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여행을 해 본 사람들이 똑같이 하는 말이 있다. 넌 어떻게 그렇게 짐을 빨리 싸고 빨리 풀어? 다년간의 떠돌이 생활로 인해 생긴 스킬 아닌 스킬이다. 앞서 많은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여행자의 짐이란 전생에 자신이 진 업보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라도 어떻게든 짐을 줄이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꾸미는 걸 좋아하거나 SNS에 인증샷 올리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불가능했겠지만 기내 반입용 캐리어 하나로 일주일 넘게 여행한 적도 있다. 이 글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강제로 여행 … [Read more...] about 내가 여행 짐을 싸고 푸는 방법
좋아하는 게 많아지면 생기는 일
콩. 날생선. 운동. 찜통더위. 놀이기구. 사진 찍히기. 초콜릿 맛 음료. 교통체증.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기. 인공 과일 향 나는 모든 것. 옷 입은 채 물에 들어가기. 높은 곳에 올라가기. 갑작스러운 큰소리.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 싸움. 악플. 무례한 사람 등등. 싫어하는 걸 쓰자면 2박 3일도 모자란 사람.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게 많았던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사회인이 된 후 극복한 척 종종 두터운 가면을 써보기도 했지만, 금세 들키고 만다. 백설기에 박힌 검은콩처럼 툭툭 내 … [Read more...] about 좋아하는 게 많아지면 생기는 일
직업인으로서, 난 어떤 근육이 발달했을까?
와~ 세상에! 첫인사도 하기 전, 주책없이 감탄사가 먼저 튀어나와 버렸다. 혹 초면인 선수에게 실례가 되진 않았을까? 서둘러 사과부터 건넸다. 미안해요. 제가 철이 없죠? 직업 운동선수를 이렇게 가까이 만난 적이 처음이라서요.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권투와 리듬체조. 직업 운동선수의 몸을 맨눈으로 이렇게 가까이 본 건 처음이었다. 이 시국만 아니었다면 가끔 몇몇 종목의 경기장에 직접 가기도 했었다. 경기장 밖에서 운동선수를 만난 적도 있다. 하지만 겹겹이 옷을 입은 채였다. 그 안에 … [Read more...] about 직업인으로서, 난 어떤 근육이 발달했을까?
면접, 태도가 승부를 가르는 단 한 순간
사람이 빠질 빈자리에 새로운 사람을 채워야 한다.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이력이 담긴 종이를 꼼꼼히 살펴보고,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눈다. 채 1시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건너편에 앉은 사람을 다각도로 파악해 결정해야 한다.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했고, 선택을 받는 입장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새 선택하는 순간이 점점 많아진다. 동그란 토끼 눈을 하고 잔뜩 긴장한 채 대답하는 구직자의 모습에서 그 시절의 내가 보였다. 이렇다 할 이력도, 빵빵한 뒷배도 없는 마음이 가난한 … [Read more...] about 면접, 태도가 승부를 가르는 단 한 순간
명함의 무게
서점에 가면 책 왼쪽 날개를 들춰 작가 소개부터 확인한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에 낯선 이름이 뜨면 인물 검색부터 해본다. 인터넷 백과사전의 인물 항목은 연계성까지 더해져 내겐 헤어 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이다. 쉬지 않고 밀려오는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연신 클릭하다 보면 시간이 살살 녹는다. 이렇게 난 누군가의 프로필을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거기에 적힌 몇 줄로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헤아려 본다. 호떡 뒤집히듯 인생이 휙 하니 … [Read more...] about 명함의 무게
내향형 인간이 자꾸 뭘 권한다는 건?
그런 날이 있다. 꼼짝하지 않고 싶은 날. 손끝에 쇳덩이라도 달린 듯 무겁고, 등에는 초강력 자석이 붙은 듯 이부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때 말이다. 내 마음이 지옥이어서 세상으로 나갈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을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마음이 여전히 한겨울이어도, 세상의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은 두꺼운 얼음이 녹는다. 그사이에 파릇파릇 싹이 돋고, 솜사탕 같은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이 오고야 만다. 이때가 아니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는 '한정판 아름다움'이 … [Read more...] about 내향형 인간이 자꾸 뭘 권한다는 건?
우리 언니는 뭘 좋아하더라?
언젠가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가족에게 줄 선물 구매 목록을 적다가 머리를 싸맨 적이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다들 빠듯한 사정이었을 텐데도 통장에 선명하게 찍히는 숫자로 격한 응원을 보탰다. 여행 가서 돈 때문에 하고 싶은 거 못하지 말고 마음껏 즐기고 오라고. 뜨거운 응원을 받았으니 빈손으로 돌아가기는 면목이 없었다. 뭐를 좋아하지? 뭐가 필요할까? 고민했지만 여행 내내 결론을 못 내렸다. 결국, 가슴에 빈칸을 안고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야 겨우 면세점에 들러 선물을 샀다. 누구에게나 … [Read more...] about 우리 언니는 뭘 좋아하더라?
잘하고 싶어서 안 했습니다
1. 지상 최대의 행복이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듣는 게 전부였던 때가 있었다. 10대부터 20대 중반까지 그랬다. 학교 숙제가 아니라면 굳이 책을 들춰보는 일은 없었고, 라디오와 TV를 붙들고 살았다. 방학 때면 밤늦은 시간까지 TV와 라디오에 빠져 지냈다. 그 안에는 뭐든 다 있었다. 빛나는 스타도 있고, 가슴 설레는 로맨스도 있고, 짠내 나는 현실도 있었다. 작은 브라운관을 통해 지구 반대편 뉴욕 패션쇼의 백스테이지에도, 미슐랭 별 세 개의 레스토랑에도 갈 수 … [Read more...] about 잘하고 싶어서 안 했습니다
문장은 짧게, 여운은 길게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달라진 점은 문장의 길이다. 손톱깎이처럼 딱 자른다. 기계처럼 거침없이 끊는다. 한 문장이 한 줄 반 이상 넘어가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마침표를 소환한다. 퇴고할 때 대부분 하는 일은 문장을 끊어내는 일이다. 마침표를 찍고 또 찍는다. 글을 잘 쓰고 싶었다. 그래서 글쓰기에 관한 여러 책을 읽었다. 또 글 잘 쓴다는 사람들의 책을 뒤졌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건, 단문.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문장을 짧게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정말 잘 … [Read more...] about 문장은 짧게, 여운은 길게
당신의 다이어리는 안녕하십니까?
2021년 새해가 시작된 후 첫 월요일. 지난 연말 내내 커피 17잔을 마시고 맞바꾼 초록색 별다방 다이어리를 펼쳤다. 지난번, 연말이 되면 매해 연례행사처럼 다이어리를 모으기만 했지 정작 사용하지 않았다는 글을 쓰고 난 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군가의 말대로 뭔가를 모으기만 하는 걸 열심히 한다고 착각하며 살았다. 몇 년째 책장 틈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다이어리를 더는 방치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2021년 다이어리만큼은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쓸쓸히 퇴물이 되는 슬픔을 겪지 않도록 최선을 … [Read more...] about 당신의 다이어리는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