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분명히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죽음이 막연했던 의대생 시절, 죽고자 하는 생각의 갖가지 변형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떠난 적이 없었다. 당시의 나는 밤마다 강박적으로 글을 지어댔다. 그 글들은 벌판에서 던진 부메랑처럼 멀찍이 날아갔다가 죽고자 한다는 생각의 귀결로 홀연히 돌아왔다.
게다가 그것들은 읽거나 이해하기 힘든 종류의 구성을 지녔다. 기록에선 몇 가지 자해의 방법과, 자살하려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죽음에 닿아야만 하는 부끄러움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들을 모아둔 까닭에 나는 죽고자 했었다고 기록한 몇 백편의 단문單文을 보유한 사람이 되었다.
불장난과도 같은 우울의 시기와, 우물 속 같은 우울의 시기가 있었다. 앞선 시기는 사람들과 어울려 술이나 마셔대고, 우울해서 곧 죽어야겠다고 이야기하다가, 비틀거리며 방에 들어와 머릿속 글자 몇 개를 받아 적는 것이었다. 침잠하는 생각을 놀이화化한 시기였다. 당시 나는, 그 생각의 근원을 찾겠다고 전공이 아닌 문학이나 철학 책을 읽어댔다. 그것들은 결국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고, 기억나는 바도 없으므로 역시 놀이와도 같았다.
앞선 시기를 불장난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것이 가끔씩 큰 불처럼 번져버렸기 때문이다. 갑자기 나는 우물 깊이 잠겨있는 것처럼 무기력해졌다. 머릿속에선 끊임없이 구체적인 죽음의 방법을 형상화化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자라고 있다가, 갑자기 실체를 얻어버린 괴물이었다.
그 괴물은 변덕스러웠다. 격한 감정이나 고뇌는 불시에 등 뒤에서 나를 찌르기도 했으며, 멀리서 흉기를 들고 저벅거리며 걸어오기도 했다. 때때론 나를 얇게 저미기도 했고, 둔기 같은 묵직함으로 나를 후려치기도 했다. 나는 그 안에 갇혀 죽음에 대한 열망의 다양함을 배웠다. 그것은 그 접근하는 방식이나, 시기와 강도에 있어 종잡을 수 없이 속수무책이었다.
사람들은 유쾌한 술자리 이후 갑자기 며칠을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나의 안위를 걱정하곤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당연한 일상생활을 힘겨워했고, 활자를 읽지 못했으며, 아무 것도 먹지 못했고, 울리는 전화도 받을 수가 없었다. 이 시기의 기록은 대체로 남아있지 않다. 아무 것도 옮겨 적을 수가 없었고, 오로지 생각만으로 생명의 위협을 견뎌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적敵이라고 판단하지 못할 만큼 내 안에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냥 나를 꿀떡 집어 삼키면 끝나버리는 일이었다. 길고 순수한 싸움이었다.
그 터널을 간신히 몇 번 빠져 나오자, 나는 의사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막 죽으려고 시도해서, 실패했거나 가끔은 성공하기도 한 사람 너덧 명을, 근무 날 하루에 연이어 꼬박꼬박 마주해야 하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2.
일은 육체적으로 믿을 수 없이 고됐다. 그것은 간신히 허우적거려서 버텨낸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심한 노동과 직업적인 불면으로 인한 육신의 피로는, 그에 동반된 정신적인 고통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극한까지 몰린 사람들이 나의 업무 안에서 범람해 매일 나를 찾아왔다. 그 수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공감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그것은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부 통용됐다. 슬픔은 한 개일 때가 가장 슬프고, 정신적인 공황은 한 개일 때가 가장 혼란스럽다. 지나치게 많은 죽음과 슬픔은 때때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전까지 실체가 없던 죽음을 실제로 마주했다. 나는 여전히 같은 병을 앓고 있었고, 기운을 조금 차리면 내가 본 실상에 대해 어두운 방에서 혼자 기술하거나, 공감의 글을 몇 자 적어가곤 했지만, 육신의 존재가 꺼져가는 고통 앞에서 그 감정의 날카로움은 많이 무뎌졌다. 서늘한 감상은 가끔 있었지만, 그러고도 나는 반드시 잠들어야만 했다. 다음 날도 어김없이 다른 죽음들은 내 앞에 나타날 것이었으니까. 너무 마음을 많이 소모해버리면 도저히 몸이 견뎌내지 못했다.
