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심리학] 1. DOOM이라는 이름의 ‘재앙’, 그리고 그 뒷이야기 / [게임과 심리학] 2. “봤으니까 때리겠지” 게임이 폭력을 유발한다는 주장의 이론적 근거에서 이어집니다.
게임 책임론의 패배
1편에서 이미 언급했듯, 게임이 공격성을 유발한다는 주장이 대두한 이래 몇몇 게임들이 법정 싸움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분명했다. 게임 비판론자들은 명백히 ‘패배했다’.
2005년에 있었던 [ESA, VSDA, and IRMA 대 Blagojevich] 케이스에서도, 1편에서 언급했던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서도 이들은 패배했다. 왜 이들은 법정 공방에서 승리할 수 없었는가?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이 제시한 ‘증거’가 게임과 공격성 사이의 인과적 고리를 결정적으로 입증하기에는 미흡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폭력적 게임이 공격 행동을 유발한다’ 는 주장의 근거로 삼기 위해 제출한 증거(연구)들은 법원에 의해 ‘인과성을 결정적으로 입증하기에 불충분하다’ 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DOOM을 비롯한 FPS 게임들의 명예는 사법부에 의해 마침내 회복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비전문가 집단인 사법부가 감히 이들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박할 수 있었을까? 사실 이 과정에는 Anderson 등의 주장에 비판적이었던 다른 심리학자들이 개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05년 케이스의 판결문은 폭력적 게임 비판론자들의 주장을 법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 다른 심리학자들(Dr. Goldstein, Dr. Williams)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심리학자들은 폭력적 게임 비판론자들이 증거로 제출한 연구들을 비판함으로써 사법부가 그 연구들을 불신하게 된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은 그 연구들이 다른 동료 연구자들에 의해 충분히 검토(peer-review)되지 않았으며, 잘못된 연구방법론을 사용하였고, 나아가 그들의 연구와 배치되는 결론에 도달한 다른 연구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사법부의 최종 의사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게임이 공격성을 ‘유발’하는지는 심리학자들 사이에 합의된 견해가 아직 없다. 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찬반양론으로 갈려 아직도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글에서는 최근의 관련 연구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고, 무엇이 쟁점이 되는지, 그리고 최근의 동향은 어떠한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바야흐로 때는 게임 수난시대
1편에서 잠시 언급했던 1999년 컬럼비아 고등학교 총기 난사사건 이후 폭력적 게임에 대한 경각심은 날로 높아져만 갔다. 비슷한 시기에 먼저 출시되어 인기를 끌고 있던 DOOM이 이와 관련하여 가장 만만한 ‘표적’이 되었다. 범인 중 한 사람이 DOOM에 깊이 빠져 있었고, 그가 총기 난사 사건 현장을 묘사한 스테이지를 자기 손으로 만들기까지 했으니, DOOM이 쉽게 표적이 되었던 것도 당연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게임이 공격 행동을 ‘유발’한다는 견해의 심리학 연구들이 잇달아 발표되었다. 이 연구들은 청소년들이 폭력적 게임을 통해 공격 행동을 학습하고, 실제로 행하며, 폭력에 대해 둔감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종류의 연구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Anderson & Dill(2000)의 것이었다. 이 연구는 2편에서 다루었던 Bandura의 사회인지이론(social cognitive theory)의 연장 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지만, 공격 행동을 설명함에 있어서는 좀 더 복잡한 모형을 제안한다. 이 모형(GAAM: General Affection Aggressive Model)을 요약하자면, 어떤 사람의 개인적/상황적 요인들이 인지, 정서, 각성 상태에 영향을 주고, 이들은 다시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주며, 이 평가는 다시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은 연구자들이 제시한 모델을 도식화해놓은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모형에 입각하여 게임이 공격 행동을 유발한다는 주장을 검증하였다.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상관연구(변인들 간에 정적 혹은 부적 관계가 있는지만 보는 방식의 연구)였고, 다른 하나는 실험연구(연구자가 원하는 변수를 의도적으로 조작하여 그 효과를 관찰하는 연구)였다. 두 연구는 모두 연구자들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상관연구에서는 폭력적 게임에 장기간에 걸쳐 노출된 청소년들이 폭력적/비폭력적 비행을 더 많이 저질렀다는 결과가 나왔고, 실험연구에서는 폭력적 게임을 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타인에 대한 공격 행동을 더 많이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토대로 연구자들은 폭력적 게임이 공격 행동을 ‘유발’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명백히 인과적인 것으로, 이들 연구자들은 이후 게임이 폭력을 ‘유발’한다고 단언하면서 게임 반대 운동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 외에도 게임이 폭력을 유발한다는 주장을 한 연구들은 많지만, 중요한 한 가지 연구만 더 언급하고 넘어가려 한다. 단, 이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한 가지 소개할 것이 있다.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통계적 기법 중 ‘메타분석’(meta-analysis)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기법은 거칠게 말하여 한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곳에서 행해진 연구들을 종합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기법이다. 예를 들어 게임과 폭력성 연구의 경우, 이 둘 사이에 인과적 관계가 있는지 알아본 많은 연구들이 있는데, 메타분석을 이용하면 이러한 연구들의 성과를 종합하여 결론을 내릴 수 있다. Anderson & Bushman(2001)은 이 기법을 사용하여 게임과 폭력성에 관련된 많은 연구들을 종합하여, 게임이 공격 행동의 원인이 된다는 증거가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와 같이 21세기 초반의 심리학 연구들은 대체로 폭력적 게임이 공격 행동을 인과적으로 ‘유발’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주장은 게임 비판론자들의 활동에 이론적 근거가 되어 주었다.
