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둘 중 택해야 한다면 나는 확신의 전자다. 어느 한 팀의 열혈 팬은 아니지만, 정교한 두뇌 게임 같은 야구보다는 보기만 해도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단순한 축구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 인생에 자주 오지 않을 기회인 유럽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고 여행지를 정할 때, 별로 고민하지 않고 스페인을 1순위로 택했다. 인생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던 현지인 아저씨들과 함께 스페인 프로 리그 라리가 경기 직관을 하던 그 밤, ‘나 좀 괜찮게 살고 있구나 ‘ 싶어 혼자 몰래 울컥했다.
밤을 새워가며 유럽 축구 4대 리그를 순례하던 열정은 서서히 식었지만, 지금도 월드컵 시즌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500g도 안 되는 공 하나의 행방에 잠 못 이루는 전 세계 축덕들 사이에 끼여 소심하게 환호한다.
대한민국팀의 첫 번째 예선경기가 있던 지난 목요일 밤. 0:0 어느 한쪽도 점수를 내지 못한 채 전반전이 끝났다. 하프타임이 시작되자 전반전 경기를 분석한 데이터가 공개됐다. 유효슈팅과 반칙 상황 등이 숫자로 정리된다. 그중 제일 궁금한 건 점유율. 같은 시간 동안 어떤 팀이 얼마나 공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스페인이나 독일, FC 바르셀로나 등 세계적인 최강팀들의 공통점은 바로 점유율이 높다는 점이다. 그래서 피치 위에는 ‘점유율 = 승리’ 같은 공식이 있다. 점유율이 높다는 건 공을 선점하고 있다는 시간이 길다는 뜻이고, 그 시간이 길다는 건 슛을 시도할 기회가 많다는 걸 의미한다. 동시에 상대편에 비해 골을 넣을 확률이 높다는 뜻과 닿아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촘촘히 패스하며 골을 몰고 골대로 진격하는 튼튼한 ‘빌드업‘을 하다가 예상 밖의 반격을 당할 때도 있다. 오랜 시간 볼을 지켜 내느라 진이 빠진 선수의 방심을 틈탄 빠르고 저돌적인 선수의 가로채기에 이은 역습. 아무리 단단하게 빌드업을 한다 해도 반드시 골이 된다는 법은 없고, 오히려 역습 끝에 탄생한 한 골이 승부를 가를 때가 있다. 89분 동안 공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1분 사이에 역습당한 후 골을 허용하면 경기는 패배로 끝난다. 역습을 한 팀의 팬이라면 짜릿하지만, 역습을 당한 팀의 팬 입장에서는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결과다.
여기서 우리가 쉽게 놓치는 게 있다. 점유율은 단순히 볼을 소유하고 있는 시간을 계산한 것이 숫자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관건은 점유율의 질이다. 우리 진영에서 볼을 오래 소유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 진영에서 공을 가지고 오래 머물러야 골이 날 확률이 높아진다. 승리에 가까워지고 싶다면 점유율의 질을 높여야 한다.
내 열심과 다른 결과가 내 손에 쥐어졌을 때, 축구 경기의 공 점유율을 떠올린다. 대부분의 성공에는 ’ 열심’이 바탕이 된다. 하지만 ‘열심’의 결과가 꼭 성공으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기대 밖의 결과를 받아 들었을 때, 내가 열심을 뿜었던 곳의 위치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숨을 고르고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우리 진영에서만 공의 속도를 조절한 게 아니라 그곳에서 공격이라도 할 듯 최선을 다해 송곳 패스를 한 건 아닌지. 어처구니없게 우리 골대를 향해 택배 크로스를 올린 건 아닌지. 진격 질주를 하며 향한 곳이 상대방 골문이 아니라 우리 골대 쪽으로 가서 골을 꽂아 놓은 건 아닌지 말이다.
엉뚱한 곳에서 열심히’만‘ 하고 있었는지, 그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그냥 열심 말고 똑똑하게 열심히 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된다고 포기하기 전에, 나의 ’ 열심‘이 향한 곳이 어딘지 냉정하게 바라보자.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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