죽고자 했던 사람들은 예정되어 있던 택배물처럼 도착했다. 하루에 대여섯 명씩, 일 년이면 천여 명쯤. 이 세상에 나처럼 죽으려고 했던 사람은 머리칼처럼 많았다. 나는 그들이 의식이 남이 있을 때면 경험자로서 동정이나 이해의 눈빛을 보내며 말문을 열곤 했었다. 챠트가 아닌 그들의 손끝을 살며시 잡아보고는,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위로나 격려의 말을 던졌다. 하지만 나는 지나치게 많은 환자를 보는데다가, 장기적인 치료에서는 멀어져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였다. 내가 그들에게 업무의 몇 분쯤을 더 할애한다고 해서 자기 위안보다 더한 의미는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그 일을 대부분 인생의 모난 자리로 여겼다. 굳이 그들의 삶에서 언급하고 싶지 않거나, 잠시 찾아온 삐뚤어져버린 상태로 기억했다. 그렇게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원래 삶으로 가면을 쓰고 돌아가 버렸다. 나는 육체적인 과로에 시달리는, 섣부른 경험자나 상담자,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계절이었다.
3.
어느 날, 의식이 없는 오십대의 남성이 왔다. 깔끔한 차림새로 온전해 보이는 가족들과 함께였다. 집에서 겨를 없이 나온 실내화 차림으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아내는 그가 평소에 먹던 빈 수면제 통을 내밀었다. 그는 그걸 정말로 다 먹었는지 아무리 깨워 봐도 미동조차 하지 않으며, 숨을 가쁘게 쉬었다.
하지만 수면제는 사람을 깊이 잠들게 할 수는 있어도, 영원히 잠들게 하기에는 대부분 부족했다. 다만, 본래 잠드는 약인 까닭에 그들의 잠은 예측할 수 없었고, 그것은 때때로 기약할 수 없는 며칠간 지속되기도 했다. 그는 몇 년간 치료받은 우울증의 기록이 있었고, 기타검사에선 별 다른 이상이 없었다. 그가 약에서 깨어나 의식을 되찾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향후 정신과적인 진료를 받는 간단한 프로세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아내에게 말했다.
“이런 일은 처음인가요?”
“아이고, 선생님. 네, 처음이에요.”
“우울증도 있고, 정신과 치료도 받으셨다면서요.”
“네, 조금 우울한 기색이 보이긴 했는데, 그래도 이이는 쾌활하고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전혀 티내지 않았어요. 성격도 명랑했고요. 공무원으로 지금껏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는데, 가끔씩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하더니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수면제를 좀 타다 먹었어요. 그런데 오늘 갑자기 이양반이 자는 모양이 이상해서요. 약통을 찾아 봤더니 고스란히 비어 있어서 신고했지요… 어떻게 될까요, 선생님.”
“드신 약은 다행히 치명적인 약도 아니고, 복용한 양도 죽을 만큼은 아닙니다. 하지만, 수면제라는 건 원래 이렇게 사람을 재워버리는 약이지요. 해독제가 있거나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약은 자연스럽게 몸 안에서 분해되고, 환자분은 일어나실 겁니다. 지금 검사도 이상은 없고요. 일단 제 이름으로 입원하겠습니다. 원칙상 중환자실에서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요, 의식이 돌아오면 정신과 협진 하에 병실로 옮겨서 나머지 치료를 받아가겠습니다.”
“네에…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4.
