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심리학] 1. DOOM이라는 이름의 ‘재앙’, 그리고 그 뒷이야기
[게임과 심리학] 2. “봤으니까 때리겠지” 게임이 폭력을 유발한다는 주장의 이론적 근거
[게임과 심리학] 3. 인과성의 무거움 – 게임과 폭력 연구의 역사
[게임과 심리학] 4. 게임이 우리에게 미치는 이로운 영향들 에서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게임이 우리에게 끼치는 해로운 또는 이로운 영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1. 게임이 우리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단정적으로 말할 단계가 아니다. 연구의 역사도 짧을뿐더러,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의 일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잘 통제된 실험 연구도 부족하고, 기존 연구들은 방법론적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기존 연구들에 반박하는 연구들도 역사가 짧기는 마찬가지이다. 게임이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해로운지의 문제에 대해 심리학자들이 자신 있게 답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아직 게임이 공격적인 행동을 ‘유발’하는지는 확실히 말하기 힘들 정도로 논란이 심하다는 것이다.
2. 생각보다 게임이 긍정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의료 및 재활 분야에서 게임이 활용될 수 있는 것 같다. 이 분야 또한 더 많은 실증적 연구를 필요로 하지만, 적어도 예비적인 연구 결과들은 어느 정도 확보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 분야의 연구가 기대된다고 할 수 있는 이유이다. 특히 게임은 전통적인 치료 방식들보다 어떤 측면에서는 더 효율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전이(transfer)와 관련된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3. 어떤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릴 수 있다. 이는 우리가 특정 전문가의 입장을 근거로 어떤 문제에 대해 단정적인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충분한 연구가 축적되고, 이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어느 정도 합의된 이후에야 그것을 충분히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과학의 본성과도 부합하는 진술이다: 결국 과학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재현(replication)이다. 충분히 재현되지 않은 연구를 맹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이다.
하지만 필자는 게임이 우리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아직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앞선 글들에서 게임을 옹호하는 듯한 자료를 많이 인용했지만, 사실 그것은 지금까지 게임에게 지워졌던 지나친 불명예를 조금이나마 벗겨 주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을 따름이다. 또 필자의 글들을 통해 독자들이 게임에 대한 편견을 조금이나마 벗어 버리고, 경험적 연구들이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아직은 조금 유보적인 태도를 취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따름이다. 이런 필자의 목적이, 지금까지의 연재를 통해 성취되었다면, 필자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쁠 따름이다.
또한 필자는 지금까지의 연재를 통해 ‘경험적 증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이달 초, 한 19세 청소년에 의한 존속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 이 사건을 보도함에 있어서도 언론들은 매우 선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피의자가 평소에 소위 ‘폭력적인 게임’을 즐겼음을 언급하는 것 또한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필자는 감히 독자들이 이러한 보도들을 접함에 있어서 좀 더 경험적 증거를 요구하는 태도를 가질 것을 권하고 싶다. 사실 미디어들이 이러한 사건을 보도함에 있어서 ‘폭력적 게임’을 언급하는 목적이란 대체 무엇일까? 과연 그러한 보도들이 경험적 증거에 기반에 근거를 둔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매우 그럴듯해 보이는 이러한 태도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미디어를 능동적이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미디어 소비자가 되는 첫걸음일 것이다.
끝으로 ‘인과’ 를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연재를 마치려 한다. 어떤 것이 다른 것을 ‘유발’ 한다고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중대하고도 복잡미묘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화학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해 보자. 그곳에 산소(O2)가 있었다는 것은 화재가 발생하기 위한 절대적인 필요조건이지만, 우리는 산소가 화재의 원인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대체 무엇이 ‘원인’ 이고, 무엇이 ‘결과’ 인가? 사실 이 문제-사람들이 인과성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조차도 많은 심리학자들의 탐구 주제가 될 정도로 복잡미묘한 문제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잘 통제된 실험 결과가 없는 상태에서 ‘A가 B를 유발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잘 알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의 옷차림이 성범죄의 ‘원인’으로 지적받는다. 하지만 그러한 옷차림이 정말로 성범죄를 ‘유발’ 하였는가? 아마 많은 논란이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러한 사안에 대해 인과관계가 있다고 말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신중해야만 할 것이며, 섣불리 이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에 대해서 경계해야 할 것임에 틀림없다. 인과성은 실로 무거운 것이다.
게임과 심리학이라는, 어떻게 보면 가깝고 어떻게 보면 먼 주제를 가지고 다섯 편의 글을 엮었다. 부디 지난 연재가 독자 여러분들께 심리학이란 어떤 학문인지, 그리고 지금까지 게임에 대해 논의된 내용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안내자 역할을 충실히 했기를 바란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필자가 아직 미흡했던 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