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매일 영어책을 낭독하면 생기는 일] 시리즈입니다.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낭독을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
조용히 혼자 묵독으로 책을 읽으면 빨리 읽을 수 있다.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출 필요도 없이, 내 속도에 맞춰 눈으로 읽는 게 속도가 빠른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는 꾸준히 읽기가 쉽지 않고, 혼자 읽다 보니 집중해서 읽지 않고 페이지를 대충 넘기는 경우도 많았다. 어떤 날은 단숨에 스무 장도 넘게 읽지만, 어떤 날은 한 장도 읽지 않는다. 또한, 돌이켜보면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책만 편식해서 읽는 경향도 있었다. 자연스레, 불편한 주제나 낯설고 어려운 책은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북클럽을 통해 사람들과 책을 같이 읽으면 많은 점을 보완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소리 내서 책을 읽는다는 것이 다소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꽤 재밌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전화할 때를 생각해보자. 친구가 말하고 내가 답하고,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1시간이 5분처럼 흐른다. 원서 낭독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 차례가 돼서 낭독할 때는 집중력도 올라가고, 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좀 더 정성스럽게 읽게 된다. 원래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제일 많은 법이다. 최소한 내가 읽은 부분은 낭독 스터디를 마친 후에도 제일 기억에 남게 된다.
모르는 단어를 그냥 낭독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번도 입으로 직접 말해보지 않은 단어를, 내가 나중에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냥 눈으로 봤을 때 아는 단어라고 해도, 막상 소리 내서 발음해보면 머뭇거려질 때가 있다. 대부분의 영어교육이 시험 준비를 목표로 진행되다 보니 소리 내서 말하는 것에는 낯설고 쑥스럽다. 완벽한 발음이 아니면, 굳이 말하고 싶지 않고, 틀린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오렌지]면 어떻고, [오륀지], [아륀지]면 어떠랴. 처음에 Orange 란 단어가 나왔을 때, [오렌지]라고 발음하더라도, 다음번에 나올 때 원어민처럼 흉내 내서 발음해보자. 북클럽 다른 멤버들이 멋지게 읽는 것도 따라 해 보고, 영어사전에서 발음 듣기도 들어보자. 그러면서 조금씩 입에 척 붙는 단어가 되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그 첫 시작은 옹알이가 되더라도, 일단 소리 내서 발음해보는 것이다.
왜 우리는 책을 낭독하는 것일까? 소리를 내서 읽는 것은 내가 확실히 그 문장을 이해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tvN에서 방영된 <책의 운명>이란 다큐에서는 ‘낭독의 중요성’에 대해 다룬다. 독일은 연간 독서율이 81.1%로 세계 최고다. 구텐베르크가 종이를 발견한 나라, 최고의 문학 지성들이 모여있는 곳인 이곳에서도 낭독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인들에게 책을 ‘듣는’ 것은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이고 중요한 문화생활로 자리 잡혀있다고 한다. 독일이 낭독을 강조하는 이유에 대한 이어령 님의 인터뷰가 인상 깊다.
북유럽에서는 지금도 책을 소리 내어 읽도록 처음부터 낭독을 시키는 겁니다. 의미를 모르면 읽는 소리가 달라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로들 읽고 들어 보면 비로소 두 사람이 이해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독일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독해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내가 읽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어떤 구문을 흐려서 발음하는지, 어떤 단어를 눈으로만 아는지 확인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람이 읽는 것을 들음으로써, 내가 아는 것과 비교할 수도 있다.
내가 잘 아는 문장은 누가 읽어도 편하게 들린다. 하지만 내가 잘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은 원어민이 읽어줘도 이해가 안 된다. 한 번 읽었을 때 이해가 안 됐던 구문은 따로 표시해두고, 낭독 후 다시 전체 문맥 속에서 이해해 보자. 그러면 수수께끼 풀리듯 이해가 되기도 한다. 여기서 낭독은 내가 이해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좋은 가늠자가 된다.
낭독과 묵독 중 어느 것이 좋은 것인지는 본인이 선택하면 된다. “배우는 단계에서는 낭독이, 그 단계를 넘어설 때는 묵독이 좀 더 효과적”이라는 이어령 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낭독 북클럽을 운영할까? 그 방법도 무척 간단하다.
원서 낭독 북클럽, 무작정 따라 하기
낭독 북클럽 진행 방법은 간단하다. 크게 5단계를 따라 하면 된다.
1. 스카이프(Skype) 그룹 콜에 조인한다.
온라인 콜의 좋은 점은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잠옷 입고 반쯤 누워서 책을 읽어도 괜찮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스카이프가 단체 통화 음질이 깔끔하고 성능이 좋은 것 같다. 요즘 다른 앱도 그룹 콜 기능을 많이 지원하니 선택하기 나름이다.
