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의 출시란 반장선거 같은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음료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심지어 ‘요즘 마실 만한 것이 없다’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것을 풀어주는 것이 음료계의 거목(?) 마시즘이 아니겠는가. 때문에 생각한다. 과연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료에는 어떤 특별한 모습이 있을까?
사랑받은 음료는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세상을 바꿔왔다. 거칠게 말하자면 맥주 덕분에 건배를 하는 축하잔치가 생기는 것이고, 커피 덕분에 야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콜라는? ‘모두가 똑같이 즐기는 맛’을 만들어 주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다음은 뭐지?
여기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음료가 있다. 이름하야 ‘어니스트 티(Honest Tea)’. 이름만 들어도 착해빠진(?) 이 음료의 이야기에는 맛과 영양을 넘어 브랜드가 사랑받는 비결이 들어가 있다.
목이 마른데 마실 것이 없어 만들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세스 골드만(Seth Goldman)은 달리기를 하다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목이 말라 음료를 마시려고 했는데 그를 만족시킬 음료가 없는 것. 세스가 원하는 것은 ‘달지 않은 음료’다. 그리고 ‘맛이 있어야’ 했다. 아니 그런 음료가 어디 있어.
그는 학생 시절 설탕을 넣지 않은 음료에 대해 토론을 했던 교수님이 생각났다. 세스는 배리 날버프(Barry Nalebuff) 교수에게 ‘달지 않고 맛있는 음료’에 대한 메일을 보냈다. 마침 베리 교수는 인도 현지에서 마신 차에 대해 감명을 받고 온 터였다.
그들은 세상에 나온 적 없는 맛있는 차 음료를 만들기로 하였다. ‘어니스트 티’가 드디어 출격한다. 두 사람의 계획에는 문제가 없었다. 세스도 배리도 모두 음료에 대해서는 ‘ㅇ’자도 몰랐던 것 빼고.
부엌에서 시작해 유기농 음료의 선두주자가 되다
1998년 2월, 첫 번째 어니스트 티의 작업실이 생겼다. 장소는 세스의 부엌 도구는 배리 교수가 사준 보온병 5개였다. 다행히도 차 음료는 주전자와 찻잎만 있으면 되는 터라 작업에 문제는 없었다. 한낱 차덕후(?)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세스는 원산지별 찻잎을 잘 조합해 골드 러시 시나몬, 카슈 미리 차이, 블랙 포레스트 베리, 모로코 민트 그린, 아삼 블랙까지 무려 5종류의 어니스트 티를 만들어 낸다. 보온병이 5개니까(…)
창업한 지 25일 차, 음료가 만들어지자 프레쉬 필드(지금의 홀푸드 마켓)에 미팅을 간다. 건강하고 (적당히) 맛있지만 설탕이 적게 들어간 차 음료. 어니스트 티에 대한 설명을 듣자 프레쉬 필드는 매장에 작게 넣어보기로 한다. 그렇게 첫 주문으로 1만 5,000병을 받게 된다. 파는 입장에서는 적은 수량이지만 이걸 만들려면 끓는 물 7,100리터와 찻잎 60킬로그램이 필요했다.
다행히 병입공장을 찾아 만든 어니스트 티는 첫 납품 후 시즌이 종료될 때쯤 가장 잘 팔리는 제품 중 하나가 되었다. 소비자들은 음료의 성분과 내용에 대해 정직하게 표기해 놓은 어니스트 티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심지어 찻잎을 넣어 만들었기에 생기는 침전물까지도 좋아했다고.
위기가 없으면 음료 브랜드가 아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높아지는 판매량과 매출이 비대칭이었다는 것이다. 제작단가가 너무 높아 팔릴수록 손해인 구조가 생겨났다. 결국 공장을 구매해서 사용했지만 재고관리와 품질관리에 실패해서 손해인 날들이 많았다. 모두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그들은 공장의 ‘ㄱ’자도 몰랐다)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가장 큰 위기는 ‘티백’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시장에서 ‘어니스트 티’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티백 제품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어니스트 티는 티백을 만들었다. 포장까지 유기농을 고려한 디자인이 나왔지만 생김새가 이상해서 고치고, 잘 뜯기지 않아서 고치고, 그랬더니 다른 티백 제품과 다를 바가 없어졌다. 결국 큰 손실을 얻고 티백 사업을 접게 된다.
