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아파트를 싫어했다. 돌덩어리에 우르르 들러붙어 사는 게 멋대가리 없었다. 죄다 똑같은 집에 개성 없이 사는 걸로 보였고, 닭장 같은 데 갇혀 사육당한다고도 여겼다. 내 생각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만 진짜 집이었다. 정원을 가꾸고 개도 키울 수 있는. 허튼 생각이었다. 성인이 되어 홀로 상경하자마자 즉각 깨달았다. 세상은 방긋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웰컴 투 더 리얼 월드♪ 옥탑방에서 바라본 풍경은 첫 집은 옥탑이었다. 냉난방이 되지 않는 곳이었다. … [Read more...] about 아파트는 힘이 세다: 돌고 돌아 아파트를 고집하게 된 이유
아이유 콘서트: 슬픈 위로로 가득했던 앙코르
11월 24일 앵콜과 앵앵콜 사이에 SNS로 그 소식을 접했다. 근처 관객들의 표정을 살피니 양쪽으로 나뉘었다. 소식을 모른 채 마냥 설렌 마음으로 기다리는 사람, 깜짝 놀라서 ‘어떡해’ 하는 마음으로 걱정하는 사람. 아이유는 관객이 합창하는 ‘밤편지’에 맞춰 다시 무대에 올랐다. 심상치 않은 얼굴을 하고서. 한국 막콘 앵앵콜에 걸맞은 후련함이나 즐거움은 조금도 없었다. 소식을 들은 것이다. 아이유는 공연 내내 이렇게 말했다. 오늘 관객분들 정말 너~무 좋다, 요 몇 달간 힘든 일이 많았다, … [Read more...] about 아이유 콘서트: 슬픈 위로로 가득했던 앙코르
문학 표절에 대한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
※ 본 글은 뉴스톱에 기고한 글입니다. ※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이 표절 논란 끝에 당선 취소됐다. 인기 과학 블로거 ‘고든’의 글과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은 처음엔 표절이 아니라고 판단했으나 논란이 지속되자 입장을 바꿨다. “표절의 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심사의 엄정성을 위해 당선을 취소하기로 결정하였다”고 사유를 전했다. 이 글은 본디 7일 오후에 써서 뉴스톱에 송고한 것이다. 8일 오전에 발행된 원문에는 내가 해당 시의 당선을 문제 삼는 … [Read more...] about 문학 표절에 대한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
증시와 문재인
※ 11월 4일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증시가 파도를 치자 대통령을 성토하거나 비호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패닉을 느낄 만큼 급락할 때는 ‘이게 다 문재인 때문이다!’며 극렬히 비난하는 사람이 제법 보였다. 그러다가 11월 2일에 기록적인 반등률을 찍자 열성 지지자들이 ‘이게 다 문재인 덕분 아니냐!’며 반격을 가했다. 나처럼 줏대 없는 중립충은 피로를 느낀다. 대통령 때문에 급락한 것도 아니고 대통령 덕분에 급등한 것도 아니니까. 올해 내내 미국을 제외한 세계 … [Read more...] about 증시와 문재인
부동산 정책과 비트코인 역사 이면의 트라우마
최근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비트코인: 암호 화폐에 베팅하라〉와 김수현 사회수석의 저서 『부동산은 끝났다』를 보고 읽었다. 다른 소재를 다른 방식으로 다룬 두 콘텐츠인데 시청/독서 후 뇌리에 남는 단어는 똑같다. 바로 ‘트라우마’다. 비트코인의 역사는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에서 시작됐다. 4대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마저 속절없이 파산하자 기존의 금융 체계를 거부하는 심리에서 태동했다. 자본과 정보를 독점한 특정 주체를 거치지 않는 투명하고 평등한 시스템 구축이 목적으로, … [Read more...] about 부동산 정책과 비트코인 역사 이면의 트라우마
완벽한 띄어쓰기를 회의한다