진지한 궁서체로 따져 묻기: 정말 그럴까?
심리학자들이 누군가? 심리학자들은 과학자들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따져 묻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과학자들은 인과적 주장을 함에 있어서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며, 웬만한 증거 없이는 어떤 두 현상 사이에 ‘인과적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매우 꺼린다. 이러한 점에서 Anderson 등이 취한 태도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게임과 폭력성 사이에 인과성이 있다고 명백히 주장하였다. 당연히 이러한 태도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심리학자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Anderson 등의 연구를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실험 절차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실험 연구 단계에서 연구자들이 한 것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연구자들은 실험 참가자들을 집단별로 나누어 폭력적 게임(울펜슈타인 3D) 또는 비폭력적 게임(테트리스)을 시킨 후, 자리를 옮겨 가상의 상대와 어떤 게임을 하게 하였다. 이 게임에서는 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불쾌감을 일으키는 ‘백색 소음’을 들려줌으로써 괴롭힐 수 있었는데, 소음의 지속 시간과 강도는 실험 참가자가 의도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만약 참가자가 가상의 ‘상대방’에게 더 많은 고통을 주고 싶다면, 상대방에게 ‘강한’ 백색 소음을 일으키는 버튼을, ‘오래’ 누르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상의 상대’는 사실 존재하지 않았으며, 승부는 사전에 미리 조작되어 있었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이 게임을 하게 한 후, 참가자들이 가상의 상대에게 가한 소음의 강도와, 소음을 일으키는 버튼을 누른 시간을 측정함으로써 공격성을 측정하였다. 그 결과, 폭력적 게임을 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가상의 ‘상대’에게 더 많은 고통을 주기 위해 더 시끄러운 소리를 들려주었고, 더 오래 버튼을 눌렀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그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였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은 여기서 사용된 ‘공격성’의 측정 방식에 대해 동의하는가?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공격할 때 ‘백색 소음’을 사용하는가? 아마 그렇지 않으리라로 생각한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과연 이 사람들이 연구실 밖에 나가서도 이렇게 증가한 공격성을 행동으로 표출하고 다닐 것인가?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외적 타당도’(external validity)의 문제라 부른다. 외적 타당도란 쉽게 말해 실험실이라는 매우 통제된 환경에서 얻어진 결론이 실험실 밖으로도 일반화될 수 있는지를 묻는 개념이다. 위 연구는 외적 타당도가 높을 것인가? 다시 말해 실험실에서 공격 행동을 많이 한 사람들이 실험실 밖에 나가서도 그러한 행동을 계속 할 것인가? 상당히 의문스러워진다. 실제로 많은 연구자들이 이 연구의 외적 타당성에 대해 지적하였는데, 이들은 이 연구에서 측정된 공격성이 실제 상황에서의 공격행동을 잘 예측할 수 있을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앞에서 언급된 메타분석 연구에 대한 비판도 2007년부터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Anderson 류의 게임 비판 연구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심리학자인 Christopher J. Ferguson은 2007년에 이들의 연구를 비판하는 논문을 썼다. 그는 이 논문을 통해 Anderson과 그의 동료들이 행한 메타분석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그는 ‘출간 편향(publication bias)’의 문제와, 그로 인한 효과 크기 과장에 대해 지적하였다.
