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안경이 처음 들어온 때는 병자호란 이후로 추정된다. 지금이야 흔한 물건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유리를 볼록하게 하거나 오목하게 만들어서 사물을 잘 보이게 하는 안경은 과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망원경과 현미경만큼은 아니더라도 만들기 쉽지 않았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안경의 확산을 막은 것은 제작의 난이도나 가격이 아니었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김준혁 교수는 저서 『화성, 정조와 다산의 꿈이 어우러진 大同의 도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병자호란 이후 북경에서 안경이 … [Read more...] about 갈릴레이의 과학기술, 정조의 과학기술
박사학위 박탈사
업무상 과학기술인을 자주 만난다. 가끔 호칭 때문에 당황한다. 특별한 직책이 없으면 통칭해서 ‘박사님’이라고 부르는데 종종 이런 답이 돌아온다. “아직 박사는 아니고요. 그냥 선임 연구원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원고에 ‘○○○ 박사’라고 썼다가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박사라고 하면 안 되는데….” 항의를 한 분은 당사자였고 곤혹스러워했다. 기술원을 연구원이라고 표기해 나중에 수정한 적도 있다. 지금은 기술원·연구원, 선임·책임을 구분하지만, 처음에는 자주 헷갈렸다. 과학기술 분야에도 … [Read more...] about 박사학위 박탈사
“나는 투표한다, 고로 존재한다”
투표는 과학적일까? 여론조사는 과학적일까? 많은 과학자들이 투표와 여론조사의 비과학성을 증명했다. (…) 하지만 사이버 브레인(Cyber brain)의 시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100% 읽을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역설적으로 투표와 여론조사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선거 당일 투표소에 가서 투표용지에 지지후보를 찍는 행위는 가장 ‘인간다운’ 모습일지 모른다. 투표는 과학적일까? 많은 사회학자나 심리학자, 과학자들이 의문을 던졌다. 인간의 심리와 행동이 늘 합리적이거나 과학적으로 … [Read more...] about “나는 투표한다, 고로 존재한다”
기억해야 할 과학기술계의 적폐들
얼마 전 연구원에서 일하는 한 지인을 만났다. 시시콜콜한 잡담 몇 마디를 주고받은 뒤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정치 얘기로 넘어갔다. 놀랍게도 그는 찍을 후보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두 명 중 한 명인데 아직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했다는 거다. 그러면서 “A는 큰 틀에서 과학을 보는 것 같고, B는 세부적으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이쪽을 조금이라도 더 잘 아는 사람을 뽑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종사자이니 아무래도 과학기술 정책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 [Read more...] about 기억해야 할 과학기술계의 적폐들
‘히든 피겨스’와 네 개의 적
그들이 겪어야 했던 네 개의 대결 : 미국 vs 소련, 백인 vs 흑인, 남성 vs 여성, 그리고 기계(컴퓨터) vs 사람 뻔한 이야기다. 영화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여성(들), 그것도 흑인 여성이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극복하고 인류(미국)의 위대한 우주 도전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다.' 뻔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다. 화려한 볼거리로 혼을 쏙 빼놓는 방법. 할리우드판 '국뽕 영화'가 대게 그렇다. <진주만>이나 <인디펜던스 데이> … [Read more...] about ‘히든 피겨스’와 네 개의 적
‘문라이트’ 달빛 소나타 같은 어떤 사랑
‘문라이트’는 따지고 보면 (첫)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샤이론과 그의 유일한 친구 케빈. 어느 날 달빛 푸른 바닷가에서 여느 때처럼 장난치고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약 기운 때문일까. 둘은 평소에 느끼지 못한 감정에 젖고 순간 선(?)을 넘는다. 그것은 충동이었을까? 장난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기댈 곳 없고, 갈 곳 없는 사춘기 두 소년이 서로에게 건넨 잠깐의 위로였을까? 그날 밤 샤이론은 케빈에게 쓸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난 너무 많이 울어서 어쩔 땐 눈물로 … [Read more...] about ‘문라이트’ 달빛 소나타 같은 어떤 사랑
우리는 왜 과학(책)을 읽는가?
지인들에게 이런 농담을 자주 하곤 한다. “나는 수학 덕분에 대학 갔어.” 오해하지 마시라. 수학을 남들보다 월등히 잘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른 과목(여기서 점수는 차마 밝히지 못하겠다. 특히 영어 점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전 과목 총점으로 순위를 매기는 학력고사 세대이기에 망정이지 과목별 등급으로 대학을 가는 수능 세대였다면 대학 진학은 어려웠을 것이다. 어쩌면 때늦은 과학책 ‘입덕’은 영어 못하는 문과생, 수학 덕분에 대학 간 문과생이라는 일종의 죄책감 때문이었는지도 … [Read more...] about 우리는 왜 과학(책)을 읽는가?
『노르웨이의 숲』 속 소설들
『노르웨이의 숲』을 덮으며 갑자기 나의 확신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 책을 읽었던가? 나는 누군가 『노르웨이의 숲』을 읽어봤냐고 물으면 그동안 자신 있게 "없다"라고 답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그런데 책을 덮으며 의심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읽었던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설사 이번이 열 번째라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열 번째 읽고 책을 덮으면서도 나는 똑같은 의심을 할지 모른다. 과연 내가 이 책을 … [Read more...] about 『노르웨이의 숲』 속 소설들
논문 쓰는 대통령
우리는 왜 그들의 말과 글에 열광하는가 지난해 말 영국의 온라인 학술활동 분석기관인 알트메트릭(Altmetric)에서 ‘2016년 100대 인기 과학 논문’을 발표했다.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발표된 과학 논문 가운데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논문을 점수별로 순위를 매긴 것이다. 1위는 전미의학협회저널(JAMA)에 발표된 「미국의 보건의료 개혁: 진척 현황과 다음 단계」라는 제목의 논문이 차지했다. 이 논문은 무려 8,063점으로 중력파 검출(4,660점), 거대 제9행성 존재 … [Read more...] about 논문 쓰는 대통령
악마의 얼굴은 평범하다
과학의 이름으로 자행된 만행 1946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살던 시미언 쇼라는 4세 소년은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뼈에서 심각한 암세포가 발견된 것이다. 1년도 채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에 시미언 쇼의 부모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에 젖는다. 이때 1만 6,000km나 떨어진 곳에서 기적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 의료진이 시미언을 치료해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연구진이었다. … [Read more...] about 악마의 얼굴은 평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