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는 과학적일까? 여론조사는 과학적일까? 많은 과학자들이 투표와 여론조사의 비과학성을 증명했다.
(…) 하지만 사이버 브레인(Cyber brain)의 시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100% 읽을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역설적으로 투표와 여론조사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선거 당일 투표소에 가서 투표용지에 지지후보를 찍는 행위는 가장 ‘인간다운’ 모습일지 모른다.
투표는 과학적일까? 많은 사회학자나 심리학자, 과학자들이 의문을 던졌다. 인간의 심리와 행동이 늘 합리적이거나 과학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인지 심리학자 모테를리니가 『심리상식사전』에서 소개한 사례는 선거 때면 자주 인용된다.
여기 세 후보가 있다. A는 애인도 있고 줄담배를 피우며 술을 하루에 6~10병을 마신다. B는 대학 시절 마약을 했고 우울증 증세가 있으며 공직에서 해임된 경력도 있다. C는 술·담배를 멀리하는 금욕주의자인 데다 전쟁에 나가 무공훈장도 받았다. 당신은 누구를 찍을 것인가?
당신의 선택에 놀라지 마시라. A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B는 윈스턴 처칠, C는 아돌프 히틀러였다. 당연히 C를 믿을 만한 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전형성의 함정’이라고 부른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는 한 걸음 더 나간다. 그는 민주주의의 대전제인 합리적 의사결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물론 민주주의 제도가 성숙하지 못했던 1950년대였지만 만장일치의 원칙, 이행성의 원칙 등을 바탕으로 다수결의 의사결정이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도출한다. 이른바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다.
전형성의 함정,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
그렇다면 여론조사는 과학적일까?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20세기 초 인기를 끌었던 비결은 여론조사였다. 1916년 미 대통령 선거에서 엽서를 이용한 여론조사 방식으로 윌슨의 당선을 맞췄다. 하지만 1936년 선거에서는 다이제스트의 예상과 달리 루스벨트가 승리했다. 반면 처음으로 표본인구 개념을 도입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갤럽은 당선자를 정확히 예측했다.
지난번 미 대선에서 대부분 여론조사는 힐러리 클린턴의 우세였다.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였다. 우리 역시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와 관련해 이런저런 논란을 빚는다. 공정성 시비는 단골손님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통신수단과 여론조사 기법은 갈수록 진화하는데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건 갈수록 어렵다.
2016년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뉴럴 링크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뇌 질환 연구를 내세우지만, 인간의 뇌에 칩을 심어 정보와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술 개발이 핵심 목표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겠다는 것인데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하버드대 연구팀이 뉴럴 레이스(신경 그물망)를 이용한 뇌 측정 기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4월에는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가 ‘마음 읽기’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생각을 직접 텍스트로 전환하는 기술로, 페이스북 친구들과 사진을 공유하는 것처럼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광학기기를 착용하면 그가 떠올린 이미지를 텍스트로 전환한다. 이 기술은 ‘침묵의 대화 인터페이스’라고 불린다.
언젠가 사라질지 모를 ‘투표 행위’
모든 사람의 뇌를 유·무선으로 연결해 네트워킹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사이버 브레인(Cyber brain)의 세상. <공각기동대>와 같은 영화 속 세상이 실제로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때도 투표와 여론조사는 유효할까?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100% 정확하게 반영하겠지만, 이런 이유로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선거 당일 투표용지에 지지후보를 찍는 행위는 가장 ‘인간다운’ 모습일지 모른다.
전형성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고, 투표의 역설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투표는 여전히 우리가 가장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고귀한 행동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시대를 목격할지 모른다.
나는 투표한다, 고로 존재한다.
영화 <공각기동대>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기억이 우리를 정의하는 것처럼 기억에 집착하지만, 우리를 정의하는 건 행동이다.
원문: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