꿉꿉한 날씨를 뚫고 충무로에 도착해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러브리스(Loveless)〉를 봤다. 영화를 다 보고 느낀 거지만 이날 날씨와 장소, 그리고 영화가 참 잘 들어맞았다는 것. 사랑이 사라졌다? 사라졌다고 할 만한 사랑이 이 영화에서 애초에 존재하긴 했던 것일까? 나무에 올라가 보는 아이. 누군가 집을 보러 온 것이 어떤 상황을 의미하는지 알아챈 아이의 퉁명스러운 태도. 냉장고 위의 작은 텔레비전.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전파되는 시대상. 질 스타인, 버락 오바마, 미트 … [Read more...] about ‘러브리스’, 불안이라는 감옥
‘파리의 딜릴리’, 색채의 마법 속 묵직한 메시지
인간 동물원, 인간 전시의 장(場) 이 영화의 첫 장면에는 인간 동물원이 나온다. 인간 동물원. 발화하는 순간부터 오싹한 느낌이 든다. '인간'과 '동물원'의 괴이쩍은 결합. 아름다운 보랏빛 애니메이션을 잘 봐놓고, 어떻게 이런 끔찍한 단어를 초반부터 쓰는가! 그것도 문화와 예술의 도시인 '파리'를 배경으로 한 낭만적인 작품을 보고… 라고 혹자는 성낼 수도 있겠다. 주인공 딜릴리의 깜찍한 얼굴이 카메라에 잡힌다. 원시부족 생활을 하는 듯한 모습이다. 처음부터 의아한 생각을 갖게 … [Read more...] about ‘파리의 딜릴리’, 색채의 마법 속 묵직한 메시지
차 안에 ‘미니 편의점’이 생긴다고?
리테일 플랫폼으로 우뚝 선 '자동차'? 자동차 안에 미니 편의점이 있다면 어떨까? 다소 생경하게 들리겠지만, 미국의 카고(Cargo)라는 스타트업은 이를 현실로 만들어냈다. 카고는 승차 공유 서비스 회사와 손잡고 차량 콘솔박스 위에 미니 자판기를 설치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미국의 뉴욕, 시카고 등지에서 이미 각광을 받고 있다. 차를 타기 전 어떤 물건을 사지 못했을 때 답답했던 경험이 누구나 있지 않은가? 가령 출출해서 간단한 초코바라도 좀 먹고 싶을 때가 있고, 전날 회식 때 … [Read more...] about 차 안에 ‘미니 편의점’이 생긴다고?
『변성』, 돈을 거부하는 사공 노인이 현대사회에 던지는 질문
중편 소설 『변성』은 중국의 대문호 선충원(沈從文)의 대표작이다. 중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정재서 교수는『변성』을 읽지 않는다면 중국 현대문학의 아주 중요한 측면을 외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역자 서문에서 단언한다. 정 교수는 이어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해하기를 기원한다. 역자로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희망이다. 필자는 역자의 바람처럼 이 책을 읽는 내내 참 좋았다. 글을 읽어가면서 절로 다동(茶峒)의 풍광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작품의 ‘우미한 분위기’에 유유히 … [Read more...] about 『변성』, 돈을 거부하는 사공 노인이 현대사회에 던지는 질문
‘남자다움’이라는 문법적 착각
양성 평등적 언어가 더욱 강한 군대를 만든다 군대가 남성들의 전유물인 시절이 있었다. 군대는 남성성이 가장 극렬하게 표출되는 조직이었고, ‘약한 여성’을 보호해야 하는 ‘강한 남성’의 집단이었다. ‘남자답다’는 표현과 ‘힘’은 동일시되었고 동시에 상찬되었다. 여군(女軍)이 등장함으로써 군 조직 자체의 패러다임이 변했다. 사관학교에 여생도가 입학하게 되고 수석 졸업생도 배출됐다. 부사관 중에서도 여성의 비율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조직의 구성과 성격이 변화하면 인식의 전환도 … [Read more...] about ‘남자다움’이라는 문법적 착각
강남이 뭐길래 다들 그렇게 오버인가?
한종수•강희용, 『강남의 탄생』 필자는 잠실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잠실에 소재한 곳을 다녔고, 고등학교는 강남구에 위치한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송파, 강남이 주된 생활권이었던 것이다. 스무 살이 넘어서는 가족 전체가 강북으로 이사를 와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아무 문제 없이. 본격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기에 앞서 ‘강남’의 범위를 설정하는 게 좋을 듯하다. 『강남의 탄생』의 공저자 한종수와 강희용은 “‘강남’의 범위를 정의하기란 쉽지 … [Read more...] about 강남이 뭐길래 다들 그렇게 오버인가?
‘빵점짜리 엄마’는 없다
자책에 방점이 찍힌 이 못된 표현의 부당함을 자각해야 전년도 동기간과 비교한 매출 실적이 가득한 파워포인트, 복잡한 수식으로 구성된 엑셀 파일, 본 자료보다 수 배나 더 많은 양의 첨부 자료가 그녀의 손에서 나왔다. 마술사에 가까운 능력이다. 팀 내에서 누구보다 발표력과 기획력이 뛰어난 B. 대학에서 두 개의 전공을 만점에 가깝게 이수하고, 회사에 들어와 앞만 보며 달리며 눈부신 능력을 보여준 그녀. 한데 그녀가 지금 업무에 온전히 집중을 못 하고 있다.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 [Read more...] about ‘빵점짜리 엄마’는 없다
어쩌다가 ‘참칭’을 하게 만드는 한국 사회의 호칭 인플레
부사장이 '사장님'이 되고, 석사가 '박사님'이 되는 요지경 세상 대학생 시절 국내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매체 중 한 곳에서 인턴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 그 언론사가 주최한 행사에 참여했을 때, 사소하지만 이해가 쉬이 안 되는 말을 반복해서 듣게 됐다. 그날 부사장이 자리를 함께했는데, 행사 사회자와 현직 기자는 물론이고 내빈 중 한 명이었던 모 지자체장도 자꾸 그 부사장을 가리켜 ‘사장님’이라 칭했다. 부사장이라고 멀쩡하게 소개를 해놓고 사람들 앞에서는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 [Read more...] about 어쩌다가 ‘참칭’을 하게 만드는 한국 사회의 호칭 인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