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감히 평신도가 까불어? 세속 계급에서 종사하는 평신도는 거룩한 성직자에게 복종해야 한다. 성직자의 설교나 성경해석에는 절대 토 달지 말라. 심판받을 짓이다.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 해서 주제넘게 평신도가 교인들 모아서 작당하지 말라.” 요즘 이야기? 아니다. 1520년 루터가 「독일 민족의 귀족에게 고함」이라는 논문을 쓰게 된 배경이다. 세속계급과 성직 계급의 철저한 분리, 평신도의 성서해석권 불허, 교회 공의회 소집에 관한 교황의 독점권이 … [Read more...] about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공동체는 모두가 평등하다
누구를 위해 헌금은 걷히는가?
루터교회에서 헌금설교는 금기 아닌 금기다. 돈으로 은총을 거래하는 면죄부에 대한 반박에서부터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했으니 교회가 돈 걷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그렇다면 당시 면죄부를 팔던 중세교회와 그것을 반대하던 개신교회, 헌금의 총량은 어떠했을까? 당연히 당시 로마-가톨릭교회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실제 역사는 그 반대다. 오히려 종교개혁기 동안, 그리고 그 이래로 루터교회에 헌금과 기부, 자선이 훨씬 늘었다는 점은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 [Read more...] about 누구를 위해 헌금은 걷히는가?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Ecclesia semper reformanda) 루터의 이 외침은 단순히 교회 제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빛을 발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고치는 것이다. 이것이 일상 한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것이다. 루터는 이것을 '반복적 세례의 삶'이라고 부른다. 목회자라면 자신에 대해서는 예민한 양심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하고, 교회 앞에서는 복음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기 … [Read more...] about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골방기도냐 아니면 촛불집회냐, 이것이 문제로다?
어제 친구 한 분이 찾아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런 말씀을 하신다. 보수 교단 목사이지만 촛불 집회에 나가는 게 옳다고 생각되어서 광화문에 나갔고, 거기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포스팅엔 정반대의 댓글이 달렸다고 한다. 하나는, 목회자는 정치에 관심을 끊어야 한다는 비난인데, 촛불집회 나가지 말고 그 시간에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것이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목사는 설교와 기도에 전념하라는 논리다. 두 번째는, 촛불 집회에 나간 그 용기를 … [Read more...] about 골방기도냐 아니면 촛불집회냐, 이것이 문제로다?
왜 예수님은 성전을 저주하셨을까?
“왜 예수님이 성전을 저주하셨을까?” 여기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오늘 설교를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두 렙돈을 헌금한 여인의 이야기 여기에는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한 가지 나옵니다. 홀로 된 여인과 두 렙돈의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다 아실 것입니다. 홀로 된 여인이 자기 전 재산인 두 렙돈을 성전 헌금함에 넣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본문으로 어떤 설교를 들어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보통 이 본문은 헌금 설교로 이용되는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헌금은 … [Read more...] about 왜 예수님은 성전을 저주하셨을까?
종교의 암흑기, 중세와 지금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다. 종교심이 충만했던 시기이다. 그러나 중세는 암흑기다. 한국교회는 암흑기가 아니다. 종교심은 여전히 충만하다. 그러나 암흑기다. 돌파구는 없는가? 1.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다. 중세는 거의 완벽한 종교세계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교회가 책임지는 성례전 시스템은 중세인들의 삶의 기초가 어디에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세인들의 종교적 열정과 열심은 대단했다. 예를 들어, 중세 초기 기독교는 무엇보다 수도원 중심이어서 경건의 삶과 예배에 대한 … [Read more...] about 종교의 암흑기, 중세와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