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서를 읽는 새로운 방법: 직독직해의 신세계」에서 이어집니다.
‘나도 영어 원서를 완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누구나 한 번쯤 영어책 원서를 옆구리에 끼고 다닌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책의 마지막 장을 덮어 본 경험은 흔치 않을 것이다. 삽화도 없고 종이 질도 나쁜 데다 깨알 같은 알파벳에 압도돼 페이지 한 장 넘기기도 쉽지 않다. 거기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 단어에 집착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단어를 꼭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면 그새 마우스 클릭은 자연스럽게 유튜브나 페이스북, 인터넷 가십 기사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이렇게 구석에 쌓인 책이 몇 권이던가…
어린이들의 어휘력 증진을 위해 독서를 권장하듯이, 영어 어휘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영어 원서를 읽어야 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영어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고, 이런 욕구는 나만이 있는 게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영어 원서 읽기 스터디’를 만들어서 함께 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학창 시절의 두 장면이 떠올랐다.
먼저, 체력장의 오래달리기를 떠올려보자. 십여 명씩 조를 짜서 오래달리기를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운동장 한 바퀴는 어떻게든 뛰겠는데, 무려 10바퀴가 넘는 거리를 어떻게 달릴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오래달리기에서의 목표는 1등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조 그룹원이 시간 내 무사히 완주하는 것이다. 왼발! 오른발! 구호를 외치며 친구들과 무리 지어 달리기 시작한다. 설령 뒤처지더라도 그룹 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내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발맞춰 뛰다 보면, 어느새 운동장 몇 바퀴를 휙휙 돌아 목적지까지 완주해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 달리면 엄두도 안 났을 것이고, 이미 포기했을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여행할 때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차에서 내리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내리지 않고, 중간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 열차의 종착점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영어공부나 원서 읽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에겐 함께 달려줄 그룹, 서로 격려하고 응원해줄 리딩 스터디 그룹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어 수업 시간 본문 발표를 떠올려보자. 어떻게 진행해야 멤버들과 효과적으로 원서를 읽을 수 있을까? 문득 학창 시절, 영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한 명씩 지명해 본문 읽기를 시켰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개 그날 주번이 있는 줄은 100% 당첨이다.
한 명이 일어나서 본문을 낭독하고 해석하는 동안, 반 친구들은 눈으로 따라가며 함께 읽어 나간다. 한 명이 발표를 마치면, 그 뒤에 앉은 사람이 이어받아 다음 문단을 읽는다. 그렇게 읽다 보면 어느새 한 페이지를 다 읽어 한 챕터를 마치게 된다. 이해가 안 됐던 부분도 친구들의 해석을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하고,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문맥 속에서 전체적으로 파악하다 보면 절로 이해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내 번호가 언제 불릴지 모르니, 긴장해서 친구들의 발표를 들으며 수업에 집중하게 된다.
친구들과 함께 달리는 ‘그룹 오래달리기’와 ‘영어 수업 시간 발표하기’ 방식을 원서 낭독 스터디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기존 독서 모임은 주로 책을 미리 읽어오고 읽은 내용을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열정은 금세 시들고, 미리 읽어오는 사람의 숫자도 점점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러면 독서토록은 가십이나 신변잡기로 변질되어 버린다. 때문에 영어 원서를 미리 읽어오기보다는, 스터디 시간에 돌아가며 그날 분량을 릴레이로 낭독하는 방법을 택했다. 매일 1시간 동안.
그렇게 시작한 원서 낭독 북클럽이 어느덧 3년이 다 돼간다. 2018년, 9월 첫 책 『GRIT』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30권이 넘는 영어 원서 책을 낭독하고 직독직해해오고 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로 자기계발서나 인문·사회 분야 도서에 치우쳤던 편식 리딩도, 북클럽 멤버들과 함께 하며 경제·과학·예술 등 여러 장르의 책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다. 그동안의 원서 낭독을 하며 느낀 변화와 배운 점뿐 아니라,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하고자 한다.
