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수•강희용, 『강남의 탄생』
필자는 잠실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잠실에 소재한 곳을 다녔고, 고등학교는 강남구에 위치한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송파, 강남이 주된 생활권이었던 것이다. 스무 살이 넘어서는 가족 전체가 강북으로 이사를 와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아무 문제 없이.
본격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기에 앞서 ‘강남’의 범위를 설정하는 게 좋을 듯하다. 『강남의 탄생』의 공저자 한종수와 강희용은 “‘강남’의 범위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라며 강남을 규정하는 범위에는 여러 층위가 있을 수 있지만 ‘강남구와 서초구, 송파구. 소위 강남 3구’를 기본으로 본인들의 책을 서술하겠다고 말했다. 필자 역시 ‘강남구’에 한정하지 않고 한종수와 강희용이 기본으로 삼고 있는 범위와 의미로 ‘강남’을 말하고자 한다.
강북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강남이라는 지역에 대한 강남 외부 사람들의 관심, 동경, 비판 등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 어린 세대일수록 과장된 동경심이 컸고, 지나친 시기심(혹은 적개심)도 왕왕 감지되곤 했다. 강남 주민들의 지역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고, 선거 때 나타나는 그들의 투표행태에 대한 날 선 견해도 접할 수 있었다. 첨언하자면 현 청와대 민정수석인 법학자 조국 교수는 그의 책 『보노보 찬가』에서 강남 지역의 투표행태를 “철저하게 계급이익에 충실한 투표”라 표현한 바 있다. 강남에 부자만 사는 게 분명히 아닌데 강남은 꽤나 단일한 이미지로 형성되어 있는 듯했다. 조금 많이 촌스럽게도.
강북으로 이사를 간지 얼마 안 됐을 때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한 적이 있다. 아직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어느 쪽으로 가는 게 빠른지 잘 모르니 기사님께서 알아서 가주시라고 말했다. 기사 아저씨는 어디서 이사 왔냐고 내게 넉살 좋게 물었고, 나는 잠실이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대뜸 내게 날아온 말.
그렇게 좋은 부자 동네에서 어쩌다 이곳으로 이사 오셨어요?
그 택시기사님의 교양과 인격을 따지는 것은 차치하고 ‘잠실=그렇게 좋은 부자 동네’, ‘강북=어쩌다 이곳’으로 간편하게 등식화하는 사고의 부박함에 크게 놀란 적이 있다.
강남이 뭐길래 다들 그렇게 오버인가?
‘영동’이라 불렸던 ‘강남’, 그 일천한 역사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이야기부터 해봐야겠다. 나는 강남구 청담동에 소재한 영동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배우 현빈, 영화감독 박찬욱이 나온 학교다. 영동고등학교의 ‘영동(永東)’은 ‘영등포 동쪽’이라는 뜻이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 흔히 쓰는 ‘강남’보다 ‘영동’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1963년 이전까지 ‘강남’은 아직 서울에 속하지도 않았었고, 1970년대의 강남 개발이라는 것도 정식 명칭은 ‘영동 개발’이었다. 화려함을 자랑하는 지금의 강남, 그 역사는 기실 그리 유구하지는 않은 것이었다. 그러니 좀 쫄지 말자.
강남 개발의 압축적 역사
강남 지역의 대개발은 여러 요인과 조건이 맞물려 추진되었다. 한종수와 강희용은 강남 개발의 배경을 5가지로 정리한다. 안보 문제 해결을 위한 도심 기능의 분산, 엄청난 개발 가능 면적, 개발을 통한 정치자금 조성, 서울 도심과의 인접성, 자동차 시대의 도래 등이다.
이 거대한 지역이 현대 도시로 탈바꿈하는 데에는 10년이라는 짧은 시간밖에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인프라 측면에서는 말 그대로 상전벽해가 일어났다. 경부고속도로가 1970년에 전 구간 개통되고, 이어서 호남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등이 연이어 뚫리며 시민들의 ‘강남 지향’이 움트기 시작했다. 제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는 강북으로부터 강남을 잉태하는 탯줄이 되었다.
또한 강남과 강북이 동일한 생활권으로 통합되었고, 이는 엄청난 투기 열풍으로 이어졌다. 착공 당시만 해도 강남구 신사동 일대의 땅값이 그다지 비싸지 않았는데 1년 뒤에는 무려 15배가 상승했다. 그리고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강남에 자리 잡으면서 ‘자동차 시대’와 ‘강남 시대’를 열었다.
