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안녕하세요. 오며 가며 사장님의 가게를 응원하던 동네 주민1입니다. 1년 전, 번화가에서 살짝 떨어져 있어서 나름 한적했던 우리 동네에 뚝딱뚝딱 망치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코앞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그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떡볶이를 팔던 분식집 자리였어요. 코로나19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사라지니 문을 닫았던 분식집 자리에 뭔가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는 거였더라고요. 어떤 가게일까? 궁금해서 애정 가득한 눈길로 하루하루 달라지는 가게를 훔쳐봤어요.
얼마나 지났을까요? 00 샐러드라는 간판이 붙었을 때 야호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샐러드를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언제든 마음을 먹으면 후딱 가서 샐러드를 사 올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미용실, 교회, 부동산만 있던 동네에 제법 세련된 샐러드 전문점이 생겼으니까요.
비대면 시대라는 흐름에 맞춰 배달 전문으로 하는 가게더라고요. 근데 바깥에서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인테리어를 해서 자신감이 느껴졌어요. 여긴 뭔가 달라도 다르겠구나 싶었어요. 투명한 유리 덕분에 어떤 과정으로 샐러드가 만들어지는지가 고스란히 보여서 믿음이 가더군요.
음식이라면 당연히 위생이 첫 번째지만 생으로 먹는 샐러드는 위생이 더욱 중요하잖아요. 그렇게 거리낌 없이 주방을 드러내는 사장님의 선택이 분명 좋은 결과로 돌아올 거라 믿었어요. 동네 가게니까 애정을 듬뿍 담은 눈으로 지켜봤죠.
SNS에 올라온 후기에서 양도 많고, 맛도 깔끔하다고 좋은 평점을 받고 있길래 장사가 잘되는구나 생각했어요. 가게 앞을 수없이 오가던 오토바이 소리에 살짝 시끄럽긴 했지만, 청년 사장님의 시작을 뜨겁게 응원하니까 소음 정도는 참을 수 있었죠. 제 돈 투자한 제 가게는 아니지만, 동네 주민의 ‘의리’랄까요? 응원하는 마음으로 몇 번 사 먹기도 했죠.
하지만, 그 마음이 식은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여느 날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모습을 보게 된 거죠. 가게 앞에서 앞치마 차림으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캭 퉤! 침을 거하게 뱉은 후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지던 모습. 그나마 거기에서 끝났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종종걸음으로 다시 가게로 들어간 사장님은 손을 비누로 씻기는커녕 방금까지도 담배를 쥐었던 그 손 그대로 샐러드를 만들기 시작하더군요.
배달 용기에 샐러드를 수북이 깔고 토핑을 하나하나 손으로 얹어내는 모습.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돌리고 싶었습니다. 눈을 씻고 싶었습니다. 응원을 철회하고 싶었습니다. 담배는 기호식품이고, 자기 가게 앞에서 자기 돈 주고 산 담배를 피우는 게 죄는 아니죠. 하지만 담배의 잔향과 이물질이 묻은 손으로 만지작거린 샐러드를 먹고 싶어 하는 손님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면 바깥 음식 먹으니 적당히 ‘흐린 눈’으로 보라던 친구들의 말을 애써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그걸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눈으로 직접 본 건 천지 차이더라고요. 아무리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어도, 막상 실전에 돌입하니 생각처럼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더라고요.
철저한 위생 관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선량한 자영업자들까지 싸잡아 매도하고 싶진 않아요. 그저 제가 본 건 순간이었으니까. 제겐 운이 좋았고, 사장님께서는 운이 나빴을 뿐. 가게 소개에 당당히 써 놓으신 “철저한 위생과 맛을 보장한다’는 문구는 그저 허울 좋은 약속일뿐일까요?
응원했기에 그만큼 실망했고, 그래서 더 차갑게 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일개 동네 주민이자, 단골과는 거리가 먼 어쩌다 손님의 애정은 짜게 식었습니다. 좋게만 보이던 샐러드 가게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후 분위기가 반전되더라고요.
