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목을 매면 인간은 죽는다. 이것은 가장 성공률이 높은 자살 방법이다. 목이 매여진 인간은, 기적이 오지 않는 이상 조용히 죽는다.
죽는 기전엔 두 가지가 있다. 교수형의 방식과, 목을 매 자살하는 방식이 있다. 교수형의 방식은 경추를 탈골시키는 방식이다. 집행인은 사형수를 세워 놓고 두꺼운 끈을 턱과 뒤통수에 두른다. 만반의 준비가 되면, 집행인은 집행 장치의 버튼을 누른다. 이 가벼운 압력이 버튼에 가해지면 사형수가 서 있는 바닥이 갑자기 열린다.
‘덜컹’. 사형수의 하중이 급작스럽게 중력 방향으로 쏠린다. 그러면 끈으로 둘러진 두개골과 연결된 맨 첫 번째 경추와 나머지 몸체의 무게가 실린 두 번째 경추가 분리된다. 경추 탈골. 모든 척추동물은 경추와 그 안에 들어있는 중추신경이 어긋난 순간 즉사한다. 고로, 사형수는 버튼을 누르는 순간 죽어 버린다.
이 방식은 현대 사회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은 두 번째 방식으로 죽는다. 목을 매는 방식은 우리가 목숨을 스스로 끊을 때 본능적으로 행하는 방식이다. 목에 질기고 파고 들어갈 수 있는 끈을 묶고 다른 부분을 천장에 고정한다. 그리고 자신이 서 있는 의자를 걷어차든지, 어디선가 뛰어내리는 방식으로 목을 조른다.
체중을 받은 끈은 순간적으로 목 앞쪽의 경동맥 두 개를 완벽히 제압한다. 이 두 개의 혈관이 완벽히 막히는 즉시 뇌로 가는 혈류는 없어져 버린다. 뇌는 산소에 지극히 예민하므로, 그 순간 전류가 나간 컴퓨터처럼 꺼져버리게 되며, 인간의 의식과 움직임도 즉시 멈추어 버린다.
이 상황에서 인간은 즉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늘어진 고기가 된 인간의 목에 아직도 그 끈이 걸려 있다면 끝이다. 의식이 제압당한 인간이 죽음에 항거할 수 없다. 그래서 허공에 떠 있는 그는 미동 없이 천천히 죽어간다. 이런 식이므로, 인간은 땅을 딛고 서서도 목을 매 죽을 수가 있고, 앉아서도, 심지어 누워서도 목을 매 죽을 수 있다. 죽음에 대한 항거는 자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리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확연한 진실은, 목이 졸린 순간이 있고, 완전히 목숨이 끊기기 전에 누군가 그것을 풀어주지 않는다면 인간은 무조건 죽는다는 것이다.
2.
자살자가 쏟아지는 밤이 있다. 성공할 수 있는 방법과 상황을 고집스럽게 택해 자신이 가진 생의 끝을 정해버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기가 찰 정도로 많이 모여드는 밤이 있다. 내가 서 있는 병원 반경에 있는 모든 우울의 정수를 수집하는 것처럼, 정리되지 않은 자살자의 시신 옆으로 또 자살자의 시신이 쌓이는 밤. 그 틈바구니에서 각자의 시신을 붙들고 남편을 잃은 아내와, 아버지를 잃은 딸과,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부둥켜 오열하는 광경. 그 시신이나 죽기 직전의 사람이 차곡차곡 눕혀진 좁은 공간에 서 있으면 도저히 깨달을 수 없는 이인감과 위화감이 전해진다.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인간들의 한복판은 다분히 비현실적이다.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일이 조밀하게 모여있는 공간, 그런 곳에 서 있을 때마다 나는 이 공간에서 벌어진 사실들을, 이 공간과 믿을 수 없는 나까지 통째로 어느 곳에 비벼 없애버리는 상상을 한다. 비비고 또 비벼, 문대고 닳아 없어질 때까지 짓이겨서 제발, 이 사실만은 돌려주기를. 지워질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부디 이 지독한 슬픔의 공간이 되기를.
3.
그런 밤이었다. 악령이라도 씌인 것처럼 유난한 밤. 그래서 시신이 오와 열을 맞추어 내 앞에 도착하는 더욱 깜깜한 밤. 초저녁부터 쾌활했던 가장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작스레 자기 집 마당에 있는 나무에 목을 맸다. 그는 자기가 키운 나무에 매달려 자기 집을 오래도록 지켜 보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큰딸이 아버지를 보고 나무에 기어 올라가 끈을 풀었다. 엄마는 반쯤 미쳐서 상황을 한 마디도 언급하지 못했다. 안경을 쓴 큰딸은 우는 여동생을 끌어안고 똑똑하게 말했다.