하루에도 몇 명씩 찾아오는 비슷비슷한 사연이었다. 그들은 밤에 약을 먹고, 새벽이나 아침에 잠에서 깨면 퇴원을 사정하던지, 아니면 화를 낸다. 자신은 잠시 실수했을 뿐이라고, 지금은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면서. 일부는 자신의 시도를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
유서까지 써 놓고는, 자신은 그런 적이 없고 그냥 잠이 오지 않았을 뿐이라며 역정을 낸다. 그리곤 받아든 자의퇴원서에 서명하고 황급히 가면을 뒤집어쓰고 나가버린다. 그 모난 기억이나 한 때의 감정을 없었다고 생각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제자리로 돌아가서 멀쩡하게 원래 하던 일을 하고 살아낸다.
그래서 그런 프로세스가 성립했다. 병원에서는 형식상으로 붙잡고, 그들은 낮은 담을 넘어서 사회로 돌아가는 것.
하지만 의식이 없는 사람이 평소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서 잠드는 시간이 너무 길면 중환자실로 옮겨야 했다. 그는 그런 케이스였다. 조금 더 많이 잠들었다 일어났던 사람.
5.
그는 중환자실에서 자신이 깨어날 줄 미리 알았다는 듯,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하긴, 약을 과량으로 입 안에 털어 넣고 일어난 곳이 병원이라는 것에 놀라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나는 그가 완전히 의식을 회복했다는 연락을 받고 면담을 위해 중환자실로 찾아갔다. 그는 한숨 개운하게 자고 일어났다는 표정으로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환자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서 이제껏 생의 반듯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나는 주치의로서 형식적인 면담을 시작했다.
“기분이나 몸 상태는 좀 어떠십니까?”
“선생님 덕분에 불편한 것도 없이 잘 일어났습니다. 약간 머리가 띵 한걸 빼고는요. 기분도 좀 개운해졌네요. 병원 침대에 처음 누워봤는데 생각보다 편안합니다. 허허.”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확실히,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서 한 행동으로 보이는데요.”
“… 아, 뭐, 그랬었지요. 좀 우울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는 것 아닙니까. 요새 통 잠이 안와서 수면제를 먹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잠이 잘 안 오니깐 생각이 좀 엉키더라고요. 허허. 가족들도 있고, 정신 차려야 할 텐데 말입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잠시 그런 기분이 드셨을 수도 있죠. 어쨌든, 지금 기분은 좀 나아지셨죠?”
“네, 잘 자고 난 탓인지 기분이 말끔하네요. 저희 집사람이랑 면담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가족들이 걱정했을 텐데.”
“곧 면회시간이니 뵈실 수 있을 겁니다. 환자분은 일단 약물에 의한 부작용이 일어날 위험은 많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간 저희가 모니터링 해왔고, 앞으로도 완전히 위험이 없어졌다고 판단될 때까지 할 겁니다. 이제 더 중요한 치료는 정신과적인 부분입니다. 오늘 협진 하는 정신과 선생님이 오셔서 환자분의 향후 치료를 할 예정입니다. 결과에 따라 일반병실로 옮기실 수도 있고요. 이제 환자분의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부디 기운 내시고, 이 말끔한 기분을 유지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신과 선생님도 만나 뵙고 얼른 퇴원해서 밖에 나가고 싶네요.”
“네, 그러면 또 뵙겠습니다.”
그는 다른 약물중독 환자와는 달리 말이 조리 있고 질서정연했다.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도 보였으며, 정해진 치료 프로세스에도 순응적이었다. 이 정도면 보기 힘든 얌전한 케이스였다. 정돈된 면담을 하니 그를 살려냈다는 약간의 보람 같은 것이 느껴졌고, 잠시 감정이 격해졌던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주치의로서 손이 별로 가지 않는 환자였으므로, 나는 그의 치료를 시간에 맡겨 놓고 다른 업무에 치중했다. 비슷한 사연의 사람들은 여전히 몰려들고 있었으니까.
6.
