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무슨 일을 하나요?
유진투자증권에서 글로벌 전략 담당을 맡고 있어요. 흥미롭고 투자해서 수익(돈 되는?)을 낼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조사, 분석하는 일이죠.
Q. 부동산 쪽은 어쩌다 엮였나요?
원래 건축공학을 전공했고, 첫 직장이 삼성물산 건설부문이었어요. 말이 좋아 기술직이지 여자로서 소위 말해 노가다를 한다는 건 만만치 않았죠. 네오플럭스라는 두산그룹 인하우스 컨설팅 회사로 이직했어요. 근데 여기서도 건설 아니면 중공업, 기계 쪽 산업 위주 컨설팅이었고 하이투자증권,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로 또 건설 섹터를 맡게 됐고(…) 요즘 들어 겨우(?) 건설을 벗어난 인생을 살고 있네요.
Q. 벗어나려 생각해본 적은 없나요?
그러려고 한번 슬쩍 갔던 회사가 있는데, 출근한 지 10일 만에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고 3개월 만에 퇴사했습니다.
Q. ……
근데 또 장이 너무 빨리 살아나고 애널리스트가 모자라는 상황이 왔어요. 그렇게 2009년 하이투자증권에서 애널리스트를 시작했고, 1년 반 만에 이직했죠.
Q. 연봉은 많이 올랐습니까?
네, 제법;;;
Q. 헐. 왜죠?
그때가 나름 제 인생의 황금기였어요. 애널리스트 되자마자 매경-한경에서 하는 애널리스트 투표에서 3등으로 올라왔죠. 이름이 열매라서 학창시절 반장선거 때부터 좀 유리했던 것 같아요. 경력도 당시로써는 좀 특이하긴 했죠. 건설 섹터에 건설사 출신 아줌마라고… 무명일 때 연봉이 워낙 낮았기 때문에 이직하면서 연봉도 좀 올랐어요.
Q. 영업 뛴 거 아닙니까?
공식 기관 세미나 말고는 따로 영업한 건 없었어요. 하이투자증권 조익재 센터장님께 많이 배웠죠. 그분이 항상 ‘애널리스트는 리포트로 승부하라’고 하시며 세 가지를 강조했어요. 1) ‘데이터’ 기반으로 2) ‘모델’을 잘 만들고 3) 거기에 ‘인사이트’를 더해라. 이 세 가지만 잘 지켜도 좋은 보고서가 나오더라고요. 물론 이 세 가지를 지키는 게 지금도 힘들죠…
Q. 3등 찍고 1등도 찍었습니까?
1년 만에 3등 찍고 이후 2등만 몇 년 했어요. 1위는 최장기 기록 경신할 정도로 압도적인 여자분이 있어서… 저도 그분 후광 효과를 좀 본 것 같아요.
Q. 애널리스트 생활은 마음에 드나요?
건설사 직원, 컨설턴트, 애널리스트, 이 셋 중에 가장 마음에 들고 지금도 재미있어요. 소위 말해서 돈 받고 공부하는 자리잖아요. 블룸버그 들어가면 전 세계 모든 데이터가 다 있고, 이를 분석해서 내 이름으로 내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일이죠. 월급까지 받으면서…
Q. 어쨌든 주가를 찍고 의견을 내야 하니 부담되지 않나요?
그렇죠. 장기적으로 안 좋을 거라 쓰면 그 회사 투자자들이 전화해서 욕하고 끊고… 홀드(hold, 보류 의견)라도 내면 난리 나죠.
이명박근혜, 나름 건설업으로 이 나라 경기를 유지하는 데 성공하다
Q. 건설 쪽에서 두각을 드러낸 건 이전 회사에서의 경험 때문인가요?
현장 경험이 제 장점이긴 했죠. 하지만 솔직히 운이 더 크다고 봐요. 제가 건설 섹터 맡은 게 금융위기 직후잖아요. 2009년 말, 2010년 초… 시작하자마자 건설산업에 2차 구조조정이 있었어요. 주가가 계속 빠지고 시장 분위기가 건설업은 역시 안 되는구나… 그래서 울면서 상사한테 인터넷 게임 애널리스트로 전환해달라고 했어요. 심시티(…) 같은 게임도 있는데, 건설이랑 게임을 같이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요. 그런 제 모습을 보며 상사가 넌 죽으나 사나 건설 하라고 했어요.
