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마마무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콘서트에서 블랙 페이스 분장을 하며 흑인 비하 논란을 빚은 것이다. 여론의 질타가 상당하고 현재 마마무 측은 사죄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를 보니 지난해 봄에 국립발레단도 비슷한 논란을 일으킨 일이 생각난다. 대중예술이 아니다 보니 크게 화제가 되진 않았지만 마마무 사건과 상당 부분 통하는 측면이 있다.
당시 논란이 된 작품은 <라 바야데르>다. 해당 작품의 1~2막에는 ‘아랍계 아동’이 등장하는데 예원예술학교 학생 6명이 블랙 페이스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올랐다. 얼굴은 까맣게, 입술은 두툼하게 분장하고 춤을 춘 것이다. 공연 직후 한국경제의 선한결 기자가 문제를 제기하자 국립발레단은 “지금껏 이런 문제가 제기된 적이 없다. 기자가 잘 알아보지 않고 쓴 것이다. 제일 중요한 팩트는 안무가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라 바야데르>는 1877년에 초연된 작품이다. 당시의 시대상에 근거해서 본다면 블랙 페이스는 어쩌면 오리지널리티의 한 단면일 수 있다. 그 시절엔 발레가 백인 상류층의 전유물이었고, 유색인종의 희화화는 인권 침해가 아니라 유머였으니까.
하지만 한 세기하고도 절반이 더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국립발레단이 채택한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1991년 안무 또한 근래엔 논란이 되고 있다. 선한결 기자가 쓴 기사의 한 단락을 아래에 그대로 옮긴다.
“미국 헤럴드트리뷴의 평론가 캐리 사이드먼은 “여전히 블랙 페이스 분장을 한 아동들 장면을 볼 때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고 기고했습니다. 무용 평론가 알라스터 맥컬리는 미국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백인이 흑인 역을 할 수는 있지만, 블랙 페이스 분장은 너무나 터무니없어 그로테스크하지도 않을 지경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무용 평론가 레이몬드 스털츠는 러시아 모스크바 타임스에 “아동들의 블랙 페이스 분장은 다른 이들에게도 내가 느낀 만큼의 불편함을 줬을 거라고 확신한다”고 썼습니다.
모두 채 10년이 되지 않은 글입니다. 국립발레단에서 이 논란을 정말 몰랐을까요.”
블랙 페이스 분장이 더 이상 유머 코드로 유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같이 민감한 사회에서는 이미 금기(taboo)의 반열에 올라서기도 했다. 150년 전에 초연된 고전 작품의 연출에서도 이리 첨예한 논란을 빚는 현황이니 현대의 대중예술인인 마마무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그다지 없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나로서는 이 실책이 마마무를 탈탈 털고 낙인 찍는 방향으로 전개되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한다. 우리는 ‘인권의 과도기’를 살고 있다. 우리가 속한 사회에는 이런 사안에 둔감한 이가 민감한 이보다 여전히 많은 게 현실이고,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큰 틀에서 보면 크게 나을 것 없다. 난 마마무 측이 특별히 무지했다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투영된 쪽에 가깝다고 본다.
비판을 통해 사회 전반에 경각심을 고취하고 점차 개선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때다 싶어 육두문자 섞어가며 조리돌림 하는 건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이 걸그룹이란 이유로 이리저리 비하하면서 그러면 더욱 거시기하다. 소리 높여 정의를 말하는 행동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불의한 사람인지를 노출하는 격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