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에게 이런 농담을 자주 하곤 한다.
“나는 수학 덕분에 대학 갔어.”
오해하지 마시라. 수학을 남들보다 월등히 잘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른 과목(여기서 점수는 차마 밝히지 못하겠다. 특히 영어 점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전 과목 총점으로 순위를 매기는 학력고사 세대이기에 망정이지 과목별 등급으로 대학을 가는 수능 세대였다면 대학 진학은 어려웠을 것이다. 어쩌면 때늦은 과학책 ‘입덕’은 영어 못하는 문과생, 수학 덕분에 대학 간 문과생이라는 일종의 죄책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과학책 입문자가 그렇듯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Cosmos)』를 읽으며 우주가 결국 인간 근원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진경의 『수학의 몽상』을 보면서 수학과 철학은 이음동의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Sapiens)』를 접하며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목표가 결국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슈테판 클라인 등 과학자 13명이 삶과 존재, 우주를 이야기한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We Are All Stardust)』를 만나면 과학자와 시인은 다른 언어로 같은 세상을 묘사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법 폼 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고전역학과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으로 대표되는 물리학은 글자 그대로 범접하기 어려운 무정한 세계였고, 다윈의 진화론과 미적분으로 대표되는 수학은 넘어설 수 없는 잔인한 세계였다. 과학적 이론은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고, 인문학적 접근은 늘 표류했다. 그것은 마치 보잘것없는 수학 점수로 턱걸이하듯 대학에 들어간 문과생에 내려진 형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과연 과학은 과학 전공자들에게만 허락된 신세계란 말인가?
과학혁명과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
그럴 때쯤 만난 책이 과학저술가 정인경의 『뉴턴의 무정한 세계』였다. 2년 전엔가 ‘자발적 실업자’ 신세로 부유하고 있을 때 이 책을 처음 접했다. 첫 만남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과학적 감성과 인문학적 통찰을 키워주는 한국+서양 크로스 과학’라는 카피 문구에 속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실망감은 책의 내용과 깊이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의 형편과 사정이 책에서 던지는 화두를 제대로 이해할 만큼 녹록하지 않았다(고 핑계를 댄다).
최근 이 책을 다시 펴 든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인용할 문구를 찾기 위해 책을 뒤적이다가 조금씩 자세를 고쳐 잡았다. 찾던 문구만 보고 덮으려던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고 있었다. 이런 의문도 들었다. ‘내가 이 책을 과연 읽었던 걸까?’ 다시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에서 던지는 질문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은 과연 가치중립적인가? 서구의 근대 과학은 우리에게 어떻게 이식되었는가? 우리에게 과학이란 과연 무엇인가?
책은 우선 과학혁명을 이끈 대표적 인물과 그들의 과학적 성과를 소개한다. 시작은 당연히 뉴턴이다. 뉴턴은 고전역학의 창시자로 서양의 근대 과학을 상징한다. 그는 당시 분열되어 있던 과학적 방법론을 통합한다. 케플러의 신비주의적 힘을 만유인력으로 상상했고, 갈릴레오를 본받아 자연에 대한 수학적 해석을 굳게 믿었다. 천체의 운동과 지상의 운동으로 나뉘었던 세계를 통합해 하나의 운동법칙으로 설명하는 우주를 발견했다. 시간, 거리, 속도, 가속도 등을 통해 모든 운동법칙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미적분학은 이렇게 탄생했다.
뉴턴이 천체역학 혹은 고전역학으로 불리는 새로운 과학 분야를 개척했다면, 다윈은 생명과 인류의 기원을 규명했다. 다윈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완성했다. 그의 업적은 진화론이 아니라 ‘자연선택’에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진화를 일으키는 추진력, 진화의 메커니즘이 자연선택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자연선택은 조금이라도 생존에 유리한 변이를 가진 개체들이 더 잘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린다. 이러한 자연선택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나면 새로운 종을 만들게 된다. 인류도 그렇게 진화했다.