Q. 그게 대체 운과 무슨 상관이죠(…)
다행스럽게 2010년 5월부터 건설이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중동이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며 해외수주가 늘어났어요. 그리고 주택시장도 건설사 구조조정 끝났으니 크게 돈은 못 벌어도 더는 망가지지 않는다고 봤고요. 그때 삼성엔지니어링, 현대건설을 추천했고 실제로도 주가가 많이 올랐어요. 그렇게 성장하는 시장에 저도 올라탄 거죠.
Q. 4대강으로 건설사 열심히 밀어준 MB에게 감사해야겠군요.
4대강은 당시 건설사 매출에 기여하기는 했지만, 결국 한계가 있었어요. 건설 시장이 본격적으로 살아난 건 초이노믹스 덕택이죠. 본격적으로 신규분양도 늘고 가격도 오르고…
Q. 초이노믹스는 잘 쓴 정책으로 보세요?
평가에는 시간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부양을 안 했으면 경제성장률 자체가 1%대까지 낮아질 상황이었어요. 당시 사회 분위기가 일본처럼 장기불황 간다고 할 정도였으니… 어쨌든 집값 살려서 건설 경기가 살아났어요. GDP 성장률에 건설이 절반 이상 기여할 정도였죠. 분양에서 입주까지 3년은 걸리니까 아직까지도 건설투자는 GDP 성장을 견인하고 있고요. 한국은행 자료 보면 삼성전자 반도체 같은 설비투자도 컸지만, 여전히 건설도 성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어요.
망하기 직전의 부동산 경기가 초이노믹스 시절 살아나기까지
Q. 대체 당시 건설 시장이 얼마나 개판이었던 거죠(…)
2008년 금융위기 즈음 미분양으로 난리였고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입주가 문제였죠. 미분양은 착공은 했는데 분양이 안 된, 즉 안 팔린 거예요. 보통 시행사가 선분양하는데 시행사는 건설 도중 들어온 중도금으로 건설사 공사비를 줘요. 없으면 차입해야 하는데 서브프라임 사태 후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자 그것도 힘들어졌죠.
이때 시행사가 파산하면 할인분양 하거나 아니면 대물변제라고 해서 공사비 대신 아파트를 건설사에게 줬어요. 이러면 건설사가 본의 아니게 임대사업자가 되죠. 그러면 어떻게든 공사비를 회수하려고 할인에 할인을 더해서 아파트를 매각하게 되고, 먼저 고가에 분양받은 사람들은 소송 걸고… 여기저기서 난리였죠.
Q. 소송 걸면 누가 이깁니까?
일부 분양받은 사람들에게 위약금을 줄 때도 있지만, 대부분 건설사가 이겨요. 그래도 골치 아프죠. 분양가가 얼마든 안 팔리니까… 그때 등장한 게 건설사가 직접 전세를 놓는 거였어요. 분양가보다 낮춰 팔아도 안 팔리니 일단 싸게 전세로 살아보라고 대출까지 해줬어요. 그리고 마음에 들면 나중에 사라는 ‘애프터 리빙’ 제도였죠. 이 타이밍에 정부는 초이노믹스로 다시 부동산을 살렸고요. 이후 수년 동안 아파트 가격이 다시 상승하면서 예전 분양가를 회복해 건설사들이 대부분 자금을 회수했습니다.
Q. 건설 경기 살리며 부동산 가격 방어하고 GDP까지 받쳤으면… 초이노믹스, 짱좋은 정책이란 거 아닌가요?
그렇게 경기 살린 건 좋은데, 너무 세게 부양하려고 하다 보니 부작용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초이노믹스가 아니었더라도 공급 부족과 저금리를 감안하면 부동산은 회복되었을 수 있어요. 모든 규제가 다 풀리자 건설사들은 다시 분양을 늘렸는데 그 규모가 좀 지나쳤다고 봐요. 규제가 일시에 풀리지 않았더라면 분양도 그렇게까지 증가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죠.