다음 날 받아본 정신과 협진 결과상에서도 그는 다른 사람에 비해 희망적이었다. 경도의 우울증으로 의심되고, 원칙상 정신과 병동에 입원해야 하지만, 환자분이 원치 않아 외래에서 경과관찰 하겠다고 했다. 나는 아침 면담을 하기 위해 일반병실로 올라온 그를 만났다.
“어제는 잘 주무셨어요? 오늘 기분은 어떠시고요?”
“그저께 수면제를 많이 먹은 탓인지, 어제까지도 잘 잤네요. 허허. 머리 아픈 것도 한결 나아졌고요. 솔직히 중환자실은 많이 불편했어요. 일반병실로 와서 창밖이라도 보니 살 것 같네요.”
“정신과 상담은 잘 받으셨다고 되어 있는데, 도움이 되셨나요?”
“물론이죠. 친절한 선생님이시더라고요. 나중에도 꾸준히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이야기도 잘 했습니다. 가족들도 있으니 잘 이겨내야지요.”
“오늘 퇴원하시겠다고 하셨다면서요.”
“네, 집에 가서 좀 쉬다가 직장도 복귀하고 해야죠. 여기보단 집이 훨씬 나을 것 같아요.”
그의 침착한 말투에는 인간적임이 묻어났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하는 이야기였으므로, 나는 그의 퇴원을 수용했다. 그리곤 괜스레 그에게 정이 들어 조금 더 덧붙였다.
“저도 힘든 과정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 잘 이겨내고 이렇게 아픈 사람들도 보고 있어요. 하지만 그런 일이 닥치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이 힘들다는 것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요. 분명히 이 일을 이겨내고, 활기찬 삶을 다시 시작하실 분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의 눈빛이 약간 흔들렸다. 그는 대답했다.
“아, 선생님도 힘든 시기가 있으셨군요. 어쩐지 좀 공손한 분 같더라니요. 누구에게나 말 못할 힘겨운 일이 있지요. 타인이 전부 알지는 못해도, 따뜻한 마음이면 일부라도 이해할 수는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까지 이야기해주시니 더 감사하네요.”
“뭘요. 환자분 같은 분을 제 환자로 만나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던 것에 제가 더 감사합니다.”
나는 퇴원지시를 하고 응급실로 내려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퇴원 수속을 마치고 나에게 인사를 하러 응급실로 들어왔다.
“지금 퇴원하시는군요.”
“네, 이제 집에 가려고 합니다.”
“이틀 뒤에 정신과 외래가 잡혀 있네요. 그 때 응급실도 한 번 와 주셔야 합니다. 혹시나 모를 약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간단한 검사만 하겠습니다. 다시 뵙겠네요. 활기찬 모습으로 와주셔야 합니다. 마음 편히 지내시구요.”
“아, 그래요. 덕분에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꼭 다시 뵙도록 하지요. 선생님도 힘든 일 하시는데 앞으로도 꼭 기운 내시고요.”
그는 내 손을 가볍게 잡고 이야기했다. 그 손에서, 무엇인가 따뜻함 같은 것이 베어 나왔다. 그리고 종종걸음으로 병원 밖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약간은 다른 일을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7.
그가 떠난 병원은 한산했다. 찰과상이 두 명, 장염이 한 명 와서 누웠고, 한 명이 봉합된 상처의 소독을 받고 갔다. 시간은 평소처럼 금방 지나갔다.
두 시간쯤 되었을까, 119 카트가 하나 들어왔다. 또 자살시도환자라고 했다. 한산한 응급실로 급박하지 않게 느릿느릿 들어왔다. 7층 추락이었고, 의료지도하에 소생술이 필요 없을 것으로 판단되어 확인을 위하여 이쪽으로 왔다고 했다.
