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을수록 서울의 뒷골목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유흥, 마사지, 도우미. 뒷골목에 번쩍거리는 네온사인. 건물 외관에 크고 작게 적힌 단어는 어둠에 걸맞은 유희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은밀한 메시지다.
인류가 문명을 형성한 이래로 성을 사고파는 행위는 아이러니하게도 일종의 ‘출입제한구역’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져 왔다. ‘밤공간’의 주요 고객은 대부분 전통적인 남성 중심 섹슈얼리티 인식을 지닌 남성들이고, 이들은 같거나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며 암묵적인 연대를 공고히 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우리 사회에 관행으로 자리 잡다시피 한 남성 중심의 접대문화를 들 수 있다. 이는 ‘밤공간’을 통한 연대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1970~90년대 정•재계 실세들이 고급요정을 드나들며 정치를 좌지우지했던 ‘요정정치’와 오늘날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성 추문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고급 룸살롱부터 키스방, 안마방까지. 그 업태는 계속해서 바뀌었을지언정 성에 대한 소비가 멈춘 적은 없었다.
일반적으로 남성 중심 ‘밤공간’은 음지에서 불법적으로 성을 매매하는 형태로 운영되어왔다. 그러나 그러한 ‘밤공간’의 불법적인 영업은 노동으로 지친 한국 남성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묵인됐다. 이때 성적 욕구를 품고 해결하는 주체는 오로지 남성으로 제한되었으며 여성은 성적 욕구의 대상이 되거나 혹은 그러한 욕구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었다.
역사학자 김경일에 따르면 섹슈얼리티는 “생리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심리 사회적 현상이고 문화에 의해 학습”된다. 성적 욕망을 품을 수 있는 주체가 남녀 모두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남성만이 성(性)을 전유하는 사회구조 속에서는 남성은 물론, 여성 자신도 성적 욕망을 온당치 않은 것이라 인식하게 된다.
여성의 적극적인 섹슈얼리티 실천에 대한 부정적 인식(극단적인 경우 여성은 ‘헤프다’ 혹은 ‘더럽다’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은 실천의 주체에게는 낙인을 찍고, 낙인찍힐까 두려운 이들이 그 입을 다물게 한다. 여성이 당연히 가져야 할 성적 주체성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편견 속에서 무력하게 소멸한다.
여성의 권리는 바이브레이터를 타고
여성 자위 기구인 바이브레이터는 여성의 신경증을 성기 마사지를 통해 치료한다는 당시 의학계의 다소 황당한 인식 아래 탄생했다. 20세기 초까지도 정신신경증의 하나인 히스테리(Hysterie)의 원인을 오로지 자궁에서만 찾으려 했던 것이다.
영어식 표현인 ‘히스테리아(Hysteria)’가 ‘자궁(Hystera)’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듯, 고대로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남성 지식인은 충족되지 못한 여성의 성적 욕구불만 탓에 자궁이 몸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며 병을 유발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그들은 남성의 생식기보다 열등하고 불완전한 자궁을 달래는 것만이 히스테리의 유일한 치유법이라고 믿었다. 히스테리의 어원과 역사에는 머나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여성에 대한 몰이해와 차별적 인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1859년에 만들어진 영국 의사들의 연구보고서에서 ‘런던 여성의 40%가 앓고 있다’고 언급된 히스테리아는 당시 여성들이 앓던 ‘우울, 불안, 발작, 감각/신경마비, 불면증, 생리통’ 등 다양한 증세를 통칭하는 단어였다. 증상이 심할 경우 정신병원에 보내거나 자궁을 적출해야 하는 중증 질병으로 여겨졌으나 실상은 달랐다.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발생한 스트레스, 그리고 남성 위주의 불만족스러운 성관계로 인한 욕구불만이 그걸 표현하는 것조차 금기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에 억눌리다 결국 증상으로 발현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세기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투표할 수 없었고 가사노동을 전담하기 위한 존재로 여겨졌던 탓에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 교육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성적 욕구 역시 무시당하곤 했다.
그나마 치료라는 명목 아래 병원을 찾을 수 있던 여성은 상류계급에 속한 여성이었다. 그런데도 그 수는 결코 적지 않았고 여성 환자들의 성기를 일일이 손으로 마사지하는 치료법은 손에 무리가 갈 정도로 고된 노동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기로 움직이는 바이브레이터의 발명은 그야말로 획기적이었다.
바이브레이터는 의료용 기구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20세기 초부터는 가정용 바이브레이터가 적극적으로 홍보되며 각 가정에 보급되었다. 가정용 전기제품인 재봉틀, 선풍기, 주전자, 토스터에 이어 다섯 번째였고 진공청소기나 다리미보다는 10년이나 앞서 가정에 들어온 것이다.
바이브레이터의 발전과 함께 여성들은 자연스러운 성적 욕구를 당당히 인정하는 동시에 그동안 잃어버렸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어느 페미니스트는 ‘남성과의 섹스 대신 바이브레이터를 이용함으로써 성적 독립심을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바이브레이터의 발명은 사회에서 외면받던 여성의 인권과 성적 욕구로부터 기인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여성 해방의 상징이 되었다.
