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사역을 하던 유명 목사의 성범죄 사건이 또 터졌다. 요즘은 목회자 성범죄가 놀랍지도 않은 뉴스가 되어 버렸다. 지면에 자주 오르내리는 탓이다. 그런데도 청소년 사역으로 유명한 문대식 목사에게 당한 피해자 중에 미성년자도 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주었다. 문대식 목사에 대한 기사를 읽고,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여러모로 전병욱 목사 사건이 떠올랐다. 전병욱 목사 사건 때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 지금도 화가 나는 댓글 유형이 있었는데, 그것 또한 비슷했다. "이 목사님을 아는 … [Read more...] about 피해자 두 번 울리는 한국교회의 무지와 편견
작아지고, 약해지고, 실패하는 자리에 함께 계신 하나님
첫 신앙의 추억 나는 어쩌다 신앙을 갖게 되었을까. 어쩌다 신앙의 매력에 빠졌을까. 그리고 나는 왜 지금의 교회와 개신교인들의 신앙에 회의하고 절망하는가.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교회를 안 나가는 가나안 교인 이야기가 한창 들려올 때, 그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에 깊이 공감하며 그들의 심정에 100% 공감이 갈 정도로 교회에 대한 실망과 절망이 깊다. 그래도 여전히 교회는 다니고 있다. 그동안 쌓아 온 인간관계가 다 교회에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아직은 내가 교회를 위해 뭔가 할 … [Read more...] about 작아지고, 약해지고, 실패하는 자리에 함께 계신 하나님
한국 교회는 ‘세상의 그늘’을 향해 걷고 있는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간증을 참 좋아한다. 교회에서 인기 있는 간증은 대체로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잘나가는 신앙인'을 초청해서 자신이 '신앙'을 통해 어떻게 성공하고, 어떻게 부자가 되고, 어떻게 유명해졌는지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간증한다. 이런 류의 간증에 감동받기 좋아하는 신앙인들의 마음에는 어쩌면 이런 심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신앙을 가지면(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유명해지고, 성공할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어. 모든 간증을 그런 심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성공하고 … [Read more...] about 한국 교회는 ‘세상의 그늘’을 향해 걷고 있는가?
커지고 높아지고 강해지는 게 하나님 영광인가?
한국교회는 언제부터인가 '부흥'이라는 명분 아래 더 커다란 교회, 더 많은 교인 수, 더 많은 권력, 더 많은 돈을 추구하고 정당화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주저 없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호칭을 붙여 주었다. 나도 대학생 시절에 '부흥'과 '하나님의 영광'이란 단어를 들으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설렜던 기억이 있다. "이 땅에 부흥을 주시옵소서!"라고 눈물 흘리며 뜨겁게 기도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20여 년을 지나오며 선교 단체든 교회든, 일반적인 한국교회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게 되면서 … [Read more...] about 커지고 높아지고 강해지는 게 하나님 영광인가?
‘종교적 열심’은 왜 신앙을 배반하는가?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좋은 신앙을 가진 사람? 한국의 개신교는 종교적 헌신을 매우 강조한다. 그래서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 독실한 신앙인들은 자기 삶의 상당 부분을 교회 활동에 바친다. 나도 한때는 뜨겁게, 전폭적으로 선교단체와 교회에서 헌신하며 내 삶의 대부분을 종교적 활동에 바쳤었다.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십여 년 이상 공동체 생활도 하며 리더로 헌신하고 전 시간 간사까지 2년간 했었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대학청년부에서 간사로만 10년을 넘게 보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 [Read more...] about ‘종교적 열심’은 왜 신앙을 배반하는가?
신앙인들이 잃어버린 가치- ‘자족’(自足)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살아오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보고 겪으며 느낀 점들이 있다. 일단 경제적으로든 직위적으로든 ‘일정한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룬 사람들이다. 흔히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지만 난 그런 것들을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성취한 사람들'이란 표현을 쓴다.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의 전부를 그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력투구할 각오가 되어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 그렇게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은 그래서 자신이 의지를 갖고 노력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 [Read more...] about 신앙인들이 잃어버린 가치- ‘자족’(自足)
거짓 루머를 퍼뜨리지 않는 기독교인이 되기 위한 원칙
악성 루머의 진원지, 교회 SNS 교회 단체 카톡방이 온갖 악성 루머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재밌게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만 모르고 있다. 세상에 관심 없고, 정치에 관심 없는 것을 경건한 신앙인의 자랑인 것처럼 생각하는 교인들의 분별 없는 카톡 루머 퍼나르기가 이제 사회문제로 비화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거룩한 교회 일’에는 관심이 많고 헌신하지만, 교회와 구별되는 일반 사회를 ‘(천박한) 세상’으로 규정하며 ‘세상은 악하고 두려운 곳, 정치는 … [Read more...] about 거짓 루머를 퍼뜨리지 않는 기독교인이 되기 위한 원칙
너는 특별하지 않단다
당신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내가 예전에 교회에서 참 좋아했던 말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특별한 나' 이런 식의 표현이었다. 자존감이 낮거나,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정서적 결핍으로 메마른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 이런 표현들은 나름 기독교적인 가치를 잘 드러내는 훌륭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수 태연이 부르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개신교 내부의 '우리끼리만 특별하고 구원받았다'는 의식이 … [Read more...] about 너는 특별하지 않단다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강자 숭배의 신앙
‘전병욱 사건’을 통해 드러난 한국교회의 일베스러움 최근 몇 년간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켜온 ‘일베 현상’을 보면서 낯익은 기시감을 느꼈다. 일베들은 왜곡된 성(性) 의식으로 여성을 비하하고,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들을 조롱하며, 오직 체제수호의 극우적 논리를 이용해 비뚤어진 강자의 시각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내가 지난 몇 년간 생생하게 봐온 한국 기독교인들의 보편적 모습이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나는 또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Read more...] about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강자 숭배의 신앙
‘저항으로서의 기억’이 세상을 바꾸려면
‘브이 포 벤데타’라는 영화가 있다.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난 2040년 가상의 영국을 무대로 한 SF영화다. 정부지도자의 지시에 불복하거나, 국가가 지향하는 피부색, 성적 취향,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이들은 ‘정신집중 캠프’로 끌려간 후 사라지고, 거리 곳곳에 카메라와 녹음 장치가 설치되어 모든 이들이 통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어느 누구도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평온히 일상을 유지하는 영국 국민들 앞에, 어느 날 400여년전 국회의사당을 폭파하려고 시도했던 ‘가이 … [Read more...] about ‘저항으로서의 기억’이 세상을 바꾸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