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자리 있나요?”
“몇 정거장 남았나요?”
“어디까지 가세요?”
아침 9호선 지옥철에 겨우 몸을 끼워 넣고 한 마리의 구호서니우스가 되어 산소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가양역에서 탈 때는 분명 지하철 출입구 근처에서 벗어나질 못했는데, 노량진을 지나니 그나마 의자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서 손잡이라도 잡았습니다.
어, 내 앞에 외국인이 하나 앉아 있네요. 어? 자리 하나하나가 억만금을 줘도 안 바꿀 만큼 귀중한 9호선의 아침 지옥철인데, 이 외국인이 옆에 가방으로 자리를 맡아놓은 겁니다! 이런 괘씸한 인간 같으니! 태클을 걸어야겠습니다. 저 가방이 상전도 아니고, 일단 질식 직전인 내가 저기 앉아야겠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태클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 외국인은 영어를 하겠지? 그런데 “여기 자리 있나요?”는 영어로 어떻게 하지?
위의 시나리오가 얼마나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백번 양보해서 이 말을 지하철에서 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고 칩시다. 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나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은 일본인 중국인이 절대다수인데?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 지하철에서 이 말을 영어로 해야 하는 상황이 과연 올까요?
왜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 한국 지하철을 타는데 저 문장을 영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건가요? 왜 영어로 말할 줄 모르면 왕초보가 되는 건가요? 왜 ‘영어 왕초보’는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가요, 우리의 모국어는 한국어인데?
영어는 의사소통의 도구 중 하나입니다.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태국어, 제주도 방언, 이모티콘, 귀여니체, 음악, 몸짓, 손짓, 숫자, 눈빛, 기호, 표정, 그림 등이 모두 의사소통의 도구인 것처럼요. 전 세계를 놓고 퉁쳐 봤을 때 가장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문자와 음성이 둘 다 있는 언어라는 게 하나 특이한 점입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한국에서 자라나고, 한국에서 공통교육을 받고,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과 섞여서 살아갑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0년 동안 영어를 배운다고 해도 영어를 말할 기회는 일부러 만들지 않는 이상 거의 없습니다.
한마디 하기 어려운 게 당연한 겁니다. 뮤지컬의 역사 종류 배우 등등을 다 꿰찬 뮤지컬 덕후라도 연습해 보지 않은 이상 뮤지컬 공연을 할 수는 없는 것처럼요. 이론과 실전 모두가 노력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이론 쪽에 더 빠삭합니다. 그렇지만 어느샌가 영어 실전 능력이 ‘노력’의 척도가 됩니다. 우리는 이론에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건 어느샌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10년 영어공부를 해 놓고 “여기 자리 있어요?” 말 한마디 못하다니 노오오오력이 부족하군! 영어 발음이 전통 김치 코리안 발음이라니 말하기 노오오오력을 덜 했군! 외국인 앞에서 굳어서 영어 울렁증 때문에 말 한마디 못 꺼낸다니 극복하려는 노오오오력을 덜 했군! 토익 스피킹 7이 안된다고? OPIc AL이 안 나온다고? 세계화의 시대에 뒤떨어지는 노오오오력이 부족한 인간이군!
노오오오력하지 않은 당신, 영어 왕초보!
이 ‘노오오오력의 신화’는 다른 질문을 모두 덮어버립니다. 가장 먼저, 우리는 이런 상황을 한국 지하철 안에서 만날 일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두 번째로, 만약에 이런 상황을 만난다고 해도 의사소통의 도구는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 단위의 영어만이 아닙니다. 단어와 몸짓과 눈빛과 도구와 맥락을 전략적으로 섞어 의미를 전달하는 게 더 적절하고 더 고차원적이며 더 인간적인 의사소통입니다.
세 번째로, 만약 이런 상황을 만났고 외국인에게 내 뜻을 전하는 데 실패했어도 이 광고가 말하는 ‘영어 왕초보’는 절대 창피한 낙인이 아닙니다. 영어를 섞어 의사소통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었는데. 이건 마치 뮤지컬 덕후에게 뮤지컬을 시켜 놓고 못 하니까 “쟤는 왕초보군. 덕후 이름에 걸맞지 않게 노오오오력이 부족한 인간이군”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처럼요.
“여기 자리 있나요?” “몇 정거장 남았나요?” “어디까지 가세요?”를 완벽한 영어로 말할 필요 자체가 없으며, 못 한다고 해도 절대 왕초보인 게 아니며, 왕초보라고 해도 절대 부끄러워할 것이 아닙니다. 영어를 못 하는 사람들에게 망신을 주고 너는 모지리 왕초보니까 ‘노오오오력’ 해야 해, 라고 하는 건 영어교육자로서 아주 악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더스트리건 학계건 학교건 과외건 뭐건 간에요.
학생들이 왜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지, 학생들이 왜 영어 말하기를 어려워하는지, 학생들에게 영어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등 ‘왜’를 질문하고 본질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의욕이 없다면 그냥 사회와 학생과 본인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걸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원문 : Smile Kim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