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매일 영어책을 낭독하면 생기는 일] 시리즈입니다.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쫄지 않는다: 원서 리딩에 자신감이 생기다
한글로 된 책은 많은 힘을 들이지 않아도 읽을 수 있다. 단숨에 수십 페이지를 휙휙 넘겨가며 읽을 수 있다. 엎드려서 읽을 수도 있고, 소파에 반쯤 누워서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영어 원서 리딩을 할 때는 나도 모르게 경직되고는 한다. ‘영어=공부, 시험’이라는 생각 때문에 쉬는 시간까지 일부러 찾아서 읽고 싶지 않아하기도 했다. 빼곡하게 적힌 단어들, 군데군데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는 모르는 단어들, 좋지 않은 책 재질까지… 대체 정을 붙이려고 해도 시작부터 의욕을 떨어뜨려 버린다.
일단 자신감이 없는 게 원서를 읽는 데 큰 장애였다. 1~2페이지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시험공부 하듯이 단어 찾고 정리하다가 지쳐 버렸다. 몇 번 반복하다 보면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포기해 버린다. ‘나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해보지만 몇 달, 아니 몇 년이 가도 실상 한 권도 제대로 완독하지 못하게 됐고, 어떠한 작은 성취의 기쁨도 느끼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영풍문고나 교보문고와 같은 대형서점에 가는 것이 하나의 낙이였다. ‘우와! 이번에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네!’ ‘이 책 제목 정말 잘 지었네’ ‘이 작가의 새 책이 나왔네?’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미 읽은 책은 옛 친구를 만난 것 같이 반가웠고, 새로운 책을 발견하게 되면 읽은 것마냥 신이 났다. 계산대에 여러 권 잔뜩 가져와 구매할 때면, 마치 보물이라도 건진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대형서점인 반즈 앤 노블에 갈 때면, 이러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영어 원서로 읽은 책도 거의 없고 친숙하지도 않다 보니, 책 제목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베스트셀러에 전시된 책들도 잘 알지 못하니 요란한 광고 전단지처럼 의미 없는 이미지로 느껴졌다. 여러 번 방문하면 친숙해지려나 했지만 책과 내가 공유했던 경험과 추억이 없으니, 서점에 가도 어떠한 감흥도 감동도 느끼지 못했다.
결국 원서를 읽지 않으면 서점이란 공간도 내게는 공허함을 줄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초라한 나를 재확인시켜주는 것 같아 더욱 주눅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원서 낭독 북클럽을 시작하면서, 원서를 한 권씩 완독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한 권 한 권 완독할수록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벌써 30권이 넘는 책을 읽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가장 큰 소득은 쫄지 않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예전엔 두껍고 깨알 문자 가득한 원서를 보면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동안 『사피엔스(Sapiens) 』나 『호모 데우스(Homo Deus)』처럼 두꺼운 책도 완독했다.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막상 읽어보면 오히려 두꺼운 책들이 친절하고 쉽게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오히려 읽기 수월했다.
온라인 원서 북클럽 덕분에 이제 영어 원서를 보면, 일단 맞닥뜨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아무리 작고 빽빽하게 가득 찬 영어 페이지도 이제 더 이상 쫄지 않는다!
리딩이 빨라졌다: 한눈에 들어오는 문장 폭이 넓어지다
매일 1시간씩 원서를 읽어서 달라진 점은 한눈에 들어오는 문장 폭이 커져, 리딩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어떤 분은 TV 뉴스 하단에 휘리릭 지나가던 헤드라인 자막이 한눈에 들어오는 놀라운 경험을 하셨다고 공유 주셨다. 정말 그렇다.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는 헤드라인은 대중을 타깃으로 읽히기 위해 쓰인 것이다. 그래서 어려운 문법이나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CNN 뉴스 하단에 커다랗게 이런 헤드라인 자막이 떴다.
Trump: We consider battle against coronavirus a ‘war’
예전 같으면 아예 읽을 생각도 안 하거나, ‘battle’ 단어까지 1/3 정도 읽었을 때쯤이면 자막이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자막 노출 시간은 그렇게 짧지 않다. 평균적으로 대중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고려해서 노출 시간을 정한다. 그 시간 내 자막이 눈에 안 들어오는 것은 내용이 익숙치 않거나, 문장이 눈에 들어오는 속도가 늦기 때문이다.
영어 원서를 낭독할 때 무작정 읽지 않는다. 의미 단위로 문장 호흡을 가져가게 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문장을 끊어 읽는 감이 늘게 된다. 주어 동사가 나온 후 수식어나 목적어가 등장하는 어순에 점점 익숙해지만, 문장을 읽으면서 해석하는 게 더 편해진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눈에 들어온 구문들의 양이 많아진다. 예전에는 바로 뒤에 나오는 단어들에 급급해 총총걸음으로 해석했다면, 이제는 큼직한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기분이다.
회사에서 영문으로 오는 이메일을 읽는 속도도 빨라져 업무 효율도 높아졌다. 예전 같으면 짜증부터 났을 장황하고 긴 영문 메일도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게 됐다. 첨부파일로 빼곡하게 적힌 워드 문서를 읽는 부담도 덜해졌다. 자연스럽게 잘 쓴 메일과 문서를 보는 눈도 생기게 됐다. 이렇게 써야 상대방이 잘 읽히겠구나, 하는 감도 생겼다.
멤버들과 두꺼운 원서 책도 다 읽었는데, 그까짓 뉴스 헤드라인이나 이메일쯤이야! 원서 낭독을 통한 경험으로 확실히 알고 있다. 자신감을 갖고 성큼성큼 읽어나가면, 끝까지 완독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이러다가 전자기기 매뉴얼도 읽을 기세다.
원문: 켈리랜드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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