이것은 단순이송에 가깝다. 시트를 열어 시신을 확인하고, 소생술이 필요 없었다는 판단은 정확했다고만 말해주면, 영안실로 내려가 정해진 장례절차에 따르게 되는 환자였다. 며칠에 한 명 꼴로 내원하는, 확실한 방법으로 죽어버린 시신이었다. 벌써 카트 바깥으로 빠져나온 다리가 뒤틀려, 그 판단이 옳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하얀 포를 훌쩍 열었다. 두 다리의 발목이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고, 그 중 하나는 아예 침대 밖으로 ‘흘러내려’ 있었다. 누워있는 그의 다리를 잠시 앞으로 들자, 많은 관절을 가진 인형처럼 흐물거리며 접혔다. 나는 툭 하고 다리를 원래 자리로 놓았다. 그리고 몸통을 누르자, 오독거리는 소리가 났고, 왼 팔도 세 조각이었다. 얼굴은 피 범벅이었고, 왼쪽 두개골부터 안면까지 심하게 무너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얼굴 왼쪽이 날아가 버렸다는 느낌까지 주었다. 나는 두부의 손상상태를 확실히 판단하기 위해 물컹거리는 두부를 눌러보았고, 안면의 상태를 면밀히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곧, 그 훼손된 안면의 주인공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였다.
방금 내 손을 잡아주고, 여기서 떠나간 그.
그는 누구보다도 죽고 싶어 했다. 어느 순간보다도,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중환자실에서 눈을 뜬 그는 자신이 실패했음을 깨달았다. 더 확실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괜한 내색은 일을 그르칠 수 있었다. 그는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혼신의 연기를 했다. 몸에서 죽고자 하는 열망이 넘쳐났으므로,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아마 그는 구체적인 방법까지도 염두에 두고 병실에 누워서 마지막 순간을 견뎠으리라. 그는 의료진을 안심시키고 무난하게 퇴원했다. 가족들도 그 모습에 마음을 놓았다. 그는 아내와 함께, 오늘 가족 모임과 저녁 메뉴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운전을 해서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은 7층 복도식 아파트였다. 집 안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그는 아내에게 잠깐 바람을 쐬겠다고, 먼저 잠시 들어가서 쉬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그 말대로 퇴원한 짐을 싸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가 마지막 장소로 점찍어두었던 집 대문 앞 복도에서 뛰어내렸다. 두 발이 허공을 디딘 순간, 그는 자신의 성공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의 죽고자 하는 열망은 짐작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오히려 살고자 하는 열망처럼 보였다.
그는 가면을 쓰고 나간 사람이 아니라, 가면을 쓰고 들어왔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8.
나는 섣불리 아는 흉내를 냈고, 그를 이해하는 시늉을 했다.
그 몸짓이 그에게는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 아니면, 신경조차 쓰이지 않을 어이없는 동정이었을까.
그 후 나는 한동안 왼편이 으깨진 얼굴을 자주 허공에서 목격했다. 그 얼굴의 입은 시체처럼 파랗고, 굳게 닫혀 있었으며, 온전히 남아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때때로 그 반쪽뿐인 입이 열려 나에게 말을 걸고는 했다. 타인은 지옥이며, 나는 덕분에 지옥에서 잘 지낸다고.
나는 그를 죽게 놔둔 무책임한 의사이자, 경험자라는 사실 가운데서 방황했다. 복기하면 그를 도저히 살려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내가 살아있게 할 이유도 되지 않았다. 이것은 나의 운명과도 비슷한 사건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에서 번져나가는 불과 병마를 느꼈다. 우울은 확실히 다양한 악마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깊은 우울은 끝을 알 수 없었다. 자신의 깊이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남의 깊이를 판단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만큼 죽고자 하는 열망에 깊이 시달린 적이 없었다. 그 안에서 나는 얼굴이 반만 남은 사람과 밥을 먹고 이야기를 했다. 일은 계속해야 했고, 멈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계속 몰려들었으며, 나는 그들의 가면을 혼자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으며, 끊임없이 두려워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나는 어찌어찌 그 시기를 지나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근무하면서 겪은 가장 끔찍한 이야기이다. 이것보다 더한 일은 아직 겪지 못했다.
원문: 남궁인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