제가 굳이 소문낸 것도 아닌데 사장님 마음의 변화가 샐러드 맛에서도 느껴졌던 걸까요? 가게의 주문이 물 빠지듯 쑥 빠진 게 눈으로 보이더라고요. 쉴 새 없이 오가던 오토바이들도 뜸해지고, 분주히 샐러드를 만들던 손은 무료함에 지쳐 가게 안에 설치된 다트판을 향해 다트를 던지고 있더군요. 주방에 있는 날 보다, 다트판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더 많이 목격됐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투명했던 창에는 불투명 시트지가 붙었고, 더 이상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상태가 됐어요. 반짝반짝 윤이 나던 주방도, 그곳에서 신나서 샐러드를 만들던 사장님의 모습도 가려진 겁니다.
그제야 깨달았어요. 시트지를 붙이는 순간, 이곳의 음식은 솔직함과 당당함은 기대할 수 없겠구나. 단지 바깥 창에 시트지 하나를 붙인 사장님의 선택은 제게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뭘 어떻게 만들든 상관하지 마세요.”
가까운 곳에 샐러드를 취급하는 경쟁업체가 더 생기고, 샐러드 말고도 더 많은 신기하고 맛있는 먹거리들이 넘쳐나고 있죠. 지독한 생존 경쟁이 펼쳐지는 정글 같은 배달 음식 세계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있던 겁니다.
사장님의 선택은 금세 결과로 나타났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동산 전화번호가 찍힌 <임대 문의> 종이가 출입문에 떡하니 붙어 있더라고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이 위태로운 시대에 과감히 창업을 선언하고 야심 차게 출발했을 샐러드 가게. 그곳이 1년 만에 저물어 가는 걸 고스란히 지켜보며 생각해 봤습니다.
과연 나는 뭘 숨기고 있는 걸까? 불투명한 건 모호하고, 모호한 것 뒤에는 늘 꿍꿍이가 있죠. 숨길 수 있다는 건 자신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태하게도 만듭니다.
어쩌면 음식의 위생이라는 기본보다 인간의 편안함을 택했을 사장님의 선택을 보며 다짐합니다. 모호함 뒤에 숨지 말고, 있는 그대로 할 수 있는 만큼만 솔직히 보여주자. 사장님께는 쓰라린 실패의 과정이 제겐 이렇게 교훈으로 남았습니다.
사장님의 가게가 사라진 후 전 더 배달 음식을 멀리하게 됐어요. 원래도 그다지 배달 음식을 좋아하진 않지만, 배달 주문을 하더라도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오픈된 매장 위주로 주문했었는데요. 직접 눈으로 매장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포장 주문을 선택합니다. 사장님의 담배 사건은 저의 막연한 기준을 더 확실하게 도장을 찍어 준 거죠.
사장님의 가게가 문을 닫는 그 순간에도 근처에는 또 다른 배달 전문점이 생겼어요. 종목은 치킨. 도보 5분 거리 안에만 4개째네요. 고개를 치켜올려 간판을 확인하지 않고 바깥에서만 보면 뭘 파는지도 두꺼운 시트지로 랩핑한 가게. 그 불투명한 유리 너머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기대보다 두려움이 더 큰 저는 감히 그곳 음식을 주문하기 꺼려집니다. 이곳 사장님은 또 어떤 결과를 얻을까요? 불투명한 유리 상태만큼이나 이 가게의 미래도 불투명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죠? 여기 사장님도 한참 동생뻘 될 만큼 파릇한 청년이던데… 부디 삐딱한 동네 주민의 이 뿌리 깊은 편견을 깰 멋진 결과를 얻길 기대합니다.
사장님 역시 어디서 또 어떤 시작을 하든, 이 동네에서의 쓰디쓴 경험이 단순한 실패가 아닌 새로운 도전의 밑거름이 되길 빕니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
함께 보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