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어느 위로의 구체적인 이름
막연함을 구체화하는 동안 상상은 더 커져 있었다. 마치 잘 부푼 빵 반죽처럼. 불안과 희망은 한데 뭉쳐 시큼한 향을 냈다. 이내 어려운 현실을 되뇌면서 힘 있게 차올랐다. 보글보글 꿈틀대던 상상은 마치 반죽 속에 있는 기이한 공기 방울처럼 보기 좋게 자리 잡았다.
모든 건 일단 오븐 안에 들어서야 할 일이다. 그전까진 아무도 이 빵의 맛을 알지 못한다. 그 맛이 궁금해질수록 빵을 먹었다. 빵 한 조각은 확신 한 조각이 틀림없었다.
기가 막히게 맛있는 빵을 먹으면서 나는 예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꼈다. 맛있다 또 먹어야지, 하는 마음보다 베이커가 누구였는지 알고 싶었고 질투가 났다. 그러다 그가 선 뜨거운 주방이 떠오르면 질투는 어느새 존경으로 바싹 구워진다. 그래서인지 겉은 그래도 속은 말도 못 하게 쫀득하고 폭신하다. 질서 없이 나 있는 기공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덩달아 뽀글거린다. 뽀글거리는 소리가 경쾌하기까지 하다. 또다시 가벼운 소리를 내며 톡톡 터지는 공기주머니가 잘 익은 르뱅(효모종)이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과정이 눈 앞에 펼쳐진다.
큰 덩이를 그냥 숭덩 뜯어먹기만 하다가 언제는 녹지 않은 차가운 버터를 올려 먹어보기도 했다.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꾸역꾸역 쌓아 올리고 뚜껑 덮는 행위를 즐기는 건 샌드위치와의 오랜 인연 덕분일 테다.
당이 필요할 땐 달달한 잼을 얹어 먹기도 하고, 어느 날은 얇게 썰어 바짝 구워 먹다가 입천정이 까져도 까르르 웃음이 났다. 수분이 날아간 빵은 버리지 않고 뜨신 수프에 담가 무거워질 정도로 축축하게 적셔 먹는다.
퇴사 후 지난 삼 개월간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하면서 동시에 편안하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빵’이었다. 조직, 그러니까 회사라는 울타리를 떠난 지 벌써 삼 개월이 되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비슷한 기분과 마음으로 같은 차를 타는 일상은 잊은 지 오래다.
지난 십 년의 흔적은 생각보다 금세, 힘없이 사라졌다. 내가 떠난 빈자리는 예상한 대로 적절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간 그런 경우는 셀 수 없이 봐온 일이라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게 놀라운 일은 아니어도, 조직의 이런 생리는 나를 단 하나의 삶으로 인도했다. 고용되지도, 누군가를 고용하지도 않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이 점점 굳어진 것이다. 심지가 굳어질수록 나는 ‘슬기로운 조직 생활’로부터 조금씩 멀어졌다. 그렇게 십여 년간 ‘고용된’ 나의 삶으로부터 퇴사하기로 결심했다.
다시, 새롭게 베이커리에서 시작하다
퇴사하고 한 달 반 동안 대형 베이커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서른여섯 살에 나는 또다시 병아리 신입이 된 것이다. 밀가루가 흩뿌려진 공기가 낯설었다. 회사에서는 딱히 ‘선명히 볼 일’도 없다며 쓰지 않던 안경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퇴근할 때가 되면 안경알은 밀가루로 뿌옇게 변해있었다. 커다란 오븐이 꽉 들어찬 곳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온종일을 보낸 흔적이었다.
컴퓨터 앞에 종일 앉아만 있다가 몸을 쓰다 보니 가뜩이나 없는 체력이 드디어 바닥을 드러냈다. 중력을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내 주방이라면 맘껏 날아다녔을 텐데, 방해가 되기 싫어 다치지 않으려고 부산스럽지 않은 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이 긴장통 속에서도, 순간순간 벅차올라서 눈이 아릴 만큼 행복했다. 몸은 지옥이어도 마음은 이 지옥을 내어주고 싶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 안경알은 뿌예졌지만 눈앞은 선명했다. 불안하면서 확신이 들었고, 맘 편히 걱정도 쌓였다. 행복과 불행을 넘나들다가 어느새 행복 회로를 돌리고 앉았고, 그러다가 차분해지고 냉정해지다가 다시 또 행복해졌다. 감정의 널은 미치도록 날뛰었으며, 나는 어느 쪽 감정이든 집요하게 끌어내리느라 진땀을 뺐다.
경험이 없는 일을 상상만으로 짐작해야 하는 상황은 정말이지 이렇게 기묘하다. 생각해보면 스무 살 때는 모든 일이 그랬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생경한 일을 해내는 것이 오히려 익숙했다.
서른 살쯤 됐을까, 그제야 나는 웬만한 일을 예상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직접 해보지 않아도, 직접 보지 않아도, 직접 뛰지 않아도 다년간 사람들이 지난 길과 약간의 경험을 조합해 그 길이 대략 어느 정도 험난할지 가늠할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경험치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경험치가 제로에 가까운 일에 도전하고 있다. 이 글을 천천히 따라온 분들 중 몇 분은 예상하셨겠지만, 그렇다. 나는 작은 빵집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이 철딱서니 없는 이의 이야기가 감히 위로가 되길
투박하더라도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음식과 서로를 알아보는 관계가 있고, 무엇이든 음식에 대한 주인의 철학이 있는 식당이라면 더 좋다. 세련되지 않은 노포라도 한 곳에 오랫동안 자리한 이유를 듣게 된다면 음식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느긋하게 음식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나에겐 그곳이 어디든 좋은 맛집이다.
<식탁의 위로> P.140
나의 책에 내가 생각하는 맛집, 그러니까 좋은 식당에 대한 생각을 옮긴 적이 있다. 이 문장을 쓸 때만 해도 빵집 주인은 그저 먼 미래였을 뿐이었는데, 고작 한 계절을 꽉 채우고 나니까 코앞에 맞닥뜨린 현실이 되어있었다.
이제 우리 집 주방에서 전하던 위로를, 뜨거운 열기 가득하고 밀가루 폴폴 날리고 구수한 빵내가 가득한 작업장에서 빵으로 이어가 볼까 한다. 십 년 동안의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밑도 끝도 없이 ‘빵 노동 인간’이 되겠다고 뛰어든 철딱서니 없는 이의 이야기가 이 시대의 빵순돌에게,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다니는 이에게 감히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그렇게 나는 팔 년 만에 내 고향 인천으로 갔다. 비단옷 대신 작업복을 입고 빵의환향한 것이다.
원문: 오가닉씨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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