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서울 혜화경찰서는 술을 마시고 동거녀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42살 홍 모 씨를 검거했습니다. 홍 씨는 지난 1일 새벽 서울 창신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동거녀 37살 이 모 씨를 여러 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경찰은 홍 씨가 이혼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어오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YTN news
1.
새벽 4시 45분이었다. 토요일, 사람들이 열기를 내뿜을수록 이곳의 나는 죽을 만큼 시들어 간다.
솜처럼 지친 새벽, 한 통의 급박한 전화가 온다. 30대 여자의 급사에 관한 소식. 보통 이런 전화는 받아 들어 상황을 듣고 끊는 순간, 바로 응급실 문이 열리고 그 사람이 들어온다. 현장에서의 절박한 처치, 아직 죽지 않은 자를 들쳐 업고 차에 실어서, 의료지도와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기도 삽관을 하고 현장 상황에 때로는 절망해가며 적막한 도로를 요란하게 운전해 병원으로 오다가, 마지막으로 하는 것이 병원 통보다 .이 전화를 받는 순간, 나는 그 모든 과정이 일어났음을 감지해야 한다. 곧 죽어갈 사람이 치열하게 실려 와 내 눈앞에 나타날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많은 의문 없이 여러 채비를 했다. 큰 각오랄 것도 없었다. 단지,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최선의 노력을 해도, 거의 죽어버린다. 죽이지 말아야 한다. 최선을 넘어선 최선을 해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솜처럼 지친 몸이 뻣뻣하고 힘이 들어갔다. 가운을 벗어 던지고, 불투명 라텍스 장갑을 손에 당겨 낀 나는 이를 한번 악다물고 응급실 문 밖으로 나선다. 여름 밤은 짧았고, 수많은 이들의 유희는 동이 트면 끝난다. 빨갛고 위용 있는 글씨로 써 있는 거대한 응급의료센터 간판에도 간밤을 지내고 미광이 비추고 있었다.
곧 오늘 새벽의 주인공이 도착했다. 수화기로 전해 들었던 30대의 여자, 급박히 처치실로 옮기며 그녀의 이전 존재들을 되짚었지만, 이미 흉흉한 폐가 같은 반점이 그녀의 얼굴을 뒤덮고 있었고, 악관절은 질겨진 고기 같이 굳어 있었다. 적어도 이 사람에게는 최선의 의학적인 고뇌는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녀는 이전의 존재뿐이었던 것이다.
2.
“이 사람을 발견한 것은 언제지요?”
“30분 전입니다. 숨을 쉬지 않고 있었습니다.”
“혹시 이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실까요?”
“같이 사는 사람입니다.”
“같이 사는 사람을 이제서야 발견한 이유는 뭐지요?”
“우린 다퉜거든요. 벽 하나 사이를 두고 냉전중이였어요.”
“아, 이 분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이미 모든 것이 정지했고, 그것이 오래 되었습니다. 이 정도를 건너간 사람이 되돌아 오는 방법은 없습니다.”
“…”
3.
많은 외상은 없었다, 아니 아무 외상이 없었다고 해도 맞았을 것이다. 여기 오게 되는 수많은, 그래서 낯익은 구타의 흔적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사체에게 묻거나, 사체를 뒤져 검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치명상에 관해서는 부검대에서 그녀의 머리와 배를 갈라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무지 알 수 없어, 참으로 허무한 죽음이였다.
둘이 동거하는 집에서 맥주를 나누어 마신 토요일 새벽, 그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취한 낯빛으로 말다툼했을 것이다. 그러다간 여느 때와는 다르게 자기도 모르는 살기가 담긴 손을 뻗었던 것이겠지. 그 몰캉한 손이 사람을 죽일 줄 알았을까. 그 날만큼은 절대로 다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을까. 차라리, 팔월 초하루의 살기가 그녀를 죽였다고 해야겠다. 동이 평온하고도 침착하게 일찍 터오던 새벽에, 세상 한 켠에서 벌어지던 예기치 못한 살육의 광기를. 나는 그렇게 불러야겠다.
그 날이, 그렇게 잘못된 날이였다고.
4.
남자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였다. 내 입에서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인자가 되었다는 것에 앞서, 죽은 이를 두고 같이 보낸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같이 살다 갑자기 죽은 이란, 그런 것이다. 육신에게 틈이 생겨 한 사람에게 남김이 된다는 것. 그 통보를 들은 그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녀를 두고 감싸던 한 꺼풀의 배후였다. 그것을 나는 남자에게서 읽을 수 있었다.
자기가 낼 수 있는 한계의 비명을 지르던ㅡ아마 비명을 지르고, 세상 안에서 그것을 사람들이 듣는 일은 당분간은 오지 않을 것이니ㅡ남자는 급기야 시체를 붙잡고, 그 보랏빛 반점으로 덮인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허우적대며, 절박하게, 꾹 닫힌 입술 너머로 취기가 남은 숨을 불었다. 숨은 경박한 소리와 함께 허공을 겉돌았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눈살을 찌뿌렸다. 몇 명은 이미 고개를 돌려 소생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5.
“5분만입니다. 사체와 둘만 남겨 둡시다.”
6.
비명, 절규라는 단어로도 표현이 되지 않는 외침을 무엇이라고 부를까. 절규가 죽은 것을 여전히 절규라고 부를 수는 없을 터인데, 연인과 자신의 부재를 전부 일갈하는, 존재에 관한 기담과도 같은 외침의 향연. 정신이 나가버린 넋두리와 사위들과, 어디선가 본 듯한 심폐소생술을 따라하다가, 그냥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울리다가, 다시 테이블을 붙잡고 몸을 늘어뜨리다가, 다시 최후의 키스인지 인공호흡인지 모를 입술의 어기적거리는 맞댐.
‘살아, 살아나란 말이야. 살아야 해. 일어나. 살아야한다고.’
하지만 그녀는 어이없이 떠나 누워있고, 그 참담하지만 대답 없는 질문들. 그리고 그것이 전부 죽어버린 것들.
유희는 오래지 못했다. 성실한 서울 혜화경찰서는 몰려와서 사건을 녹취하고 맡은 바 소임대로 그것을 송취하고 남자는 결박해갔으며, 육신의 틈을 마구 사진으로 찍어댔다. 큰 반향도 없고, 모든 것이 명백한 사건이였다. 사체는 미리 정해진 대로 정리되고, 사건도 그간 해왔던 방법대로 처리되었다. 순식간이였다. 하필 살(殺)의 날을 택한 한 자에게, 전부였던 마지막 날이 저무는 것은.
7.
더 지쳐버린 나는 소란을 두고 사체가 보이는 자리에 엎어져 풋잠이 든다. 이십 분쯤 뒤에 비적대며 깨어나니, 소생실 침대는 갓 빨래한 하얀 린넨으로 덮여있고, 응급실은 훵 하게 비었다. 전부 중심을 떠나, 그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두 개의 인생과 비하기는 너무 짧은 소동, 간밤엔 또 몇 개의 생이 이곳에서 증발해버렸다.
원문: 남궁인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