얼굴을 드러낸 섹스토이숍
미국 혹은 유럽의 도로변에서 산뜻하게 꾸며진 섹스토이숍을 마주치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오갈 수 있는 평범한 길가에서 실내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섹스토이숍을 운영할 수 있다는 건 해당 사회가 섹슈얼리티를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 인식과 태도가 과거에 비해서는 훨씬 능동적으로 바뀌었다고 하나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은 성을 금기시하는 문화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성적 욕구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건강한 성적 욕구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은 아직 미비한 편이다. 또한 적극적인 섹슈얼리티 실천이라 할 수 있는 ‘성인용품 소비’ 역시도 아직은 건강한 성 문화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
성인용품숍의 미덥지 않은 인상도 이처럼 경직된 인식을 형성하는데 큰 몫을 한다. 건물의 지하 혹은 2층이나 3층에 자리를 잡고 바깥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도록 래핑을 하며 커다랗게 ‘성인용품’이라는 글자를 붙여 놓은 다소 저급하면서도 음침한 모양새. 대한민국 섹스토이숍의 ‘폐쇄적인’ 인상과 구조는 불온한 이미지를 강하게 풍긴다.
특히나 여성에게는 심리적 불안과 불편함을 불러일으키며 결과적으로 여성을 해당 공간으로부터 또다시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섹슈얼리티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해왔다. 따라서 섹스토이숍은 불법적인 ‘밤공간’과 마찬가지로 취급받으며 언제나 도시 어딘가에 숨은 채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지난 1-2년 사이 지금껏 음지에 존재해야 한다고 여겨졌던 섹스토이숍이 양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섹스토이숍 ‘레드컨테이너’가 위치한 곳은 파격적이게도 이태원역에서 녹사평역으로 향하는 대로변이다. 행여 알아보지 못할까 ‘어덜트숍’ ‘성인용품’이라는 단어가 큼지막이 적힌 간판 아래로 콘돔을 형상화한 인형과 섹스 도구를 본뜬 이미지가 1층 입구를 꾸미고 있다.
큰 유리창을 통해 실내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성인용품숍 앞으로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오가고, 대낮에도 타인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가게 안을 자유로이 드나든다. 가게 안에서는 네다섯 쌍의 커플 혹은 친구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서로 웃고 떠들며 섹스토이를 직접 만져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한 모습은 섹스토이숍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가 점차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레드컨테이너에서는 누구나 섹스토이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곳에서만큼은 섹슈얼리티와 일상이 더는 분리되지 않는다. 남녀의 생식기를 본뜬 말랑말랑한 고무 인형과 태엽을 감는 동안 성행위를 하듯 움직이는 장난감은 한눈에 웃음이 터질 만큼 익살스럽다. 이러한 모습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오히려 지금껏 우리의 섹슈얼리티가 얼마나 경직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는지를 되물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그동안 인간 존재와 함께 필연적으로 숨 쉴 수밖에 없는 섹슈얼리티를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추려던 시도의 결과는 섹슈얼리티의 극심한 음지화였고, 그러한 음지화는 특정 계층의 소외와 그러한 계층에 대한 무형의 차별 및 폭력만을 야기했을 뿐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퍼져있는 성의 은밀한 대상화나 성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를 극복하고, 주체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나와 너의 섹슈얼리티
한때 여성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성기를 관찰해보자는 운동이 대두된 적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다수의 여성은 자신의 성기가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신체 내부에 존재하는 여성의 성기는 외부로 돌출된 남성의 성기와 달리 자세히 관찰하기 어려운 구조로 이뤄졌고, 이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손수 거울을 성기 앞에 가져다 대야만 한다.
자신의 신체를 알아보는 행위임에도 일말의 적극성을 내포한 그 행위에 여성들은 심리적인 부담감과 불편함을 느낀다. 내 안의 섹슈얼리티로부터, 그리고 나 자신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침묵하도록 ‘조장하는’ 사회에게 우리는 얼마나 길든 것일까?
레드컨테이너를 위시로 한 오늘날의 섹스토이숍은 과거보다 여성 친화적 성향을 지님으로써, 그동안 성적 욕구로부터 배제되어 온 여성이 자신의 성적 욕구를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독려하고 있다. 달라진 섹스토이숍은 많은 사람이 그동안 ‘자기 탐구’를 제대로 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한다.
즉 섹스토이숍에서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고르는 과정은 내 몸과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섹스할 때 나는 무엇을 좋아하며, 어떻게 해야 기분이 좋은지, 나의 성적 경험과 취향을 곰곰이 되짚어보는 과정은 신체를 포함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기반 둘 때만 비로소 가능하다. 마치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내 몸에 꼭 맞는 옷 치수와 가장 어울리는 스타일을 알게 되는 것처럼.
그동안 배척받아온 여성의 성적 욕구를 이해하고 긍정하는 섹스토이숍의 등장은 결국 성 소수자를 포함한 성적 주체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첫걸음과 무관하지 않다. 타인에 대한 배척과 혐오는 대개 몰이해와 편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 누구의 섹슈얼리티도 억압받지 않는 자유로운 사회는 서로 알아가고 존중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는 가장 적극적으로 알아가야 하는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섹슈얼리티는 부끄러운 무언가가 아닌 자연스러운 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