Q. 그 말인즉슨 초이노믹스도, 이번 정책도 방향성은 좋았지만 과했다?
그렇죠.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에 대해 집값을 잡는다고 표현해요. 그런데 집값을 잡는다는 표현은 조금 우려스러워요. 강세론자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부동산에 있어 정부 정책만큼 강력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정책 효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릴 뿐이죠. 참여정부 정책 효과가 없었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저는 정책 효과가 서서히 나타난 거라고 생각합니다.
Q. 하지만 정책도 펀더멘탈 앞에는 답 없을 수 있지 않나요?
전 정부 개입을 무조건 부정하지는 않는데, 자꾸 정부가 이렇게 상한가, 하한가 만들듯 강력하게 개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너무 강하게 부양했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너무 세게 잡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부양책이든 안정책이든 너무 강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봐요.
2기 신도시, 공급과잉으로 인해 집값 떨어질 수 있다
Q. 어떤 측면에서의 부작용인가요?
경기도를 중심으로 신규분양이 단기간에 급증했어요. 2015년 건설사 공급계획이 아파트만 52만 호 정도였어요. 서울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한 5만 호 되려나? 그나마도 80%가 재개발 재건축이고… 분양이 많았던 대표적인 지역은 경기도 수도권이에요. 규제 완화에 부양책이 강하게 나오고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니 건설사들은 2015년에서 2016년까지 2년간 거의 100만 호를 분양했어요. 대부분 회사들이 목표를 초과달성 했죠.
Q. 공급 과잉 상태로 보시는 건가요?
장기적으로는 모르겠지만 2018-2020년 사이 수도권 입주 물량이 부담스럽다고 봐요.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공급과잉 아니라는 주장이 더 많은 것 같아요. 2008-2013년 공급이 너무 부족했기에 2015-2016년에 분양을 많이 한 건 부족한 신규 공급을 채우는 수준이라고 보는 시각이죠. 한국 총 주택 수가 대략 2,000만이라면 2-3년간 입주 물량 100만 호는 전체 가구 수의 5% 정도니 공급과잉이 아니라고 하죠. 특히,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의 70%는 노후화돼 있고 지금 신규공급 수준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게 공급과잉이 아니라는 주장인데, 지역별로 보면 또 다르거든요.
Q. 어떤 지역을 이야기하는 건가염?
내년 내후년에 일시적으로 공급이 급증하는 동네가 꽤 돼요. 화성시가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용인, 김포, 파주 등이 뒤를 잇는데… 예로 화성시의 경우 내년에만 3만 호가 공급돼요. 2011년에는 고작 649호가 입주한 적도 있는데 이번 사이클에서 공급이 크게 증가했어요. 이런 경우에는 공급 과잉의 영향으로 가격이 하락할 수 있겠죠.
Q. 그래도 수요가 있으니 그렇게 많은 물량을 내놨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장기적으로는 새 아파트를 노후화된 아파트보다 선호하니 결국 수요가 채워질 수 있어요. 하지만 새 아파트 초기 입주 시점에는 전세를 많이 내놔요. 새집증후군 때문에 내놓는 사람도 있지만 전세보증금으로 일단 대출을 상환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번 규제로 인해 입주 시점에 LTV 대출한도는 줄어들 거고 DTI, DSR을 까다롭게 적용하면 전세 내놓는 사람이 더 많아져서 전세가는 당연히 떨어지겠죠. 그러면 또 집값도 떨어질 수 있어요.
경기권 일부, 갭 투자자도 힘들고 신규 매매도 힘든 진퇴양난
Q. 그럼 이미 들어간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이런 대단지 입주 시에 주변 지역에 갭 투자한 사람들은 주의해야 해요. 잘못하면 집값은 하락하고 전셋값도 내려가서 보유현금이나 신용대출로 전세보증금을 빼줘야 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어요. 물론 장기적으로는 다시 제값을 찾아갈 수 있지만 입주가 증가하는 몇 년간은 이런 지역이 생길 수 있다고 봐요.