“6시 15분에 집 밖에 나가셨고, 7시 30분에 제가 발견했어요. 대문을 여니 저를 보고 계시더라구요. 바로 끈을 풀어 드렸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으셨어요.”
아이는 아버지의 죽음에 오열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리고, 여동생을 끌어안은 채로 머리를 쥐어박고 우는 엄마의 등허리를 토닥였다.
“엄마. 엄마 괜찮아. 엄마.”
나는 아이를 와락 끌어안으며 같이 울어버리고 싶었지만, 아이의 불행의 깊이가 조금이라도 더 해질까봐 짐짓 울음을 참고 침착한 시늉을 했다.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남편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아이의 천진한 눈빛이 이글거렸다. 자신이 무너지면 안 될 것 같다는 본능과 영악함, 아이답지 않은 표독스러운 표정, 그 광경은 차라리 오열하는 것보다 훨씬 슬퍼 보였다. 아이는 한동안 이를 악다물고 서 있었다. 곧, 세 여자는 누워있는 가장을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
그런 날이었다. 그 통곡 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한 팔이 통째로 삶겨진 건설공이 왔고, 그가 남은 팔로 허공을 휘적거리는 동안 만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해 뒤통수를 차에 받아 죽은 가장이 왔고, 또 새로운 통곡으로 결계가 처진 공간에 가스를 마신 청년이 눕고, 서 있기도, 앉아 있기도, 그냥 숨을 쉬기에도 가혹하고 악독한 슬픔이 밀려오는 날. 내 몸을 바닥에 비비고 짓이겨 꺼 버리고 싶은 밤.
4.
그는 그날 성공한 다섯 번째의 자살자였다. 멀리서 카트가 미끄러지는 모습부터 어둡고 검었다. 곁에는 정신이 나가 보이는 보호자들이 매달려 들어왔다. 검푸른 낯빛의 환자였다. 어떤 사람이 봐도 생기라곤 없는 거무튀튀하고 칙칙한 색이었다. 그의 목줄기에는 비현실적으로 깊게 파고 들어간 삭흔이 선명했다.
그 끈 자욱을 경계로 살색의 명도 차이는 극명했다. 졸린 윗부분은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고, 아랫부분은 검붉게 울혈되어 있었다. 목에 끈을 휘감고 체중을 걸어 오래 매달린 사람의 전형적인 형상이었다. 그의 턱관절도 이미 뻣뻣했다. 죽음이 확정된 후에도 분명히 그는 한동안 허공에 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아들은 변해버린 아버지의 얼굴에 계속 뺨을 치며 들어왔다.
“일…일어나세요. 아버지. 흐윽.”
그의 손바닥은 부정확해서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나를 보자 바스락거리는 끈더미를 내밀고, 흐느끼며 말했다.
“방에 들어간 지 세, 세 시간 되셨어요. 너무 조용해서 들어가 보니 천장에 매달려 계셨어요. 이, 씹할, 흑. 끈을 풀 수가 없어서 가위로 끈을 자르고 내려드렸어요. 제가 소생술은 한다고 했는데, 아버지 얼굴색이… 이 씹할.”
그가 내민 노끈은 마트에서 물건을 포장할 때 쓰는 끈이었다. 가볍고, 질기고, 공짜로 나눠주는, 천지에 널린 흔한 노끈. 이 끈더미가 인간의 체중을 견뎌 그는 그렇게 값싸게 죽었다. 자세히 보니, 그가 만든 매듭은 절대 풀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그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달려들어, 이 노끈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아버지를 잃은 것처럼 손톱이 빠지도록 허공에 있는 목덜미의 끈을 잡아채다가, 결국 주방으로 달려가 수저통을 쏟아붓고 더듬거려 가위를 찾아 달려가 끈을 잘라냈을 것이었다. 바닥에 쏟아져 내리는 아버지, 복잡한 매듭을 묶고 간단히 죽어버린 아버지. 값싸고, 간단하고, 순식간에 죽어버리는 아버지.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 되셨습니다. 어떤 소생술도 무의미합니다. 목을 매달고도 한참을 계셨을 겁니다.”
“으아아아아… 아아…”
그는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시신을 내려쳤다. 그의 손은 어기적거려 침대의 난간 부분을 강타해서 크고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다른 통곡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그 날 이 공간에 들어온 다섯 번째 슬픔의 주인공이 되었다.
5.