세스와 배리 두 사람은 이때 큰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어니스트 티는 ‘차’가 아닌 ‘어니스트(정직함)’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것을. 그들은 더욱 ‘어니스트’한 것에 대해 생각을 하며 회사를 키워나가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병 음료 최초로 공정무역을 실시하고, 플라스틱병의 무게를 22%로 줄인다. ‘제품보다 정직성’을 추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의 잇 템, 오바마의 음료
어니스트 티의 성장은 완만했다. 하지만 팬들을 가지고 있었다. 2001년 배리는 캘리포니아 요가 클래스에 갔다가 오프라 윈프리를 만났는데, 자신이 항상 차에 가지고 다니던 ‘어니스트 티’를 그녀에게 소개한다. 곧 어니스트 티의 매력에 빠진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이 발행하는 매거진에 어니스트 티를 소개했다.
버락 오바마(당시 상원의원)를 비행기에서 만난 것 또한 인연이었다. 세스는 평소 오바마가 어니스트 티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인사를 했다. 후에 대통령 선거캠프에서도 음료 추천을 받아서 어니스트 티의 ‘블랙 포레스트 베리’를 추천했다. 뜻밖의 러닝메이트가 된 어니스트 티는 선거 이후에 백악관에 항상 비치된 음료가 된다.
마지막 인연은 ‘코카콜라’였다. 2007년 당시 어니스트 티를 인수하려는 큰 기업들은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당시 코카콜라 CEO인 무타 켄트(Muhtar Kent) 회장은 “어니스트 티를 코카콜라의 아류로 키우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코카콜라 DNA를 바꿔 어니스트 티처럼 운영하려 한다”며 어니스트 티의 가치를 존중하였다. 결국 어니스트 티의 지분 40%를 매입했고, 2011년에는 나머지를 모두 인수했다.
세스는 여전히 어니스트 티의 TEO로 이 브랜드가 가야 할 길을 지키고 있다. 이들의 창업 초기와 위기, 가야 할 길이 담긴 이야기는 만화 『어니스트 티의 기적(Mission in a Bottle)』으로 출시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음료에는 태어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어니스트 티가 남긴 것
어니스트 티는 이제 20년을 훌쩍 넘긴 베테랑 브랜드다. 코카콜라와 손을 잡기 전 1만 5,000개의 매장에서 볼 수 있던 어니스트 티는 13만 개가 넘는 매장에서 만날 수 있고, 해외에도 진출했다. 그 사이 병당 평균 100칼로리였던 음료들은 이제 60칼로리 정도로 평균치가 떨어졌다.
해외 마트의 음료 코너에는 어니스트 티의 후예들이 존재한다. 바로 건강하고, 정직하고, 이야기가 있는 음료들이 모여있다는 것이다. 유행하는 맛을 따라 우후죽순 출시되는 것이 아닌. 한 병의 음료지만 마시면서 생각을 하거나, 사회를 바꾸려는 야망을 가진 음료들이 태어나고 있다.
어니스트 티가 간 길로 따라가려는 많은 사람은 세스에게 이런 음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아온다. 세스는 단번에 말한다고 한다. “도망치세요!” 하지만 정말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싶은 갈증이 있다면, 비전을 잃지 않고 나아갈 용기가 필요하다고.
사족: 어니스트 티의 맛은 어떤가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알음알음 어니스트 티를 마셔왔습니다. 달달하지만 설탕이 많이 들어가지 않은 건강한 맛(…)이 납니다. 사실 이야기를 알지 못하면 이런 차들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음료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음료 시장이 열렸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겠지요. 리스펙!
원문: 마시즘
참고문헌
- 코카콜라가 감동한 어니스트 티의 기적, 세스 골드먼, 배리 날버프, 최성윤, 부키
- 오바마-윈프리도 즐겨 찾는 ‘어니스트 티’의 좌절과 기적, 최한나, 동아일보, 2014.7.9
- 코카콜라가 욕심낸 ‘어니스트 티’의 매력은 진정성, 김성애, 세계경영연구원, 2012.1.17
- 코카콜라가 사랑한 ‘어니스트 티’, 서영수, 중앙시사매거진, 2015.9.7
- 코카콜라 DNA를 바꾼 ‘어니스트 티’의 도전, 서영수, 시사저널, 2018.4.19
- The Honest Truth About Honest Tea: Co-Founder Seth Goldman Reflects on Brand’s Mission-Driven Journey, Journey Staff, Coca-Cola, 2017.5.17
- Honest and Beyond: Seth Goldman on His Evolving Role at Honest Tea, New Challenge With Beyond Meat, Jay Moye, Coca-Cola, 201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