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책을 읽히지 않아요. 저희 아들은 책 잘 안 읽습니다. 억지로 읽으라고 하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책으로 이끌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아들은 ‘시각형 학습자’가 아니에요. 청각형 학습자더라고요. 세계를 인지하고 파악하는 주 채널은 인간마다 다른 것 같아서, 강요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어릴 때 이런저런 판타지와 게임에 아들이 빠지면, 옆에서 지켜보다가 많이 꼬셔보기도 했지요.
“아, 그 캐릭터는 북구 신화의 어디에서 따왔지.”
“봐봐, 포켓몬 개발자들이 캐릭터 창조할 때 온갖 신화를 다 읽고 거기서 끌어온다고 하지? 그러니까, 커서 뭘 하든 간에 이런 리소스를 읽고 품고 자라면 그 자원은 엄청난 강점이 된단 말이지?”
이래도 별 소용이 없더라고요.
대신 아들은 동영상들을 엄청나게 많이 봅니다. 거의 대부분의 지식을 동영상으로 흡수하는 듯해요. 맨날 게임 해설이나 보고 웹툰과 웹 소설이나 보는 줄 알았는데, 보니까 ‘확증 편향’ 이런 걸 심리 동영상을 보고 알더라고요.
어떻게 알았냐, 책도 안 읽는 녀석이?
물어보니 뭔 유투브 동영상을 틀어 보여주는데, 어느 심리 전공자가 심슨 가족의 장면들을 잘라 넣어서 심리 현상의 예들을 설명하는 동영상 자료더라고요. 보면서, 와, 했습니다.
컴알못인 저한테는 동영상 자료 찾아서 (찾는 데 2시간 넘게 걸림) 잘라서 (이 소프트웨어 쓰는 거 서투름) 요약 정리해서 메시지 넣어 올리는 것, 엄청난 정성과 에너지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냅두기로 했어요. 아들 세대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구성하고 조직하는 방식이 우리 세대와 달라요. 직선적이고 논리적인 문자 기반의 사고를 하는 데 익숙한 우리 디지털 이민자(digital immigrant) 세대들은, 복사&붙여넣기와 퍼나르기로 방사형 확산의 구조로 정보를 파악하는 디지털 원어민(digital native) 세대와 다릅니다. 여기서 분명한 건 우리가 사라져야 할 구세대라는 것이죠.
필요하면 정보를 어디서 찾는지 알아보고 찾아보겠죠. 책이든 동영상이든. 가장 중요한 건 책을 읽어서 머리에 담고 다니느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정보는 어디서 찾을 수 있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꺼내서 가공할 수 있어’ 이런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아, 어릴 때 책을 읽어서 내면에 새겨지는 거요? 스토리텔링의 힘은 문자 텍스트가 가장 여백이 많아서 상상력을 부추기기는 하는데, 더 중요한 건 사실 그게 아니에요.
스토리텔링으로 ‘잇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봐요. 세대와 세대를 잇는 서사의 힘, 허구와 현실을 잇는 서사의 힘. 이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 무지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서 스토리의 힘으로 현실을 이으며 살아남은 케이스라 그 ‘잇기’의 힘을 알거든요. 하지만 아들에게 스토리는 저와 같은 의미가 아닐 거고, 따라서 ‘잇기’의 역할도 다르다고 봐요.
아들의 머릿속은 정보가 보다 직관적인 이미지로 정렬되어 있을 거예요. 그걸 아이는 ‘이을’ 줄 알아요. 그래서 꼭 책을 읽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은 경지가 있어요.
왜 책도 안 읽은 녀석이 글은 꽤 쓰지?
이런 게 참으로 의아했는데, 사실 스토리텔링의 힘은 전해지거든요. 엄마가 아이에게 해주는 이야기에서, 그리고 아이가 보는 유치찬란한 영웅물들을 아이가 거듭 얘기하며 재구성할 때에 엄마가 같이 거들어주고 피드백을 해주는 동안에, 아이는 스토리텔링의 ‘잇는’ 힘을 익히거든요.
책읽기는요, 공부도 마찬가지이지만, 할 놈만 해요. 할 놈만 하게 내버려 두어도 된다고 봐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거, 부모가 늘 책을 읽는 모습을 보이면 스토리텔링의 ‘잇는’ 힘을 전수받은 아이들은 언제든 책으로 손을 뻗는다는 인생 선배의 말을 믿어요. 책은 항상 아이가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있어요. ‘잇는’ 힘을 전수해주면 언제고 읽을 거예요.
원문: Joyce Park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