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쓰는데 수십 년, 아니 평생이 걸린다. 유리 슐레비츠의 책 『우연 Chance』이 그렇다. 1. 지은이인 유리 슐레비츠는 그림책 좀 보는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칼데콧 상 수상 작가이다. 그런 작가가 2020년에 낸 책이다. 한국에서는 2022년 올해 번역 출간되었다. 그가 살아온 이력은 무척 복잡하다. 그는 1935년에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전쟁이 발발한 후 유대인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도주했다. 러시아 비알리스톡과 … [Read more...] about 어떤 책은 쓰는 데 수십 년, 아니 평생이 걸린다: 유리 슐레비츠의 『우연』
돌아온 〈섹스 앤 더 시티〉, ‘사만다 사이즈의 구멍’을 메꿀 수 있을까?
돌아온 〈섹스 앤 더 시티〉의 새 에피소드, 〈앤드 저스트 라이크 댓(And Just Like That)…〉이 꽤 호평을 받는 듯하다. 기사들을 읽어보면 킴 캐트럴이 사만다 역을 거부하면서 생긴 ‘사만다 사이즈의 구멍(Samantha-sized hole)’을 잘 메꾸었다고 한다. 〈섹스 앤 더 시티〉가 한 때 전 세계 여성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라이프 스타일 전반, 로맨스와 명품, 시스터후드 등에 대해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 중에서 확실한 건 명품밖에 없다. 남자도 가고 … [Read more...] about 돌아온 〈섹스 앤 더 시티〉, ‘사만다 사이즈의 구멍’을 메꿀 수 있을까?
나는 가해자가 될 수도, 훌륭한 조력자와 동료가 될 수도 있는 남자 인간의 엄마입니다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중 하나인 딜런 클리볼드의 어머니 수잔 클리볼드가 쓴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이제야 읽었다. 책의 초반부 3분의 1 정도는 가슴이 찢어져서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읽다가 너무 우울해질 정도. 가해자의 엄마이기는 하나, 엄밀히 말하면 자식이 남들을 살해하고 자살한 사람의 엄마이기도 했다. 그저 아이를 잃는 것만 해도 부모가 겪어야 하는 이후의 애도의 과정이 상상만 해도 고통스러울 것 같다. 자살만 해도 그 고통이 어떠할지 가늠이 안 … [Read more...] about 나는 가해자가 될 수도, 훌륭한 조력자와 동료가 될 수도 있는 남자 인간의 엄마입니다
‘정상 가족’은 괜찮은가요?
3년 전 팟캐스트에 영화 이야기를 하러 간 적이 있다. 팟캐스트 시작 전에 인사하면서 신상을 묻고 싱글인지 아닌지 물어서 싱글맘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팟캐스트 녹음이 시작되었는데, 하필 그때 다룬 영화가 〈랍스터〉였다. 가족이 해체되는 내용이 그중에 나왔다. 가족은 미래에 그 구성이 바뀔 수 있다는 내 말에 남자 진행자가 불쑥 그렇게 답했다. 나는 내 가족이 정상이 아닌 가족이 되는 걸 참을 수가 없어요. ‘정상’이라는 말을 그렇게 사용해서, 팟캐스트 시작 전에 싱글맘이라고 이야기했던 내가 … [Read more...] about ‘정상 가족’은 괜찮은가요?
문학은 어떻게 여성과 자연을 대상화해왔나
멸칭 하나 때문이 아닙니다. 사실 남자 문인이 여성을 그리는 방식, 남자 영화감독이 여성을 그리는 방식에 밴 인간관이 문제입니다. 이 인간관은 오래되고 아주 거대해서 그 와중에 있으면 그게 문제인지 모릅니다. 숲속에 있으면 숲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숲을 이루는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여기기까지 합니다. 문학이라는 거대한 숲을 거닐면서 여성을 그렇게 그리지 않고 문학을 어떻게 하지? 이렇게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피터 비에리의 말에 따르면 “교양을 가진 자라면 해야 하는 일은 기존의 가치관에 … [Read more...] about 문학은 어떻게 여성과 자연을 대상화해왔나
책읽기는요, 할 놈만 해도 돼요
읽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책을 읽히지 않아요. 저희 아들은 책 잘 안 읽습니다. 억지로 읽으라고 하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책으로 이끌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아들은 '시각형 학습자'가 아니에요. 청각형 학습자더라고요. 세계를 인지하고 파악하는 주 채널은 인간마다 다른 것 같아서, 강요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어릴 때 이런저런 판타지와 게임에 아들이 빠지면, 옆에서 지켜보다가 많이 꼬셔보기도 했지요. "아, 그 캐릭터는 북구 신화의 어디에서 … [Read more...] about 책읽기는요, 할 놈만 해도 돼요
한국인이 에세이 영작을 못 하는 이유
주제문을 쓰지 못하는 한국 학생들 대학에서 영작문을 가르치다 보면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과연 '이 아이들은 모국어로는 글쓰기를 제대로 할 줄 아는가'라는. 모국어로도 제대로 글쓰기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아이들을 잡고 난 무엇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어 에세이 작문을 가르치다 보면 한국인이 가장 어려워하는 지점이 하나 있다. 한국인들이 어디서 왜 막히는지를 모르는 원어민 교수들은 향후 내용을 예상할 수 있게끔 하는 문장인 주제문(thesis statement)을 … [Read more...] about 한국인이 에세이 영작을 못 하는 이유
어떤 영어 사전을 써야 하는가?
영영사전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흔히들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영영 사전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에 수능 만점을 받은 한 고3 학생도 인강을 열심히 듣고 영영사전을 열심히 본 덕에 영어 만점을 받았다고 말했다. 분명히 롱맨, 옥스포드, 코빌드 같은 영영사전은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함을 주고 영어를 꽤 잘하는 것 같이 보이게 한다. 그런 점에서 허영심을 만족시켜 줄지도 모르겠지만 연구에 따르면 영영사전은 영어 학습에 비효율적이다. 영어 단어 하나를 몰라 사전을 펼쳤을 … [Read more...] about 어떤 영어 사전을 써야 하는가?
독해 중 사전을 찾지 말라고? 잘못된 영어공부 통념
근 10년 동안 활발한 어휘 연구가 이루어졌다. 사람들이 어휘 학습에 관해 잘못 알고 있는 게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가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중간에 의미를 찾지 마라. 대신 문맥(context)상 그 의미를 추측해내라."는 주장이다. 사전을 찾지 않고 의미를 추론하기는 쉽지 않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문맥으로 모르는 단어의 의미를 맞추는 전략은 원어민에게 유효한 전략이다. 우리가 한국어 텍스트를 읽을 때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는가? 문맥상의 단서(contextual … [Read more...] about 독해 중 사전을 찾지 말라고? 잘못된 영어공부 통념
모국어가 발달해야 외국어를 잘 익힐 수 있다
모국어로 문해력을 키우지 못하면 인지 발달이 뒤처진다 조금 전에 질문을 받았다. 다문화가정의 중3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be 동사 변화도 모른다고, 맞는 교재를 추천해 달라고. 이건 단순히 영어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물어보았더니 아이는 10세에 한국으로 온 중국 아이고 한국어는 곧잘 하나 한국학교에서 전반적인 학업 성취도는 낮다고 한다. 이런 경우 사실 영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영어는 가르쳐도 그다지 효과가 없다. 이 아이의 가장 큰 문제는, 모국어인 중국어 … [Read more...] about 모국어가 발달해야 외국어를 잘 익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