글 좀 쓴다는 사람이 유난히 많이 틀리는 띄어쓰기가 있다. 바로 ‘그중’과 ‘그동안’이다. 이 둘은 한 단어여서 붙여 쓰는 게 원칙이나 글쟁이의 태반이 띄어 쓴다. 원흉은 바로 MS 워드. 붙여 쓰면 틀렸다고 빨간 줄이 뜨기에 다들 띄운다. 이는 재미난 현상을 야기한다. 아래아한글을 주로 쓰는 작가와 공무원은 붙여 쓰고 MS 워드를 주로 쓰는 기업체 직원은 띄어 쓰는 경향이 짙은 것이다. 거짓말 같으면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한번 유심히 살펴보라. 얼추 들어맞을 것이다. 누군가는 … [Read more...] about 완벽한 띄어쓰기를 회의한다
인권의 과도기에서 불거진 마마무와 국립발레단의 인종차별 논란
걸그룹 마마무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콘서트에서 블랙 페이스 분장을 하며 흑인 비하 논란을 빚은 것이다. 여론의 질타가 상당하고 현재 마마무 측은 사죄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를 보니 지난해 봄에 국립발레단도 비슷한 논란을 일으킨 일이 생각난다. 대중예술이 아니다 보니 크게 화제가 되진 않았지만 마마무 사건과 상당 부분 통하는 측면이 있다. 당시 논란이 된 작품은 <라 바야데르>다. 해당 작품의 1~2막에는 ‘아랍계 아동’이 등장하는데 예원예술학교 학생 6명이 블랙 페이스 … [Read more...] about 인권의 과도기에서 불거진 마마무와 국립발레단의 인종차별 논란
신분당선 강남역의 싸이그림 두 장에 대한 삐딱한 소고
※ 이 글은 2015년 5월 27일에 쓰인 글입니다. 천성이 배배꼬인 난 위의 그림 두 장을 볼 때마다 심기가 살짝 뒤틀린다. 신분당선 강남역에 걸린 대형그림들로 보다시피 싸이의 히트곡 ‘강남스타일’을 테마로 하고 있다. 각각의 작품명은 〈희망가〉와 〈큰 소나무〉. 전자엔 여러 나라의 국기가 나부끼는 가운데 신명 나게 말춤을 추는 모습이, 후자엔 유명한 연예인 및 운동선수와 정치인 들의 얼굴이 담겨 있다. 날 거북하게 만드는 건 함께 전시된 작가의 코멘트다. 아래와 … [Read more...] about 신분당선 강남역의 싸이그림 두 장에 대한 삐딱한 소고
문학 공모전에 대한 삐딱한 생각 몇 가지
문학 공모전 이야기가 불거진 김에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몇 가지를 풀어본다. 아마 나뿐 아니라 많은 작가 내지 문청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듯하다. 1) 공모전 중복출품 허용 주요 문학 공모전의 요강을 보면 대부분 ‘다른 데 이거 응모하면 안 돼! 걸리면 너 아웃임!’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난 이걸 이해할 수 없다. 문학은 수학 등과 달라서 정답이 없고 일관된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 여기선 대차게 까여도 저기선 쪽쪽 빨릴 수 있는 게 문학이다. 중복출품을 허용해야 한다. 대신 수상을 … [Read more...] about 문학 공모전에 대한 삐딱한 생각 몇 가지
홍대 일베 조형물 훼손, 작가의 ‘책임지라’는 말이 촌스러운 이유
홍대 일베 조형물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먼저 난 그런 식의 작품 자체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예술적, 철학적으로 어느 정도의 깊이와 설득력을 갖췄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런 작품을 만들어서 안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작품이 형편없으면 그냥 그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비판하면 될 일이다. 만들지 말라고 강요하는 데엔 난 반대한다. 하지만 작가가 그걸 때려부순 이더러 훼손했으니 책임지라고 말하는 건 어딘지 촌스럽게 여겨진다. 구상 및 제작 … [Read more...] about 홍대 일베 조형물 훼손, 작가의 ‘책임지라’는 말이 촌스러운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