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수혈할 피가 부족하다 가끔 있던 상황이지만 올 들어 심하다. 전반적으로 혈액 보유량이 계속 줄어드는 추세라, 다른 병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국 혈액의 적정 보유량은 5일 분량이지만, 상반기 적정량이 유지된 날은 20% 정도에 불과했다. 여분이 이틀 아래로 떨어진 날도 많았다. 전국적으로 혈액 보충이 이틀만 끊기면 아무도 수혈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수혈 가능과 불가능은 현격한 차이다. 특히 당사자에게는 직관적인 위협이다. 보유량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치료가 진행되지만, 혈액이 … [Read more...] about 병원에 수혈할 피가 부족하다
‘안방의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그리고 남은 문제들
1. 어느 '괴질'의 원인이 밝혀지기까지 '괴질'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이렇게 나온다. 증상이 보통 앓는 병과 다르기 때문에 괴상하다 일컫는 27가지 병 『동의보감』에 '괴질'은 맨날 고기가 먹고 싶다든지, 물건이 전부 거꾸로 보인다든지, 몸에서 물소리가 난다는 등의 이상한 증상으로 나열된다. 중세와 근대에서 이 단어는 약간은 철학적이면서 몽롱한 표현으로 사용되어 왔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괴질'은 현대 의학을 배운 의사 사이에서도 종종 쓰인다. 물론 맨날 고기가 먹고 싶은 환자를 … [Read more...] about ‘안방의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그리고 남은 문제들
비 오는 날 어른거리는 어느 소방대원의 등
지금도 기억하는 한 특별한 환자가 있다. 예보에도 없이 급작스럽게, 온 세상을 천둥소리와 함께 흠뻑 적셔버리는 대단한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늘 냉방이 서늘하게 유지되는 응급실의 공기마저 축축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 환자들도 그날은 조금은 습기 어린 상태로 날 맞이했다. 그리고 평범한 환자들 사이로, 그 특별한 환자는 들어왔다. 기본적으로 그 환자가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너무 확률이 낮아 도저히 불가능하다고까지 생각할 수 있는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바로 벼락을 맞은 … [Read more...] about 비 오는 날 어른거리는 어느 소방대원의 등
그날 성공한 다섯 번째 자살자
1. 목을 매면 인간은 죽는다. 이것은 가장 성공률이 높은 자살 방법이다. 목이 매여진 인간은, 기적이 오지 않는 이상 조용히 죽는다. 죽는 기전엔 두 가지가 있다. 교수형의 방식과, 목을 매 자살하는 방식이 있다. 교수형의 방식은 경추를 탈골시키는 방식이다. 집행인은 사형수를 세워 놓고 두꺼운 끈을 턱과 뒤통수에 두른다. 만반의 준비가 되면, 집행인은 집행 장치의 버튼을 누른다. 이 가벼운 압력이 버튼에 가해지면 사형수가 서 있는 바닥이 갑자기 열린다. '덜컹'. 사형수의 하중이 … [Read more...] about 그날 성공한 다섯 번째 자살자
시시각각 죽음을 생각하며 영속할 것처럼 아름답게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삶과 죽음, 정확히 말하면 주야장천 죽음만을 읊는 책을 두 권 냈다. 그리곤 내 삶에 소소한 변화가 생겼다. 그중 하나는 각계각층에서 죽음을 읊는 책이 내게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보통 죽음을 다루거나, 죽음을 깊이 생각했거나, 죽은 사람들이 써낸 한 권의 책에 첨언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줄거리도 다양했다. 죽음을 앞둔 신경외과 의사의 유명한 수기부터 시작해서 죽은 권투선수, 죽음을 앞두고 자전거 일주를 한 사내의 책, 수많은 죽음을 목도한 의사의 책이 두 권, 죽음을 연구한 의사와 … [Read more...] about 시시각각 죽음을 생각하며 영속할 것처럼 아름답게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응급실로 돌아온 그 사람
1. 나는 분명히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죽음이 막연했던 의대생 시절, 죽고자 하는 생각의 갖가지 변형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떠난 적이 없었다. 당시의 나는 밤마다 강박적으로 글을 지어댔다. 그 글들은 벌판에서 던진 부메랑처럼 멀찍이 날아갔다가 죽고자 한다는 생각의 귀결로 홀연히 돌아왔다. 게다가 그것들은 읽거나 이해하기 힘든 종류의 구성을 지녔다. 기록에선 몇 가지 자해의 방법과, 자살하려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죽음에 닿아야만 하는 부끄러움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들을 모아둔 … [Read more...] about 응급실로 돌아온 그 사람
개가 사람을 물었다, 그리고 사람이 죽었다
0. 개가 사람을 물었다. 지목된 가해자는 한류스타 최시원의 가족, 피해자는 유명 음식점 대표, 사람을 물었던 전력이 있었지만 목줄을 하지 않고 방치되었던 맹견, 피해자는 패혈증으로 사망, 이 한 사건은 벌써 자극적인 키워드로 가득하다. 덕분에 '최시원 연예계 퇴출 요구', '반려견에 대한 최시원 법 제정', '두 집안의 법적 다툼', '개 안락사', '사이코패스의 반려견 생일 파티'부터, '공포의 질병 패혈증이란 무엇인가?'라는 키워드까지 온라인을 뒤덮고 있다. 지금까지 기사화된 … [Read more...] about 개가 사람을 물었다, 그리고 사람이 죽었다
캔디 크러시
그들은 기분이 좋았다. 수와 진은 막 얼큰히 취해서 길을 걷는 중이었다. 진은 연신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렇게만 살면 좋겠다. 맛있는 것도 배불리 먹고.” 추리닝 바람의 고시생들이 담배를 물고 그들을 지나쳤다. 취기가 올라온 그의 눈에는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 행복해져 있었다. 진은 취기에 의미 없는 말을 반복했다. “아까 저 사람 뚱뚱한 것 봤어? 아까 저 사람 귀걸이 한 것 봤어? 아까 저 사람 입은 옷 봤어?” 수도 취기에 대답했다. “으응 다 봤어. 좋다. 좋다. 다 좋다. … [Read more...] about 캔디 크러시
번개가 치면 응급실에서는
1.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입니다. 장마철의 날씨는 역시 종잡을 수가 없지요. 출근하는 아침 나절만 해도, 참으로 맑고 공기가 서늘했습니다. 비 예보가 있기는 했지만요. 지금은 온 세상을 구석까지 씻어버릴 것처럼 비가 쏟아집니다. 쿠르릉 거리는 천둥번개 소리와 함께요. 이 복잡한 건물 외벽을 타고 모인 비가 줄줄 흘러 내려가는 것이 답답한 실내에서도 느껴질 정도입니다. 에어컨으로도 감출 수 없는 어디선가 쏟아져 들어오는 습기와, 건물을 무엇인가 두드리고 있다는 비의 둔중한 감각이 같이 … [Read more...] about 번개가 치면 응급실에서는
그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취해 다투었을 것이다
0. 서울 혜화경찰서는 술을 마시고 동거녀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42살 홍 모 씨를 검거했습니다. 홍 씨는 지난 1일 새벽 서울 창신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동거녀 37살 이 모 씨를 여러 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경찰은 홍 씨가 이혼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어오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YTN news 1. 새벽 4시 45분이었다. 토요일, 사람들이 열기를 내뿜을수록 이곳의 나는 죽을 만큼 시들어 간다. 솜처럼 지친 새벽, 한 … [Read more...] about 그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취해 다투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