Q. 구체적으로 정책이 어떤 식의 부정적 프로세스를 그릴 수 있다는 거죠?
이번 대책은 LTV를 70%에서 40%로 낮춰 더 이상 한국의 가계부채, 대출 총량을 늘리지 않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의 실수요자라는 사람들은 대체로 목돈이 전세 보증금으로 잡혀 있잖아요. 월세도 보증금 5,000 미만 아파트가 거의 없어요. 이 말은 보증금 안 빼고 이사 갈 수 있는 사람, 즉 보유 현금만으로 이사 갈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LTV가 70%에서 40%로 떨어지면 집을 사서 이사 가기 더욱 힘들어져요. 분양받은 새집에 들어가려면 전세 보증금을 받거나 대출을 그만큼 많이 일으켜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일시적인 소화불량에 걸리는 거죠. LTV 70% 받아서 입주하려던 사람들이 일단 전세로 돌리자고 하면 전세 공급이 늘어나고, 그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전셋값이 하락하면 주변 지역에서는 역전세난도 일어날 수 있고 매매가격도 하락 압력이 커진다는 거예요.
Q. 그래도 신도시의 경우 교통이나 등등이 들어오며 상승 여력이 있지 않나요?
신도시는 인프라가 집값에 영향을 주는 건 사실이에요. 우리나라가 일본과 달리 도심과 바깥 가격 차이가 그렇게까지 크지 않은 편인 게,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고 요금도 싸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분당과 일산만 해도 신도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다는 주장의 반례잖아요. 요즘 분당 좀 올랐지만, 분당 올랐다고 하면 그 동네 오래 사신 분들 화내요. 반토막 났다가 이제서야 소폭 오른 수준이거든요. 강남은 회복됐지만, 분당은 아직도 2007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요. 일산은 애초에 별로 오르지도 않았고요. 5년 차트 보지 말고 10년 차트 보면 생각만큼 재미 못 보는 지역이 많아요.
Q. ……
저는 2기 신도시 중에서도 그런 동네가 나올 수 있다고 봐요. 인프라 이야기하는데, GTX는 시작도 안 했고 어떤 구간은 시작도 못 할 수 있어요. 입주할 때가 됐는데, 예정됐던 도로나 지하철이 안 들어온다고 하면 거주하기 힘들어져요.
Q. 판교는 어떻게 보세요?
판교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저 신도시라 하기엔 이미 신흥 부촌이 돼 있고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으니까요.
부동산 양극화, 절대 막을 수 없고 서울은 계속 간다
Q. 말씀 들어보니 한국의 부동산 정책에 좀 부정적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이 부동산 정책으로 가격 관리를 잘 한 나라에 속하는 건 사실인데… 정권에 따라 정책이 급변하니 혼란스러운 것 같아요. 지난 정권에서 부동산으로 경기를 부양하느라 전폭적으로 규제를 완화했을 때나, 이번 정권에서 갑자기 전방위적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양쪽 다 좀 과하지 않나 싶어요. 주거 정책이라는 것은 장기간의 안목으로 끌어가야 하는데 선거 한 번 할 때마다 규제와 완화를 팽팽하게 가져가면 시장에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봐요.
Q. 뭐, 아무튼 집값 떨어뜨리겠다는 현 정부 정책은 성공한 것 같은데요.
글쎄요… 사실상 강남 잡겠다는 정책인데… 저는 양극화를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 한다고 봐요. 강남 집값 잡겠다고 해서 강남 집값만 잡힐까요? 강남에는 교육 때문에 대출 잔뜩 받아 전세 들어간 사람들도 물론 많지만, 강남 아파트 소유주들은 대출 규제든 세금이든 그리 민감하지 않을 알부자가 많거든요.
