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화동에 산다. 이화동 주민이라면 하루에 한 번씩 꼭 듣는 질문이 있다.
“벽화마을 가는 길이 어디에요?”
영어, 중국어, 때로는 일본어, 혹은 서툰 한국어. 수십번의 답변을 해주며 나는 벽화마을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최고의 가이드가 되었다. 하지만 이화동 주민이 된 지 4개월이 된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벽화마을을 가 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좋은 곳이길래 세계 각지에서 이화동 벽화마을을 찾아오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의 끝자락에서 이화동 주민은 드디어 이화동 벽화마을을 직접 탐방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몇 번이고 친절히 알려준 벽화마을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가파른 언덕과 계단을 오르며, 여태껏 가보았던 각 지역의 벽화 마을을 떠올렸다. 부산의 보수동 책방골목, 감천문화마을, 전주 벽화마을……. 어디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모두 도심 속의 오지였다. 왜 벽화마을은 모두 산동네에 있는 걸까?
정답은 도시재생 프로젝트에서 찾을 수 있었다. 벽화마을이 되기 전 해당 지역들은 대부분이 낙후된 재개발 대상 지역이었다. 이화동 벽화마을 역시도 그랬다. 봉제 노동자들의 터전이자 일터였던 이화동 낙산길은 재개발 대상이 되었는데 재개발을 최소화하고 동네를 다시 살리기 위한 노력으로 2006년 낙산공공프로젝트가 시행되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이화동 벽화마을이다.
끝이 안 보이던 벽화마을의 계단을 다 오른 순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았는지 알 것 같았다. 시끌벅적한 대학로와 대비되는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 고작 몇 미터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나 대비되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비밀스러운 수수께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골목마다 이화마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느낌이 매우 강렬했다.
아마도 어른들에게는 이화동 벽화마을을 걷는 시간이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일 것이고,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고도 설레는 시간일 것이다. 또한 이방인에게는 이국적 향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인데 이런 매력들이 사람들을 이화동 벽화마을로 끌어오는 듯했다.
그렇게 골목골목을 한참이나 누비다가 한 문구를 발견했다.
‘쉿! 주민이 살고 있어요.’
귀여운 토끼 캐릭터가 애교스럽게 말하는 듯했지만 나는 거기에서 주민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화동 주민이어서 그런지 그 문장은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이화동 벽화마을이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한들 그곳은 누군가에게 편히 쉬어야 할 보금자리와도 같은 공간이다. 하지만 그들은 쓰레기와 소음으로 인하여 편히 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종로구청에서는 <착한 도보 여행 지도>를 만들어서 주거공간과 산책 루트를 분리해 놓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지도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었다. 낙산공공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주민들의 거주 환경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화 벽화마을과 관광객들 사이의 이질감이 아쉬웠다. 그 이유는 모두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마을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쁜 추억을 필름으로 남기는 것도 좋다. 하지만 포토존을 찾아 돌아다니기보다 마을 주민들의 사진전, 마을 반상회의 흔적들, 간판 없는 낙산마트를 눈으로 담아내는 건 어떨까. 이러한 부분을 고려해 <착한 도보 여행 지도>를 개선한다면 더 아늑한 이화 벽화마을을 꿈꿀 수 있을 듯하다.
이화 벽화마을 탐방을 끝내고 이화동으로 ‘이사 오길 참 잘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화 벽화마을 가는 길을 알려주면서 낙산까지 꼭 올라가 보라는 말을 덧붙이기로 결심했다. 이화 벽화마을의 낮, 그리고 낙산의 밤. 이 두 공간은 잘 어우러지는 동시에 다른 맛이 있기 때문이다. 두 공간 모두 작은 동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포근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남산타워를 마주 보는 중턱 즈음 자리 잡고 있는 「신사와 강아지」 조형 작품, 자동차 불빛마저 별이 되는 야경은 이화 벽화마을에서의 여운을 간직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대학로의 시끌벅적함 뒤에 고즈넉한 이화동이 있다는 건 아주 매력적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매력이라는 것은 또 얼마나 비밀스러운가.
원문: URBANPOLY / 필자: 진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