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심리학] 1. DOOM이라는 이름의 ‘재앙’, 그리고 그 뒷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미국에서 최악의 총기난사 사례들 중 하나로 손꼽히는 사건의 용의자가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32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23명의 부상자를 낳은 역대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의 멀티킬을 기록한 용의자는 다름아닌 한국인 “조승희” 였다. 당시 인터넷 매체에서는 조승희의 사진을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아래 사진만큼은 필자의 기억에 강렬하게 꽃혔다. 닥쳐올 엄청난 대량 살상을 암시라도 하듯, 조승희는 양 손에 피스톨을 쥐고 결연한 표정을 지은 채 사진을 찍었다.
1편에서도 잠시 이야기했었지만, 이런 사고가 나면 으레 ’왜 범인이 그러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에 대해 소위 ‘분석’이란 것들이 나오게 마련인데, 그 중에는 역시나 폭력적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단지 그것이 컬럼비아 고등학교 학생들의 경우에는 DOOM이었고, 조승희의 경우에는 카운터-스트라이크(Counter-strike) 였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다.
이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한 격렬한 게임 반대론자 Jack Thompson은 조승희가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통해 살인 연습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이후에 법정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조승희는 고교 시절까지 카스를 즐겨 했으나, 대학교에 와서 계속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한동안 카운터 스트라이크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었으며, 2008년에는 브라질 법정에서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판매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하였다.
게임 폭력유발론자들의 발상 “Seeing is Beating!”
여기서 주목할 것은 Jack Thompson이라는 이름이다. 이 사람은 미국에서 대표적인 게임 반대론자로 손꼽히는 사람으로, 각종 게임 관련 분쟁에 끼어드는 인물이다. 다른 한 명으로는 David Grossman이 있는데, 이들은 스스로를 폭력적 게임 전문가로 여기고 활동하고 있다. 비록 과학적으로 잘 검증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끊임없이 ‘폭력적 게임은 폭력적 행동을 유발한다’ 라는 주장을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Grossman의 경우에는 게임과 폭력에 대한 수 권의 책을 냈고, 스스로를 ‘killology’ 전문가라 부르고 있다. 당연히 이는 다분히 폭력적 게임이 살인과 관련이 있음을 가정하는 명명법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매우 활동적으로 반 게임 운동을 벌여나가고 있는데, 최근까지도 그들의 활동은 매우 왕성한 듯하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이론적 배경은 대체 무엇인가? 이번 글과 다음 글에 걸쳐서는 그 근원과 흐름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알아보도록 하겠다. 이번 글에서 다룰 주제는 어떻게 ‘폭력적인 것을 보면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라는 생각이 애초에 어떻게 생겨났는지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러한 생각은 매우 오래 전부터 있어 왔으며, 현대 심리학 이론에서도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얼마나 많은 왜곡이 그 과정에서 있어왔는지도 함께 자연히 밝혀지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게임과 폭력 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사실 좀 더 일반적인 수준의 논의, 즉 미디어와 폭력 간의 관계에 그 출발점을 두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고대 그리스 시기에 이미 그 원시적인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대체 그리스 시기에 안 나온 게 뭐냐… 철학자 플라톤은 기록상 최초로 아이들이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희극과 시가 청년들에게 해로울 수 있으며, 따라서 금지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심지어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는 알파벳 문자 그 자체가 해로울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이후 로마 시대의 검투 경기에 대한 경각심을 표현하였던 세네카, 어거스틴 등의 철학자들이 있었으며, 이후 등장한 로마 교회는 성경의 독일어 번역 및 보급을 우려하였다. 이후 18~19세기 경에는 ‘돈 키호테’ 등의 통속적 소설의 해로움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와 같이 미디어가 사람들, 특히 청년들에게 해롭다는 주장은 시대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면서 계속되어 왔다.
현대적 영상 매체의 해악에 대한 사회과학적 연구들은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30년대에는 이미 영화 보기가 직무 태만(delinquency)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가 있었다. 이후 40년대부터 미국의 집집마다 TV가 널리 보급되면서 TV와 폭력성 사이의 관계가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관심은 1960년대 후반에 강력범죄율이 갑자기 치솟으면서(아래 그래프 참조) 더욱 치솟았다. 사실 TV의 보급과 강력범죄율 상승 간에 약 20년 정도의 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율 상승의 책임은 TV로 전가되었다. 아래 도표를 보면 사실 TV의 보급 이후로도 범죄율이 ‘꾸준히’ 증가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러한 사실은 미디어 비판자들에 의해 흔히 무시되었다.