요즘은 줌 (Zoom) 앱처럼 화상통화도 많이 사용하지만, 얼굴을 보고 영어를 오버해서 발음하는 것이 다소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예의를 갖춰 옷을 입어야 하는 게 번거롭기도 하다. 온전히 눈과 귀를 책 내용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니, 서로 얼굴의 쳐다볼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원서 낭독은 음성 통화로만 진행되었다.
경험상 인원수는 5~6명 정도가 적당하다. 3~4명은 조금 타이트하다. 멤버들이 결석할 수도 있으니까. 반면 인원수가 너무 많아도 혼잡스럽다. 5~6명으로 운영하면 그날그날 참석자에 따라 변동은 있지만, 1시간 동안 본인 낭독 순서는 대략 4~5번 정도 돌아오는 정도로 진행할 수 있다.
2. 리딩은 매일(월-금), 1시간 동안 진행된다.
우리 방은 저녁 10시에 진행했다.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다. 나에게는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한숨 돌릴 수 있는 꿀 타임이기도 했다.
스터디 시간은 멤버들과 정하기 나름이지만, 매일 꾸준히 할 수 있는 시간으로 정하는 게 좋다. 리딩을 습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결석을 하지 않아야 스토리의 흐름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 최소 2명만 참석해도 그날은 스킵 없이 리딩을 진행했다.
주중에만 낭독을 하고, 주말에는 쉬는 것을 권장한다. 쉬지 않고 읽어 나가면 빨리 읽을 수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정리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정리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단어장도 정리해야 하고, 주중에 결석했을 경우 캐치업할 시간도 필요하고, 다음 한 주를 달릴 충전의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말과 휴일에는 과감하게 쉬는 조치가 필요하다.
3. 미리 읽어오지 않아도 된다. 그날 출석한 멤버 순으로 소리 내서 읽는다.
이 독서 모임의 특징은 사전에 읽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같이 읽는 것이다. 미리 예습해 와도 괜찮지만, 그건 본인 자유다. 초기엔 한 단락씩 돌아가며 읽다가 나중엔 두 단락씩, 나중에는 익숙해져 한 페이지씩 읽게 됐다. 그날 참석만 한다면 어쨌든 하루 10~15페이지의 원서를 읽게 되는 셈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단체로 오래 달리기하듯이 멤버들 사이에 묻혀 달리기만 하면 된다. 리딩 순서는 그날 랜덤하게 정한다. 이게 귀찮으면 순서를 한번 정해놓고, 다음 날에는 전날 끊긴 차례부터 읽어도 좋다.
4. 모르는 단어, 발음 상관없다. 술술 읽어나가자. 목표는 완독이다!
모르는 단어에 집착하기보다는 맥락(context)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 책을 읽을 때도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고 중간에 국어사전을 찾아보지 않듯이, 리딩하는 동안 모르는 단어는 일단 그냥 넘어간다. 팔로업은 사전·사후 개인의 몫이다.
발음도 자신이 아는 선에서 자신 있게 크게 읽는다. 내가 모르는 단어는 상대방도 모른다. 어차피 얼굴도 안 보이니 오버해서 신나게 읽어보자. 마치, 무대 위에 선 배우처럼 말이다. 내 차례가 왔을 때 핀 조명이 나만 비춘다고 생각하자. 두 단락을 읽는 동안은 내가 주인공이다.
최대한 전달력을 높여서 정성스럽고 자신 있게 소리 내서 읽는다. 멤버들도 재밌고, 나 또한 몰입도가 올라간다. 온라인 스터디의 장점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내가 혼자 떠드는 동안 누군가 집중해서 들어준 적이 언제였던가. 은근 긴장되고 재밌다.
5. 복습의 시간이 돌아온다
1시간 동안 읽고 나면 뿌듯하다. 오늘 공부는 다 한 느낌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원 다녀오면, 하루 공부 다 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본인도 알 것이다. 그다음부터가 진짜 공부라는 것을.
낭독하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밑줄을 그어가면 읽는 것이 좋다. 낭독을 할 때는 빠르게 지나가게 되므로, 그냥 눈으로 보고 지나친 단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단어를 찾아보면 좀 더 의미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거절하다’는 의미도 쓰이는 단어에 따라 정중하게 거절하는 의미가 되기도 하고, 강하게 거절하는 의미가 되기도 하고, 우유부단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 미묘한 뉘앙스를 느끼려면, 영영사전을 찾는 게 큰 도움이 된다.
단어들만 따로 모아서 단어장을 만드는 것도 추천한다. 정리되어가는 단어장을 보면 참 뿌듯하다. 하지만 이것도 밀리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복습의 방법은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복습 때 들인 시간만큼, 더 깊은 이해와 공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원서 낭독 북클럽을 어디까지 활용할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원문: 켈리랜드의 브런치
함께 읽으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