아인슈타인은 다섯 개의 혁명적인 논문을 통해 뉴턴의 고전역학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현대 물리학의 역사를 새로 쓴다. 첫 번째 논문을 통해 빛이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는 사실을 규명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논문에서 원자의 존재를 입증했다. 또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는 특수상대성이론을 네 번째 논문에서 발표한다. 이어 다섯 번째 논문을 통해 유명한 공식 E=mc²을 도출하는 일반상대성이론까지 완성한다. 시간과 공간에 이어 질량과 에너지까지 하나로 통합시킨 것이다.
무정하고 잔혹했던 서양의 근대 과학
이러한 과학혁명은 유럽이 세계를 제패한 힘의 원천이었다. 과학혁명을 바탕으로 산업혁명까지 성공한 서구 열강은 식민지 쟁탈전에 나선다. 하지만 우리는 사정이 달랐다. 저자는 말한다.
“1910년대 이광수가 접촉한 서양의 근대 과학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 삶의 뿌리를 해체시키는 무정하고도 잔혹한 세계였다. 이광수는 우리가 과학을 모른다고 한탄했는데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과학의 어려움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 서양의 근대 과학은 ‘뉴턴의 무정한 세계’였던 것이다.”
무정하고도 잔혹한 세계는 두 청년의 엇갈린 운명을 통해 단적으로 표출된다. 식민지 조선의 천재 시인 이상(李箱)과 일본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서울대 공대의 전신)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 엔지니어였다.
동시에 수학, 물리학, 기하학 등 공학과 자연과학의 세계를 건축뿐 아니라 시(詩)의 언어로 표현한 천재였다. 하지만 그는 1937년 도쿄에서 ‘불량한 조선인’으로 체포된다. 폐병 악화로 풀려났지만, 결국 그해 4월 눈을 감는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경성의 ‘모던보이’에게 식민지의 현실은 벗어날 수 없는 가혹한 운명의 굴레였다.
이상은 이국땅에서 꽃다운 생을 마감했지만, 유카와 히데키는 그 나이에 화려한 꽃을 피운다. 중학교 4학년 때 당시 일본을 찾은 아인슈타인의 강연을 마치 “음악이나 영화를 감상하듯” 들었다고 한다. 독일의 하이젠베르크와 영국의 디랙, 덴마크의 보어 등 당시 물리학의 변혁을 주도하던 젊은 과학자들(이들은 모두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을 일본에서 직접 접하며 자극을 받았다. 유카와는 1934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중간자 이론’을 발표해 일약 세계 물리학계의 스타로 발돋움한다. 그리고 194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우리는 누구고 어디에서 왔는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와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두 청년의 삶은 당시 과학을 받아들인 식민지 조선과 침략국 일본의 운명을 상징한다. 일본과 달리 우리는 과학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식민 지배를 받았다. 저자는 다시 한번 이렇게 탄식한다.
“서양인에게 친숙한 과학은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남의 이야기다. 우리는 과학이 생산된 역사적 맥락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과학은 서양 천재들의 먼 나라 이야기처럼 생소하다. (…) 우리에게 과학은 그저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픈 상처까지 주었다.”
『뉴턴의 무정한 세계』는 우리가 과학을, 과학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기준과 방법을 제시한다. 과학 이론을 이해하려는 노력 못지않게 역사와 사회에 관한 관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뉴턴에서 이광수의 『무정』을, 다윈의 진화론에서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아인슈타인에서 이상의 『날개』와 같은 시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과학책을 교양서로 읽을 이유가 무엇이냐고 책은 반문한다. 결국 과학책은 우주와 역사와 인간에 관한 고찰과 탐구이기 때문이다.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시인 이상이 『날개』의 마지막 구절에서 이렇게 노래한 것은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통해 우주와 역사와 인간을 관통하는 이치를 깨우치고 싶었던 간절한 절규였는지도 모르겠다. 복잡한 물리학과 수학 공식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더라도 더 자주 과학책을 읽을 생각이다.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가? 과학은 그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원문: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