첫 시작을 많은 관객들이 지켜봐 왔다. 하지만 작은 규모이다 보니, 공연의 음향적인 측면에서 아쉬움이 뒤따르곤 했다.
그러나 와이낫의 보컬 전상규가 운영하는 클럽타는 달랐다. ‘지하 라이브공연장이 다 똑같겠지.’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작은 라이브클럽에서도 대형 공연장다운 사운드와 환경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친 밴드사운드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세세한 음 하나하나까지 잡아주기 때문에, 시끄럽다 생각했던 작은 공간에서의 울림이 음악으로 느껴졌다. 기존 공연장의 현란한 효과는 유지하되, 각각의 연주하는 음악에 어울리는 조명을 비춰주어 음악을 더욱 즐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 와이낫에서 보여준 원초적이면서 정교한 음악스타일의 모습이 그의 공간에서도 고스란히 묻어져 나옴을 보며 감탄함과 동시에 감사했다.
원문: URBANPOLY / 글: 서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