Q. 그런데 이런 인식이 있지 않습니까? 강남-서초 오르니 송파 오르고 강북도 오르고… 지방도 오르고(…)
강남-서초는 정말 고소득층, 자산가가 많으니 비싼 집 수요가 많은 반면에 신규입주 물량은 여전히 많지 않아요. 그런데 강동, 송파구 입주 물량은 내년부터 본격 증가합니다. 18년 말 송파 헬리오시티, 19년에는 고덕동 입주도 시작되고… 그렇게 강동, 송파구 입주가 많아지기 시작하면, 상승 속도는 알아서 조절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가격 상승기에 분양이 증가하면, 수년 후 입주 시점에 공급이 증가하면서 가격이 리밸런싱되는 시점이 자연적으로 도래한다고 생각하는데… 정부가 규제로 잡는다고 강남의 부자가 이번에 얼마나 팔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Q. 하긴 부자들은 애초에 아파트보다 상가나 빌딩을 사랑하겠죠.
이번 정책이 아파트 시장에 별 영향 없을 거라는 강세론자 이야기는, 수요자들이 집 안 사면 전세 수요가 늘고, 결국 매매와 전세 사이 가격이 줄어들며 다시 집값을 끌어올릴 거다… 라는 거에요. 제가 보기에 이런 지역은 잠실, 반포 등 이미 충분히 비싼 지역이고 부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지역이라 정책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봐요. 반면, 수도권, 서울 외곽 지역에서는 대출 규제 영향으로 월세보다 전세 비중이 다시 높아져요. 새 아파트 입주가 증가하면 여기저기서 전세가 안 나가기 시작할 거고, 그러다 보면 가격이 하락하는 지역들이 많아질 거라고 봐요. 양극화는 더 심해질 테고요.
Q. 양극화?
풍선효과 생길까 봐 서울 전역을 비롯한 여러 지역을 누른다는 게 정부 정책인데, 다 누르면 좋은 동네가 아니라 안 좋은 동네가 하락할 위험이 더 커져요. 전 세계적인 흐름이긴 하지만 양극화를 막으려다 오히려 더 심화시키지 않을까 우려가 되네요.
Q. 왜죠?
그게 자본주의니까요. 부동산은 말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산이고 복제가 불가능해요. 세상에 같은 게 있을 수 없는, 정말 한정된 상품이죠. 사고 싶은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어요. 양극화 때문에 자산가와 고소득자가 늘어나도 원하는 동네는 한정적이죠. 그 동네를 복제할 수 없으니 당연히 압구정, 한남 같은 동네는 가격이 올라가는 거고요. 게다가 의학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과거보다 길어지기까지 하니 나이 들면 집을 팔 거라고 단정할 수도 없죠. 실제로 최근 5년간 60-70대 이상의 자가점유율은 예상과 달리 높아졌어요.
Q. 그럼 저 같은 무주택자는 어떻게 해야 하죠?
돈 많이 벌어서 강남 아파트 사세요. 아주 비싸고 한정된 강남 아파트를 사겠다는 게 아니라면 적당히 살만한 집들은 이미 많아지고 있어요. 무주택자라고 해서 집 사야 한다고 조바심낼 필요도 없다고 봐요.
Q. ……
실거주 목적으로 한 채, 무리하지 않는 수준에서 대출받아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한국만큼 보유세 부담 없는 나라도 별로 없죠. 그게 귀찮거나 돈 없으면 월세도 따져보면 그렇게 문제는 안 돼요. 주거비 측면에서 월세, 전세, 매매 가격에 차이가 많이 줄어들어 있어요. 전세의 경우도 생각보다 여러 리스크를 짊어지는 제도라 마냥 좋지만은 않아요. 서울 외곽으로 나가면 월세가 생각보다 싸요. 반드시 사고 싶은 집, 오래 거주하고 싶은 집이 아니라면 월세를 살아보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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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규제 상황, 무리한 조바심을 거둘 때
Q. 갭 투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본적으로 거주하지 않는 모든 부동산 투자는 갭 투자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초이노믹스 때 대출규제 완화 영향도 있지만 규제 완화로 아파트 가격이 오를 거라 생각하고 산 사람들이 많죠. 거주 목적 없이 시세차익만 보겠다, 전세와 매매가 차이로 수익을 내보겠다면 1주택도 갭 투자라고 볼 수 있죠. 지금까지는 올라가는 사이클이라 문제가 없지만, 매매가격이 내려갈 때 전셋값이 같이 내려가면… 그 보증금을 빼줄 능력이 있을지 문제가 되겠죠.