나는 이 쏟아지는 밤으로, 이인증이 들어 넋이 빠져나간 것처럼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 시선이 같이 빠져나가 꿈처럼 이 장면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의 굳은 목덜미를 더듬는 장면, 오른팔이 쇳물에 담겨 삶아지는 장면, 차가 달려와 뒷통수를 부수어 버리는 장면들. 곧 옆 침대에 손목을 그은 여자가 도착해 피를 흩뿌리며 뒹굴고, 나는 멍하게 일어나지도 않은 것처럼 튀기는 핏방울을 보며 서 있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이거 소독, 그리고 당장 결박부터…”
미지의 불행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둠은 더 이상 가시지도 않을 것 같았다.
6.
노끈을 아직도 손에 쥔 아들은 남들보다 오래도록 시신에 머리를 부비며 크게 울었다. 그는 한참을 통곡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직도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갑자기 고개를 돌려 물었다.
“이 정도면 돌아가신 후로 얼마나 된 사체라 보십니까?”
“정확한 시간은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얼굴 색깔과 악관절의 상태로 판단하건대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은 된 것 같군요. 손쓸 방도가 전혀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으… 으아… 아아아…”
그 말을 듣자 그는 노끈을 던지고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머리를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머리칼이 몇 움큼 뽑혀 그의 꽉 쥔 주먹 사이로 삐져 나왔다. 그는 울음으로 범벅된 얼굴을 하고, 응급실 바닥을 마구 내려쳤다. 그의 머리카락이 응급실 바닥에 흩날렸다. 쾅쾅거리는 소리가 바닥을 울려서 내 발밑까지 전해졌다. 그 진동은 옆 여자가 발버둥 치는 침대와 바닥에서 통곡하는 사람들이 미세하게 떨릴 정도였다. 주먹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다. 그는 갑자기 손을 내려놓고 숨을 몰아쉬더니 나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옆 방에 계셨어요. 저는 안방에 있고 아버지는 옆 방에 계셨단 말이에요. 벽 하나를 두고. 한 시간 반. 씹할. 제가 뭐 하고 있었는 줄 알아요? 밥 배불리 처먹고 배가 부르다고 누워서 티비 보면서 낄낄대고 있었어요. 빨래 개는 마누라랑 농담이나 지껄이면서, 천치같이 티비 보면서 낄낄거리기나 하고. 아버지… 어쩐지 식사를 안 하시겠다더니… 옆 방에서 이딴 노끈 매듭을 묶고 계셨어요.
아들이라는 병신이 세상 편하다고 누워 있는데, 당신께서는 목을 매달고 죽어가시고, 씨이팔, 빨리 찾았으면 이 호로새끼가 살려 드릴 수도 있었는데, 호로새끼, 안중에도 없이 나는 뚫린 입이라고 웃고, 옆 방에 아버지가 허공에 매달려 있는지도 세상모르고, 좋다고 나는 티비나 보고 지껄이고, 고생만 하신 아버지… 옆 방의 아버지… 한 시간 반을 그렇게.. 나는… 씹할… 이 씹새끼… 죽어야 돼… 아아악.”
“…”
그는 다시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그의 머리칼이 다시, 몇 움큼 더 뽑혀 나갔다.
7.
그는 결국 목이 졸린 아버지를 모시고 응급실에서 퇴장했다. 나갈 때까지도 아버지의 목에 새겨진 삭흔은 조금도 흐릿해지지 않고 되려 더 선명해 보였다. 나는 아직도 머리를 싸매고 어기적거리는 아들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장 두려운 저주가 내려진 뒷 모습. 그는 분명히 머릿속에서 그 한 시간 반을 재연하고 복기하며, 티비를 보던 자신의 두 눈을 뽑고, 농담을 지껄이던 혓바닥을 잘라 내던지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의식을 잃고 축 늘어져 고요히 죽어가는 아버지, 내가 편히 누워 있는 동안 옆 방에서 아직 죽지 않아 매달려 계셨던 당신, 당신. 끝까지 혼자셨던 당신. 그는 그 한 시간 반을 할 수 있는 만큼 세밀히 기억해 저주하며, 평생 잊지 못하리라.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에게 벌어진, 마지막 불효, 불효보다는 참극, 참극보다는 지옥의 시간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리라.
8.
그마저 사라지자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오직 저주와 암흑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숱한 죽음을 단정 짓는 내 혓바닥을 잘라 내던지고 싶었다. 뽑아 짓이겨 버리고 싶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살풍경을 뒤돌아보았다.
깜깜하고 유난한 밤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세상은 다신 밝아질 수 없어,
밤은 이대로 영원히 계속되어 버릴 것 같았다.
원문: 남궁인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