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문을 쓰지 못하는 한국 학생들
대학에서 영작문을 가르치다 보면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과연 ‘이 아이들은 모국어로는 글쓰기를 제대로 할 줄 아는가’라는. 모국어로도 제대로 글쓰기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아이들을 잡고 난 무엇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어 에세이 작문을 가르치다 보면 한국인이 가장 어려워하는 지점이 하나 있다. 한국인들이 어디서 왜 막히는지를 모르는 원어민 교수들은 향후 내용을 예상할 수 있게끔 하는 문장인 주제문(thesis statement)을 한 학기 내내 가르쳐도 그 한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고 탄식하며 한국인들은 정말 멍청한 게 아니냐는 말까지 하는 걸 봤다.
뭐, 일단 주제문에서 글의 요지(main idea)를 먼저 박아놓고 시작하는 글쓰기가 낯설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사고하는 방식’을 어떻게 훈련받았는가에서 오는 것 같다. 사실 주제문만 잘 잡으면 영어 글쓰기는 절반은 끝난 건데, 이 주제문이 나오기가 무지 힘들다.
자유 연상으로 에세이 토픽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그냥 적는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은 한국 학생들도 곧잘 한다. 문제는 다음 단계에서 드러난다. 아이디어들을 같은 계통으로 묶고(grouping), 묶은 그룹 전체를 포괄하도록 ‘동물은 소와 닭의 상위어(superordinate word)’ 식으로 상위어 찾아 붙이기(labeling). 이 사고 과정이 안 된다. 정말 환장할 정도로 안 된다. 이게 안 되니 주제문이 안 나온다.
서양인과 동양인의 다른 사고 계통
많은 고민을 했다. 왜 안 되는 걸까? 『생각의 지도(Geography of Thought)』라는 책에 따르면 동양인과 서양인은 개념을 같은 집단으로 묶는 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소를 먼저 제시하고 닭과 풀 중 하나를 묶어보라고 하면 80% 이상의 동양인은 소와 풀을 묶고 80% 이상의 서양인은 소와 닭을 묶는다고 한다. 동양인들은 ‘소가 풀을 뜯어 먹으니까’ 하는 ‘관계’를 보는 반면 서양인들은 ‘소와 닭은 같은 동물’이라는 이유로 ‘개념’을 묶는다.
이렇게 소와 닭을 한 그룹에 묶고 이 그룹에 ‘동물(animal)’이라는 상위어를 붙이는 사고 과정, 즉 개체들의 유사성을 통합하여 상위 개념으로 끌고 올라가는 상향식 사고(bottom-up thinking)가 한국인들은 잘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비단 영어뿐 아니라 전 과목에 걸쳐 아이들은 초등 1학년 때부터 그렇게 훈련받아왔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예로 들어보자. 아이가 5학년일 때 지구과학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외워야 하는 암석의 종류가 열거되어있고 편암, 현무암 등을 좔좔좔 외워야 했다. 노래를 만들어 같이 불러주며 외우게 시키다가, 어느 날 미국 과학 교과서를 들춰보고는 벌컥 화가 났다. 같은 암석에 대해 배우는데 그 교과서는 달랐다.
암석들을 보여주고 ‘어떤 게 색깔이 같아?’ ‘어떤 게 재질이 비슷해?’ ‘어떻게 부서져?’ 이런 질문을 던지며 만져보고 부숴보라고 한 후 암석들을 묶고 색깔별, 재질별로 채워넣게 한다. 그때야 비로소 ‘이런 색과 이런 재질을 가진 암석들을 이런 이름으로 불러’라고 제시했다. 분류하고 묶어내며 상위 개념으로 올라가는 훈련을 학교 교과 전반에 걸쳐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하향식 사고(top-down thinking)로 ‘상위 개념어 아래 이런 개체들이 존재한다’고 디밀어지는 정보를 그냥 외워야 한다. 이런 공부가 재미가 있을까? 이렇게 훈련시켜서 ‘창의성’은 키워지는 걸까?
한국의 영어 교육이 주제문을 제대로 못 쓰게 하는 이유
주제문을 쓰는 올바른 과정부터 살펴보자. 특정 에세이 토픽을 주면 아래 과정을 순서대로 따라야 한다.
우리 지역 사회에 대학이 설립된다고 한다. 당신은 찬성인가 반대인가?
- 일단 브레인스토밍을 한다. ‘상점들은 장사가 잘 될 거야’ ‘일자리가 늘어나겠지’ ‘지역 주민들의 교육기회도 생기겠지’ 등의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 그럼 ‘장사 잘된다’와 ‘일자리 증가’를 하나의 그룹으로 묶고 여기에 ‘economy pickup’이라는 상위어를 붙인다.
- 주제문이 이제 나온다: “나는 대학설립에 찬성한다.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개의 영작문 책은 1에서 3을 곧장 뽑아내라고 한다. 이건 원어민 아이들이 가능한 과정이다. 얘네들에게는 사고방식이 내재화 되어 있으니까. 그러나 한국인에게 영어로 에세이 작문을 가르친다면 반드시 2번 과정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
서양식으로 개념을 묶는 것(grouping)과 상위어 표제 붙이기(labeling with superordinate terms). 미시적으로는 이 두 가지 훈련이 한국인 대상 영어 에세이 작문 교수의 관건이다. 옥스포드 대학 토플 라이팅 연구진들에게 이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아주 흥미롭다고는 하더라. 그러나 원어민들이 외국인 대상 교재를 개발해서 이런 사고 과정을 훈련시킬 수 있겠는가? 난 못할 거라고 본다. 두 개 언어와 두 개의 사고방식을 교차하는 이들만이 할 수 있는 몫이 분명 따로 있다.
거시적으로는 교과과정 전체에 이런 사고 방식 훈련이 되는지 검토 좀 했으면 하는, 감히 내 분야를 넘어선 거창한 소원이 있다. 제발 주입식하지 말자고 하면 어떻게 하면 주입식이 아닌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닌가. 학습자가 “직접 묶고 올라가 표제어 붙이기” – 이 과정에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