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로 문해력을 키우지 못하면 인지 발달이 뒤처진다
조금 전에 질문을 받았다. 다문화가정의 중3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be 동사 변화도 모른다고, 맞는 교재를 추천해 달라고. 이건 단순히 영어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물어보았더니 아이는 10세에 한국으로 온 중국 아이고 한국어는 곧잘 하나 한국학교에서 전반적인 학업 성취도는 낮다고 한다.
이런 경우 사실 영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영어는 가르쳐도 그다지 효과가 없다. 이 아이의 가장 큰 문제는, 모국어인 중국어 문해력이 발달할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모국어 문해력은 사람의 인지발달 틀이 되어 주는데, 이게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상태에서 외국에 던져지면 외국에서 서바이벌하는 데 급급해서 모국어 문해력이 딱 떠나올 때 그 수준으로 머무르게 된다.
스피킹을 말하는 게 아니다. 중국어든 한국어든 생활에 지장에 없을 정도로 구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극히 낮은 나라라서 읽고 쓸 수 없는 사람들의 인지 발달이 어디에서 그치는지, 혹은 읽고 쓰기를 통해 인간의 인지 발달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잘 모른다.
미국 쪽 연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해서 읽기를 제대로 배우면(기존에 노출을 통해 귀로 주워들어 배우던 상태에서 벗어나) 어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초등 2년 정도 되면 3배에서 5배가 늘어난다고 본다. (이게 읽고 쓰기의 힘이다. 그러나 이건 단지 어휘 수만 측정한 거고, 인지능력은 읽고 쓰기를 통해 얼마만큼 발달한 것 같은가?)
이 아이의 학업 성취도가 전반적으로 낮다는 건 한국어 문해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즉 스피킹만 능숙하다는 뜻인데, 살아남기 위해 스피킹은 그 정도로 늘었을 거다. 다만 모국어와 제1외국어 둘 중 하나로든 인지 발달이 읽기 경험을 통해 이루어져야 했는데, 가정환경이 좋지 않고 부모가 열성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특별히 신경 써주는 교사가 초등학교 이른 시절에 없었더라면 이건 불가능하다.
영어는 아마 생활어, 그러니까 스피킹으로 사는 데 지장 없을 수준으로 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모국어가 그리는 틀, 제1 외국어가 그리는 틀 안에서만 발달할 수 있다.
사실 이건 다문화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기 유학 간 아이들이 겪는 문제다. 모국어로 제대로 문해력을 키우지 못해서인지 발달에 뒤처진 아이들에게 영어로 서바이벌하라는 미션을 주면 서바이벌하는 데 급급해서인지 발달이 뒤처질 수 있다. 부모가 지대한 관심을 쏟고 학교에서 랭귀지 서포트를 따로 해주고 하면 극복할 수도 있지만, 못할 수도 있다.
중학교 시절 유학 간 아이들이 의외로 굉장히 골치가 아프다. 모국어를 해도 고급 수준으로 못하고, 영어를 해도 원어민처럼 못할 수 있다. 더 결정적인 건 이 시절이 이제 비로소 추상적 사고가 가능해지는 시절이다. 이건 전적으로 언어, 특히 문자 언어를 통해서 할 수 있는데 이 시기에 한국어든 영어이든 어느 쪽 언어로든 이걸 해내야 인지 발달과 지적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서바이벌 영어 배우느라 이 시기에 그걸 놓친다.
이런 아이들이 생활 영어는 그럴싸하게 하는데, 토론을 시키면 횡설수설하고 라이팅을 써서 가져오라고 하면 대체 뭔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글을 보게 된다. 어차피 인지 발달이 제대로 안 되어서 미국 대학 진입에 실패하고 한국 대학에 어떤 전형인지는 몰라도 들어오긴 하는데, 그런 애들 대학에서 가르치는 영어 교수들은 꽤 골머리를 앓는다.
이 아이들을 누가 가르치는가
지방으로 내려가면, 경기도만 해도 비도시권으로 가면 중학생인데 알파벳을 읽지 못하는 애들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이런 아이들을 우리나라에서는 공교육이 감당 못 한다.
돈이 남아돌아서 사교육으로 강점을 만드는 아이들은 부모 돈으로 그렇게 하라고 하면 된다. 공교육이 하향 평준화된다고 불평하는 사람들 있는데, 아니 공교육은 하향 평준화를 위해 존재하는 거지 당신 자녀를 위한 맞춤 학원이 아니다. 공교육은 기회 균등화, 혹은 불평등하게 태어나서 불리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디딤돌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이런 애들을 감당을 못한다.
실제로 감당하는 분들은 의외로 작은 학원 체인의 지방 분점 영어 강사들이다. 한 달에 몇만 원 하는 학원비로 이네들이 감당한다. “이런 아이들은 어쩌죠?” 하고 질문을 들고 오는 선생님들도 바로 이 보습학원 체인 강사들이다. 보습학원 강사분들 트레이닝을 할 때 애틋해지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 사회의 약자들, 아마도 부모 잘못 만나 계속 약자로 살아갈 어린이 약자들을 정작 감당하는 건 또 어찌 보면 여자라는 약자. 그것도 지방에서 제대로 된 직장이 없어서, 혹은 결혼하고 할 일이 이거 외엔 없어서 변방으로 밀려난 여자들이라는 점. 이 지점이 애틋하다.
원문 : Joyce Park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