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할 때는 몰랐는데, 다하고 나니까 중국산인 걸 봤지 뭐야. 장을 보고 온 남편은 꽤 놀란 눈치였다. 결제까지 하고 나서야 양배추가 중국산인 걸 확인했다면서 당황스러워했다. 거듭 고민하다 결국 환불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중국산이라도 귀한 것이라 그냥 먹을까 했지만, 한 통에 사천 원이 넘는데 같은 가격이면 다음 날 국산 양상추를 사 먹는 것이 낫겠다 판단한 것이다. 한편, 머릿속에 갖은 계산을 해둔 나는 당혹스러웠다. 다른 음식을 하자니 그것도 내키지 않았다. 생협 매장의 매대는 텅 … [Read more...] about 양상추 없는 샌드위치: 단단해도 달달하게 즐기자
“고등어구이를 좋아하세요?”: 부슬비 오는 날, 고등어구이와 막걸리 한 잔을
밖은 비가 막 갰다. 꿉꿉한 공기를 가르니 별안간 스무 살 무렵에 어른 흉내를 낸다며 즐겨 먹던 고등어구이와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난다. 이십 대 초반의 J와 나는 종종 그 골목을 쏘다녔다. ‘삼치 골목’이라고 잘 알려진 동인천의 거리로, 딱히 단골집이 있는 건 아니었고 줄지어 있는 가게 중에 발길이 닿는 곳을 찾는 정도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주인보다 먼저 생선 굽는 냄새가 우리를 반겼다. 운이 나쁘면 빈자리가 없어서 발걸음을 옮겨야 할 정도로 거의 모든 가게가 사람들로 붐볐다. … [Read more...] about “고등어구이를 좋아하세요?”: 부슬비 오는 날, 고등어구이와 막걸리 한 잔을
스머프 양념치킨 반 마리
※ 실제 상호는 ‘스모프 양념통닭’이지만, 엄마와 저의 기억대로 ‘스머프 양념통닭’으로 표기했습니다. 내가 예닐곱 살 때 엄마는 나를 옆집에 맡겨두고 일을 나갔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보통 잠든 나를 안고 우리 집으로 건너갔는데 한 달에 한 번은 꼭 다시 문밖을 나섰다. 나는 깊은 잠결에도 '양념치킨 먹는 날’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어둑해지기 직전의 새파란 저녁, 가로등을 돌면 보이는 커다란 간판, 그리고 간판에 그려진 스머프는 마치 엄마와 나를 반기듯 두 팔을 활짝 벌렸다. … [Read more...] about 스머프 양념치킨 반 마리
슬기로운 면역 생활: ‘잘’ 먹고 계십니까
우리 오늘은 뭐 해 먹을까? 금요일 퇴근길, 평소라면 어느 식당에 갈지 정하느라 바빴을 텐데 이번 주도 집밥이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지난 3월부터 우리의 일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벌어지면서부터다. 안타깝게도 확진자와 사망자가 점차 늘어나면서 회사에서는 재택근무를 독려했고, 양육을 위해 돌봄 휴가를 지원하기도 했다. 새 학기를 손꼽아 기다렸을 학생들에겐 안타깝게도 온라인 개학이라는 초유의 상황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밖에 나다니질 않으니 자영업자는 그 … [Read more...] about 슬기로운 면역 생활: ‘잘’ 먹고 계십니까
내일은 더 맛있어질 거야
맛집이나 근사한 식당에서 분위기를 내는 것도 좋지만, 현지 가정에서 소담한 한 끼 식사를 먹는 것도 여행지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다. 그런 면에서 이탈리아의 소도시 여행은 더없이 좋았다. 산지와 구릉으로 둘러싸인 토스카나는 잘 알려진 것처럼 와인이 유명하다. 게다가 올리브, 토마토, 육류 등 신선한 식재료가 풍부해서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이 특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토스카나를 여행할 때 와이너리 근처 숙소에서 지내면서 와인과 소박한 요리 한 접시를 즐길 수 있는 … [Read more...] about 내일은 더 맛있어질 거야