잠시 이에 대해 부연하여 설명하자면, ‘출간 편향(publication bias)’이란 학술지에 어떤 효과가 ‘있다’고 보고하는 논문들만 주로 실리고, 효과가 ‘없음’을 발견한 연구는 거의 실리지 않는 현상을 의미한다. 즉 게임과 폭력성 연구의 경우에도 폭력성에 영향이 ‘있다’고 보고하는 논문들만 주로 실리고, 그렇지 ‘않다’고 보고하는 논문은 그럴 기회를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출판된 연구들만을 대상으로 한 메타분석은 게임이 폭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린 연구들만을 고려함으로써, 결국 게임이 공격성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Ferguson은 이러한 bias를 고려하여 다시 메타분석을 하였는데, 그 결과는 Anderson과 사뭇 달랐다. 출판되지 않은 연구들까지 고려한다면, 게임이 폭력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하였으며 통계적으로 유의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Ferguson에 따르면 게임이 주는 이득의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에 대해서는 게임의 이득에 대해 설명할 4편에서 이어서 설명하기로 한다.
이 외에도 Sherry(2007) 또한 관련 연구를 종합하여 재분석한 후, Anderson 등의 주장이 근거가 미약함을 밝혔다. 그는 결국 논문에서 “왜 몇몇 연구자들은 반박하는 증거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비디오 게임이 위험하다고 계속 주장하는가” 라고 언급하면서, 게임 비판론자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이같이 21세기 극 초반에 이루어진 게임 연구들이 발표된 이래로 이 연구들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져 갔는데, 이들은 과연 선행연구가 ‘인과성’을 주장할 수 있을 만큼 강한지에 대해 의문스러워했다. 이러한 비판의 움직임은 2010년을 전후하여 발표된 연구들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게임은 해로운 게임인가?’: 최근의 연구동향
법원에서 있었던 잇따른 패배 이후, 심리학자들은 선행연구들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품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심리학자들로서도 법정에서까지 그 결론의 정당성이 부인된 연구를 계속 끌어안고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APA로서도 역사상 손꼽힐만한 망신이었을 것이다…) 최근에 수행된 게임과 폭력성에 관한 몇몇 연구들은 Anderson 등의 선행연구들을 비판하였으며, 게임이 공격 행동을 유발한다는 주장에 대한 회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앞에서 언급되었던 Ferguson은 2010년에 출간된 한 논문에서 게임이 공격 행동을 유발한다는 주장에 대해 폭넓게 검토하였다. 그에 따르면, 폭력적 게임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이후 살인율은 오히려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는데, 이는 폭력적 게임이 공격 행동을 유발한다는 주장이 경험적으로 지지받지 못함을 암시한다. 아래 도표를 보면 자세한 추세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는 특히 이 논문에서 폭력적 게임에 대한 비난 여론이 어떻게 확산되는지에 대해 논의했는데, 그에 따르면 도덕적 공황(Moral Panic)이라는 현상이 이에 기여한다. 이 현상의 핵심에는 ‘공포’가 있다. 일부 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을 사회적으로 퍼뜨리기 위해 ‘공포’라는 감정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를, 이 그림은 잘 묘사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 게임이 폭력을 유발한다는 주장은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유포된, 일종의 수사와 같다는 것이다. 불필요하고 장황한 설명을 피하기 위해 이 모형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생략하기로 한다.
게임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단지 그것이 해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오히려 게임이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는 ‘인지’이다. 게임, 특히 FPS 게임은 시지각적 능력(visuospatial capacity)을 향상시켜 준다는 보고들이 많이 축적되어 있으며, 주의(attention), 기억(memory)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이 외에도, 놀랍게도 친사회적 행동(prosocial behavior) 또한 게임이 발달시켜 줄 수 있는 능력인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임상에서도 게임의 활용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는데, 특히 지적 결핍 증세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재활 치료에 게임이 활용될 수 있을 가능성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특히 게임이 이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게임을 통해 향상된 능력이 다른 유사한 작업으로 쉽게 전이(transfer)된다는 보고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지적 재활치료에 수반되는 문제들 중 하나는 환자들이 재활훈련을 위해 수행하는 특정한 과제 하나만 잘하게 되고 나머지 유사한 과제는 잘 못 한다는 것인데, 게임을 통해 인지적 재활훈련을 하게 되면 게임 이외의 유사한 다른 작업의 수행 능력도 향상된다는 것이다. 임상에서 전이는 매우 어렵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게임의 이러한 효과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이 게임이 심리적으로 해롭지 않고 오히려 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은 최근의 연구들을 통해 활발히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게임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최근의 연구 성과들을 중심으로 조망해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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