Q. 그래도 다주택자 규제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렇죠. 이번 정부 생각은 개인이 부동산으로 시세 차익 보려는 걸 막고, 투기를 원천 봉쇄하려는 것 같아요. 정부는 계속 규제를 강화할 것 같고 특히 다주택자에 대해서는 임대사업자 등록을 의무화할 거라고 봐요. 특히 3주택자 이상에 대해서는 더욱 강한 규제를 가할 것 같아요.
Q. 이번 대출 제한 등은 언제나 풀릴까요?
계속 옥죌 수는 없으니 나중에 다시 살려주겠죠. 그런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2015년, 2016년 분양한 아파트들이 2020년까지는 입주가 이어질 테니 그동안에는 확실히 공급이 많다고 보고요. 반면에 지금 규제가 강해지면 신규분양이 줄어들 테고, 그렇게 되면 2021년 이후에는 또 공급이 부족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이때쯤 되면 규제 완화 얘기가 다시 나오지 않을까요?
Q. 이번 정책으로 건설사들 타격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분양을 미루거나 못하게 되는 사업장이 생기겠죠. 그런데 변화는 좀 바람직하다고 보는 게… 우리나라 정도면 이제는 선분양을 지속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해외에는 다양한 금융상품도 있고… 그게 아니라도 건실한 건설사들이 스스로 자금 조달해서 지을 수 있어요. 2012년 미분양이 심각했을 때 모델하우스를 없앤 건설사도 많았어요. 럭셔리한 모델하우스 안 짓고 마케팅비 줄이고 아파트 거의 다 지은 후에 실수요자가 직접 와서 보고 사게 했는데 별문제 없었어요. 요즘 다시 TV, 신문 광고가 늘었죠. 광고를 보고 있으면 제 마음이 오히려 더 불안해진달까요.
Q. 8/2 부동산 대책 영향, 어떻게 보나요?
시차를 두고 규제 효과가 나타날 거라고 봐요. 부동산은 주식과 달리 정책 나왔다고 바로 반영되지 않아요. 특히나 이번 정책은 대출을 강하게 규제해서 매수 여력도 급격하게 낮췄어요. 거래가 대폭 줄어서 가격이 오르는 지역이 있는 반면 급매만 나오는 지역도 있어요. 지금은 혼란스러운 시국이죠. 참여정부 정책 중 가장 강한 정책은 금융 규제, 재건축 규제, 분양가 상한제라고 보는데 이번에 이 대책들이 한꺼번에 나왔어요. 지난 몇 년간 활발하게 추진되던 재개발·재건축이 이번 정권 하에서는 속도 조절에 들어가야 해요.
이게 의미하는 건 개발 기대감으로 인한 가격 상승이 축소된다는 것, 그리고 재건축으로 인한 멸실 수요가 당분간 줄어들 거라는 거에요. 게다가 분양가 상한제 적용하면 향후 분양하는 아파트 가격이 크게 올라가지 못할 거에요. 내년 내후년에 분양할 아파트 가격이 지금보다 별로 올라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면, 무리해서 집을 사려던 사람들도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거라고 봅니다.
Q.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을…
부동산 시장은 급등해도 불안, 급락해도 불안해요.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고요. 급등세가 보이던 지역들이 많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규제가 나올 만한 시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초이노믹스 이후 증가한 신규분양, 특히 수도권 입주가 본격화되는 시점을 앞두고 부동산 시장이나 건설시장이 지나치게 위축되지는 않도록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자면,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죠. 부동산 정책도 10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5년마다 급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집값이 오를 때는 전 국민이 부동산 보러 다니고 너도나도 부동산 전문가가 되었다가, 내리면 여기저기서 하우스푸어라고 난리인 걸 수차례 경험했잖아요. 이번 정부는 부동산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과 균형 잡힌 정책을 보여주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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