‘김삼순’은 연애만 한 게 아니다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 모두 내게 줄게~ 이 익숙하고도 치명적인 멜로디가 흘러나오면 기어코 삼순과 진헌 사이엔 일이 생긴다. 지난 2005년 여름, 나는 마치 삼순의 친동생이라도 된 양 그녀가 울면 울고 웃으면 웃으며 뜨거운 나날을 보냈다. 무려 50%의 시청률을 웃돌며,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연애에 막 눈을 뜨기 시작한, 당시 스물한 살의 내 눈엔 오로지 김삼순과 삼식의 투닥거리는 연애사만 보일 뿐이었다. 그때는 미처 … [Read more...] about ‘김삼순’은 연애만 한 게 아니다
시작이 밤이다, 포기하지 마세요 ‘보늬밤조림’
이거 얼른 넣어둬. 반가우니까 주는 거야! 아이, 정말. 안 그러셔도 된다니까요! 참. 양평 생산자님들을 뵌 지도 벌써 7년째다. 해마다 ‘가을을 걷는’ 이쯤이 되어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묻는 것조차 잊고 막걸리부터 기울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업무가 바뀌어서 그때처럼 수시로 뵐 일은 없지만, 마치 어제 만난 사이같이 살갑다. 이날도 기껏 버섯 한 봉지를 사는데 그 옆에 있던 잎채소며 고구마며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주시던 탓에 어깨에 멘 가방이 무거울 정도였다. 특히 이날은 … [Read more...] about 시작이 밤이다, 포기하지 마세요 ‘보늬밤조림’
한가한 여름 끝자락, 잘해 먹고 산 이야기
재배한 옥수수가 상자째 버려질 위기에 놓였어요! 구출해주실 분 안 계신가요? 부부가 다급하게 SNS에 글을 올렸다. 다행히 옥수수는 글을 올린 지 한 시간 만에 무사히 구출(?)됐다. 귀농해서 삼 남매와 알콩달콩 지내는 부부는 올해도 역시나 타이바질부터 공심채, 오크라 등의 다소 특이한 식재료와 옥수수, 감자까지 하여간 이 여름에 맛있다는 것들은 죄다 거두는 모양이었다. 열매를 거두고 돌아서면 또 거둬야 한다는 여름이라고 분주해하는 부부를 보니 유독 한가로운 우리 집 주방이 … [Read more...] about 한가한 여름 끝자락, 잘해 먹고 산 이야기
편견을 깨면 부풀어 오른다
“헐, 말도 안 돼. 제가요?” “말이 안 될 건 또 뭐여? 잘하는 게 '요리'라는 게.” 수능이 끝난 그해 겨울날, 용하다는 ‘사주카페’에 있던 친구와 나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이냐는 물음에 점쟁이 아주머니의 입에서 겨우 나온 대답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요리의 'ㅇ' 자는커녕 달걀프라이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고, 라면 물도 못 맞추는 나한테 ‘요리’가 적성이라고 한 거야? 그게 진짜 말이 된다고 생각해? 집에 가는 내내 친구에게 몇 번이나 물었는지 … [Read more...] about 편견을 깨면 부풀어 오른다
주말의 브런치, ‘살맛’ 나는 한 접시
계획대로라면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서 부엌 불을 켜야 하는데, 이번 주도 역시 실패다. 자책 대신 바깥을 살핀다. 앞엔 나와 같은 모습의 네모반듯한 건물이 있고 뒤엔 뻥 뚫린 노는 땅이 있다. 그래도 여름, 가을께는 푸르고 노랗고 붉던 것들이 제법 봐줄 만했는데, 어느새 창문 밖 풍경은 튀는 색 없이 건조하고 앙상해진 느낌이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색깔의 주말을 보냈을까. 매년, 매달, 매주 셀 수 없이 맞는 주말 아침인데도 늘 다르다. 평일 내내 같은 일상을 보내는 우리에게, 혹은 그렇지 … [Read more...] about 주말의 브런치, ‘살맛’ 나는 한 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