동물과 인간을 통한 관찰학습, 정말 보면 그대로 행하는가?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미디어와 폭력성 연구에 큰 영향을 끼쳤던 심리학 이론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Albert Bandura 라는 심리학자가 만든 사회인지이론(Social cognitive theory)이 바로 그것이다. 이 이론은 ‘관찰학습’이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등장하였는데, 관찰학습이란 말 그대로 어떤 사람 또는 동물이, 다른 사람이나 동물(모델)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을 통해 학습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20세기 초에만 해도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은 (적어도 동물들에 있어서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후 다수의 더 정밀한 실험들을 통해 동물들도 관찰학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이후 관찰학습 현상이 다양한 동물 종에서 발견된다는 것이 잘 통제된 실험 연구들을 통해 밝혀졌다.
한 연구에서는 아래 그림과 같이 고양이가 관찰학습을 할 수 있음을 보였다. 먼저 ‘학생’ 고양이들을 안쪽 케이지에 가두었는데, 그 ‘학생’들은 철창 너머로 ‘모델’ 고양이를 볼 수 있었다. 이윽고 연구자들은 ‘모델’ 고양이가 어떤 문제 상황을 능숙하게 해결하는 것을 보여 주었다. 물론 ‘모델’들은 실험을 하기 전에 미리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배운 상태였다.
여기서 고양이들이 해결해야 했던 ‘문제’란 아래 그림에 있는 것과 같은 원판을 돌려 먹이를 자기 앞에 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실험 결과, ‘학생’ 고양이들은 ‘모델’ 고양이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단지 관찰하기만 했는데도, 나중에 똑같은 문제를 해결하도록 시키면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다. 이는 고양이가 관찰학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후 관찰학습의 연구 대상은 인간으로 확장되어 갔다. 특히 Bandura는 아동들에게서의 관찰학습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그는 아동들에게서 폭력적 행동이 관찰학습에 의해 습득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1963년에 Bandura와 그의 동료들이 했던 어떤 매우 유명한 실험에서는, 어른 ‘모델’이 아이의 앞에서 ‘bo-bo doll’ 이라 불리는 인형을 올라타고 마구 때리는 등 폭력적 행위를 하는 것을 보여주거나, 또는 똑같은 내용을 담은 녹화된 영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거나, 마지막으로 비슷한 행동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런 후, 아이들이 그러한 행동을 얼마나 따라 하거나, 또는 다른 형태의 폭력적 행위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결과는 폭력적 행동을 관찰한(소스의 종류에 상관없이)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폭력적 행동을 더 많이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외에 몇몇 연구들이 폭력성이 관찰학습에 의해 습득될 수 있음을 보였다.
Bandura의 사회인지이론에 따르면, 아이들은 이러한 폭력행동을 네 단계에 거쳐서 습득한다: ‘주의과정-파지과정-운동재현과정-동기과정’. 각 단계에 대한 설명은 지면상 생략하고(…), Bandura가 결국 미디어와 폭력 간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만 간략히 살펴보자. 매우 당연하게도 Bandura는 미디어가 폭력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1973년에 “TV 덕분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안방에 편안히 앉아서도 흉악한 행동의 전모를 학습할 기회를, 무제한적으로 갖게 되었다’ 라고 썼는데, 이는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20세기 중반에는 미디어가 폭력을 유발할 수 있다는 심리학 연구들이 발표되었는데, 이러한 부정적인 시선은 20세기 후반으로부터 21세기 벽두에 걸쳐 잇달아 발표된 일련의 연구들에서도 이어졌다. 앞서 1편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시기는 DOOM을 비롯한 많은 폭력적 게임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시기였으므로, 이 시기에 발표된 연구들이 폭력적 게임의 문제점들을 주로 다룬 것들이라는 사실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특히 이 연구들은 ‘미디어와 폭력’ 이라는 일반적인 주제로부터 좀 더 좁혀서, ‘게임과 폭력’ 이라는 주제를 직접 다루기 시작하였으며, 더 세련된 연구방법론을 사용하여 그 동안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하였다는 의의를 갖는다. 이 내용부터는 다음 글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box title=”참고문헌”‘]
Albert Bandura, Dorothea Ross, & Sheila A. Ross(1963), Imitation of Film-mediated Aggressive Models,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Vol. 66, No. 1, 3-11.
Christopher J. Ferguson(2010), Blazing Angels or Resident Evil? Can Violent Video Games Be a Force for Good? Review of General Psychology, Vol.14, No.2, 68-81.
MARVIN J. HERBERT AND CHARLES M. HARSH(1944), OBSERVATIONAL LEARNING BY CATS, Journal of Comparative Psychology, Vol 37(2), 81-95.
Paul Chance 지음, 학습과 행동(6판), 김문수/박소현 옮김, CENGAGE Learning, 2011, 345쪽, 그림9-2.
http://en.wikipedia.org/wiki/Seung-Hui_Cho
http://en.wikipedia.org/wiki/Virginia_Tech_massacre[/b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