교육 측면에서는 경기고와 휘문고, 숙명여중•고, 서울고 등 명문고들이 강남으로 이전했고, 경쟁력 있는 학원들도 강남으로 몰려들었다. 노량진보다 대치동의 강의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고, 특히 2000년대 초반 인터넷 강의의 보급으로 대치동 학원가의 위상은 더욱 올라가며 해당 지역의 집값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그 외에도 대법원 청사와 서울고등법원, 검찰청사, 국가정보원 등 힘 있는 국가기관의 강남 이전, 대형병원과 교회•성당 및 백화점의 강남 집중 등의 요인도 빼놓을 수 없겠다.
강남은 더욱 그 위세를 키워갔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거치면서 잠실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1976년 잠실 주공 5단지가 15층 아파트 시대를 열었고, 아시아선수촌아파트와 올림픽선수촌아파트가 생겼다. 롯데월드를 위시한 ‘롯데타운’도 만들어진다. 1988년에는 서울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송파구가 강동구에서 분리되고, 서초구가 강남구에서 분리되었다. 이른바 ‘강남 3구’가 탄생한 것이다. 점점 강남은 우리가 아는 지금의 ‘강남’으로 변모해갔다.
앞서 언급했듯 강남의 발전은 자동차 시대의 도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지하철 2호선을 제외하고는 강남을 지나는 지하철의 완공 시기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이후였기 때문에 강남은 자동차의 천국이 되었다.
강남의 넓은 도로는 자동차들로 가득 찼고, 주차장은 포화가 되어 이웃 간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기도 하였다. 자동차 붐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자동차에 대한 고려가 더욱 정밀하지 못했던 강북은 더 극심한 주차난에 시달려야 했다. 또한 자동차가 골목을 점유하면서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하나둘 사라졌다. 배기가스 배출로 인한 환경문제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폐해다.
강남-강북의 불평등은 ‘성취적 불평등’이 아니라 ‘귀속적 불평등’의 결과?
무엇보다 문제는 강남과 강북 사이의 불균형 발전으로 인한 여러 사회적 갈등과 그것이 파생하는 복잡한 이슈들일 것이다.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지적대로 강남-강북의 불평등이 보여주는 현상은 ‘성취적 불평등(achieved inequality)’이 아니라 ‘귀속적 불평등(ascribed inequality)’의 결과에 가까웠다. 이런 불평등이 교육격차로 이어지는 것이 사실 더욱 심각한 현상이다.
강남개발의 또 다른 속살은 부동산 투기 문제다. ‘한국판 골드러시’라고 운위될 정도로 강남 지역에서 졸지에 부자가 된 사람의 이야기가 전국에 퍼졌고, 이는 강남과 비(非)강남 사람들의 심리적 격차를 더욱 벌리는 데 기여하고 말았다. ‘강남 부동산 불패’와 같은 희유한 단어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특히 1978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은 부동산 투기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계기가 되었고, ‘한방’을 노리고 전 국민이 집단최면에 걸린 듯 투기판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강남개발의 어두운 이면이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지역 최대 이슈는 단연코 ‘뉴타운’이었다. 뉴타운이 선거의 판세를 삼켜버린 것은 강남을 닮고 싶어 하는 강북 시민들의 욕망이 여과 없이 드러난 장면이었다. 선거 당시에 뉴타운 구역 추가 지정에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던 오세훈 시장은 선거 후에 추가 지정을 안 하겠다고 밝혔고 이는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켰다. 뉴타운은 완전히 실패한 정책으로 끝이 났다.
강남을 닮고 싶어 하는 욕망은 비단 강북만의 심리는 아닐 터, 지방의 크고 작은 수많은 도시들은 강남을 무작정 벤치마킹하였다. 신도심을 개발해 시청, 법원, 방송국, 터미널 등 알짜 시설을 옮겨 놓았고, 구도심에는 전통시장과 옮길 수 없는 기차역만 남았다. 구도심은 죽을 수밖에 없었고, 이런 도시들은 자연히 특징이 없는 붕어빵 도시가 되는 폐해를 야기했다.
이춘희 세종특별자치시장은 추천사에서 “이 책은 강남을 비롯한 우리나라 신도시와 도시계획의 역사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을 고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의 탄생』은 압축적으로 현대 도시개발사를 살펴볼 수 있는 책임에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 강남의 과거사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추적해볼 수 있다. 강남의 여러 얼굴도 만나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강남의 미래는? 혹은 서울, 나아가서 우리 도시 그리고 국가의 미래는? 그 고민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며 책장을 덮는다.
아, 위에서 말한 택시기사님께서는 내가 도착할 아파트의 이름을 들으시고는 또 자기 나름대로 ‘강남’과 연계하여 불가해한 해석을 시도하셨다.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지만, 이 책을 보니 그런 아저씨의 마음도 또 그것대로 이해가 된다. 다음에 또 그 택시에 타게 된다면 이 책을 추천해드려야지.
원문: 석혜탁 칼럼니스트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