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중에서 드립백을 찾는 분이 제법 있다. 그러면 나는 없다고 말하는데, 단골손님은 왜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카페의 매출을 조금이라도 올려주고 싶어서 그렇다는 것도 안다. 최선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자세를 바로잡은 뒤, 죄송하다고 고민해보겠다고 대답하는 것이다.
요즘처럼 장사가 잘 안되는 시즌은 사실 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일하면서 고민한 결론은 늘 ‘하지 말자’가 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먼저 맛이 마음에 걸린다. 드립백의 커피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원두량이 충분하면 카페인도 많으므로 각성 효과도 충분히 있다. 내리는 사람이 어느 정도 정성을 다하느냐에 따라서 인스턴트 커피와 완전히 차별되는 풍미도 있다. 그럼에도 ‘매출에 욕심을 부리지는 말자’가 되어버린다. 향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커피의 향은 원두가 물리적으로 부서지는 순간 생기는 드라이 아로마에서 시작된다. 커피의 맛은 그 순간의 향을 어떻게 뜨거운 물에 녹이느냐가 관건이다. 전통적인 핸드 드립 방식에서 물줄기를 가늘게 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갓 간 원두에 적절한 온도의 물을 최대한 빠르게 만나게 해야 하고, 동시에 천천히 통과시켜야지 완성된 커피가 그 향을 온전히 품을 수 있게 된다.
드립백은 만남을 지연하는 만큼 원두의 특성을 온전히 반영하기가 어렵게 된다. 우리도 부서지면 마음속에 있던 것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원두도 부서졌기 때문에 감추어진 고유의 향을 방출한다. 고소하고 때로는 상큼한 향이 공기 중에 널리 퍼져나간다는 것은 액화될 향도 소실되고 있다는 의미다.
갓 갈린 원두의 향을 맡으면, 그 순간에는 포장하는 게 아니라 뜨거운 물을 부어야 한다고 원두가 말하는 것 같다. 드립백을 만드는 과정을 그려보면 그 시간 동안 잃어버리게 될, 패킹이 된 이후에도 은박 포장지 안에서 미묘하게 변질할 그것이 그려진다. 그 미묘한 틀어짐을 외면하기가 어렵다.
드립백을 찾는 손님을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하게 되면 눈동자가 무척 흔들릴 것이 뻔하다. 그래서 대개 이런 말은 혼잣말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하지만 커피를 오래할수록 미묘한 것을 더 챙겨야 한다고, 미묘한 것은 타성에 젖기 어렵기에 비타민처럼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드는 시간도 문제다.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위생적인 부분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개의 드립백을 만드는 것에도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더불어 만드는 사람의 노동강도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매장흐름이 거의 없다면 큰 관계가 없지만, 위생을 챙겨가면서 패킹을 하는 과정을 그려보면 우리 카페에서는 과잉노동이 될 가능성이 크다.
퀭한 눈빛의 바리스타는 상상만 해도 서글프다. 커피를 사고파는 데 중요한 것은 이문도 있지만, 역시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원들도 한가한 시간에는 앉아서 쉬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뭔가 넋을 놓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마음의 여백이 생긴다. 그래야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위로가 되는 커피를 내려줄 수 있는 표정이 생긴다. 해서 드립백을 만들 시간이 있다면 우리 스텝들도 조금 앉아서 쉬거나 심심한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도 드립백을 사야 한다면, 두 가지 정도를 확인했으면 좋겠다. 첫째, 원두의 중량이다. 중량은 카페마다 천차만별이다. 중량이 많을수록 커피 맛이 진하고, 내리는 사람마다 나올 수 있는 맛의 편차가 덜하다. 무조건 저렴한 것을 구매하는 것보다는 중량을 확인하는 것이 좋지 싶다.
둘째, 만든 시기를 확인했으면 한다. 아무래도 오늘에 가까운 날짜일수록 향이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커피 향미를 평가하는 커핑을 진행하는 경우 분쇄한 지 30분이 지난 원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만큼 쉽게 사라지는 것이 부서져 버린 원두의 향기라는 뜻이다.
원문: 세상의 모든 문화 / 글: 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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