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도 시원한데, 비가 올 때는 좀 많이 습해요. 편집자님이 사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조명에 반사된 가구나 자잘한 물건들에는 본연의 색과 무관하게 주황빛이 들었다. 그는 여기가 예전에는 바다라서 그렇다고 했다. 건물이 서 있는 자리가 매립으로 만들어진 땅이니까, 지하 1층인 이곳은 분명 바다였을 거라고. 빛이 채운 공간 가득 물이 들어차 있었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이 무척 인상 깊었던 건지, 나는 일하는 내내 혼자 바다를 생각했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과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나, … [Read more...] about 나는 외로웠다, 사실 정말 많이 외로웠다
우리 카페에서 드립백을 팔지 않는 이유
손님 중에서 드립백을 찾는 분이 제법 있다. 그러면 나는 없다고 말하는데, 단골손님은 왜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카페의 매출을 조금이라도 올려주고 싶어서 그렇다는 것도 안다. 최선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자세를 바로잡은 뒤, 죄송하다고 고민해보겠다고 대답하는 것이다. 요즘처럼 장사가 잘 안되는 시즌은 사실 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일하면서 고민한 결론은 늘 ‘하지 말자’가 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먼저 맛이 마음에 걸린다. 드립백의 커피가 나쁜 것은 아니다. … [Read more...] about 우리 카페에서 드립백을 팔지 않는 이유
막장 드라마에서는 무슨 맛이 나는가: 〈결혼작사 이혼작곡〉
매운 맛을 싫어한다. 매운 맛이라고 읽지만, 사실은 아픈 맛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날이 되면 이상하게 그 매운 맛, 아픈 맛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맛을 찾게 된다. 먹고 나면 또 아프다. 다음날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곤욕이다. 시간이 흐른다. 어떤 날이 된다. 반복이다. 나는 매운 맛을 좋아하는 것일까, 싫어하는 것일까. 막장 드라마가 나한테 딱 이런 꼴이다. 나는 막장 드라마를 싫어한다.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엔가 현타가 온다. 왜 이런 걸 보는 걸까. 이게 뭐라고. 자극에 … [Read more...] about 막장 드라마에서는 무슨 맛이 나는가: 〈결혼작사 이혼작곡〉
음악을 도용당하다
※ 본 검토 내용은 당 작가의 검토 의견이며, 실제 소송 등에서는 법원의 판단과 다를 수 있음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갑은 을로부터 D 게임의 배경음악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에 갑은 을의 작업실에 가서 반나절 작업 끝에 G 음악을 만들어 을의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해 두었다. 이후 갑은 자신이 작곡한 G 음악이 자신의 허락 없이 D 게임의 배경음악으로 무단 사용되고 있고 이를 통해 을이 수익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갑은 을이 자신의 허락 없이 G … [Read more...] about 음악을 도용당하다
결혼이 사랑의 위기가 되는 일에 관하여
서로 사랑하라, 허나 사랑에 속박되지는 말라. […] 서로의 잔을 채우되, 어느 한 편의 잔만을 마시지는 말라. […] 함께 노래하며 춤추며 즐거워하되, 그대들 각자는 고독하게 하라.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에서 '결혼'에 대한 부분이다. 결혼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이전의 어떤 연애보다 더 깊이 모든 생활을 공유하게 된다는 점일 것이다. 사회마다 결혼의 의미가 다르긴 하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양가 부모님 등 가족들의 사정까지 서로 깊이 알게 되면서 생활의 일부가 … [Read more...] about 결혼이 사랑의 위기가 되는 일에 관하여
사실 창업 2년 차에 망할 뻔했다
처음부터 카페를 아침 일곱 시에 열었던 것은 아니었다. 세 명의 직원에게 인건비를 주고 나면 마이너스가 났기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마이너스 100–200만 원 정도의 구멍이 몇 달 동안 이어졌다. 밥맛도 떨어졌다. 고민해도 해결점은 찾기가 어려웠다. 다만 막연하게 드는 생각은 가동 시간을 늘리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주 늦은 밤까지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아무래도 아침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잠을 … [Read more...] about 사실 창업 2년 차에 망할 뻔했다
사랑의 계약에 관하여
우리는 언제 함께하고 언제 각자 행동할지를 협상하며 관계의 계약서를 암묵적으로 작성해 나간다. 보통 한 사람이 마음속 캐비닛에 보관해 둔 계약서는 파트너의 계약서와 다를 때가 많다. 현대 사회의 사랑은 근간에 ‘계약관계’를 두었다. 에스터 페렐의 책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은 그런 계약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람이 외도를 하게 되는 심리와 이유 등을 파고든다. 대개 외도의 출발점은 서로가 무엇을 외도로 ‘규정’하느냐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외도한 사람들은 … [Read more...] about 사랑의 계약에 관하여
〈랑종〉인가 ‘관종’인가
나홍진 감독은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다. 그의 영화를 보면 꼭 그렇게 홀리고야 말기 때문이다. 〈추격자〉에서 그는 기존의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문법을 완전히 뒤집어, 마치 순수한 아이 같은 악의 얼굴을 구현해서 사람들을 홀려버렸다. 4885는 덤이었고. 〈황해〉에서는 분명 우리가 사는 세상이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인 듯, 선이란 존재하는 것 같지도 않은 다크 월드의 모습으로 사람을 홀려버리더니, 마침내 〈곡성〉에서는 대놓고 관객들에게 미끼를 던져버리고, 뭣이 중한지도 모르게 … [Read more...] about 〈랑종〉인가 ‘관종’인가
영화 장면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게시해도 될까?
최근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숨은 의미를 해석해주는 평론 유튜브 채널이나 영화나 드라마의 줄거리를 요약해 짧은 영상으로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온전히 영화에 투자할 시간조차 부족해진 현대인들이 약 2시간 동안 집중해야 하는 영화보다 출퇴근 시간에 가볍게 시청할 수 있는 짧은 유튜브 영상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며 이러한 채널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영화나 애니메이션 장면 중 일부 장면을 편집하거나 요약하여 유튜브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저작권 침해가 … [Read more...] about 영화 장면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게시해도 될까?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나를 ‘지키는’ 글쓰기
처음으로 글을 쓴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당시의 나는 숙제로 써야 하는 일기를 무척이나 싫어했는데, 반복되는 하루에서 억지로 무언가 쓸 거리를 찾아내는 것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몇 번이나 혼을 내도 숙제를 해오기는커녕 큰소리로 자신의 당당함을 주장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초등학생에게 담임선생님은 이런 제안을 했다. 일기를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일기로 써오면 봐주겠어. 아마 선생님은 그 말을 하기 위해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아냈을 것이다. 어쨌든 … [Read more...] about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나를 ‘지키는’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