원서 낭독 북클럽을 통해 읽은 원서 책 리스트
2018년
- 9월- GRIT (그릿: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
- 10월- Post Truth
- 11월- Sapiens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 12월- Life of Pi (파이 이야기)
- 12월-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2019년
- 1월- Homo Deus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 2월- To Kill a Mockingbird (앵무새 죽이기)
- 3월- Happiness Project (행복 프로젝트)
- 3월- 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 4월- Silent Spring (침묵의 봄)
- 5월- The Giver (기억전달자)
- 6월- Prisoners of Geography (지리의 힘: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
- 7월- Betting on Famine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8월- The Alchemist (연금술사)
- 9월- The Miraculous Journey of Edward Tulane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 10월- Where the Red Fern Grows (나의 올드 댄 나의 리틀 앤: 주인을 위해 목숨 바친 두 마리 개 이야기)
- 11월- Factfulness (팩트풀니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 12월- Hidden Figures (히든 피겨스: 여성이었고, 흑인이었고, 영웅이었다)
2020년
- 1월- Nudge (넛지 :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 2월- The Story of Art (서양 미술사)
- 3월-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4월- The Giver (기억전달자)
- 5월- Wonder (아름다운 아이)
- 6월- Holes (구멍 : 숨겨진 세계를 발견하다)
- 7월- Charlotte’s Web (샬롯의 거미줄)
- 8월- Matilda (마틸다)
- 9월-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찰리와 초콜릿 공장)
- 10월- To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 11월- The Miracle Morning (미라클 모닝)
- 11월- Make Your Bed (침대부터 정리하라)
- 12월-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2021년
- 1월- Big Little Lies (커져 버린 사소한 거짓말)
- 2월- Rich Dad Poor Dad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 3월- Sprint (스프린트 :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프로젝트 수행법 구글벤처스의 기획실행 프로세스)
- 4월- Pachinko (파친코)
- 4월- The Millionaire Fastlane (부의 추월차선)
온라인 원서 낭독 시작을 위한 준비물 3가지
먼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온라인 영어 원서 읽기 모집글을 게시했다. 앞서 말한 낭독 북클럽의 방식에 대한 소개와 함께 원서를 낭독하고픈 분들을 모집한다고 적었다. 기존의 토플 같은 영어시험 스터디는 이미 스터디 방식이나 교재가 정형화되어있고, 점수 확보라는 긴박한 목표가 있다.
원서 낭독 북클럽 모집은 달랐다. 한편으로 ‘이게 과연 될까?’ 싶은 마음도 있다 보니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집 공지를 올리고 두 시간도 채 안 돼서, 12명이 참여 의사가 있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뜻밖의 놀라운 반응에 살짝 놀랍기도 하고 너무 반가웠다.
첫날, 12명이 모두 한 그룹방에 모이니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신청자들의 거주지역과 시간대를 기준으로 미국 서부에 있는 멤버 6명을 West 1번 방으로, 미국 동부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East 1번 방으로 각 6명씩 나누었다. 나는 West 1번 방에서 활동했다. 2018년 9월, 이렇게 첫 원서 낭독 북클럽이 탄생했다.
온라인 북클럽 진행 방법은 간단하다. 메신저를 통해, 매일 1시간씩 읽는 것이다. 준비물은 3가지만 있으면 된다.
1. 스카이 (Skype) 메신저가 설치된 휴대폰
스카이프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메신저다. 앱 스토어에서 무료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카카오톡과 유사하다. 컴퓨터에 다운로드하기보다는, 휴대폰에 다운로드해서 활용하기를 권한다. 휴대성이 있어서 편하다. 북클럽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므로, 집이 아니라 커피숍이나 자동차 안 어디서든 로그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마이크 달린 이어폰
휴대폰을 구매할 때 같이 제공되는 마이크 달린 이어폰을 사용하면 좋다. 낭독은 소리로 전달되므로 가능하면 최적의 음질을 제공하는 게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편하다. 그룹콜이 울리고 스터디가 시작되면 이어폰을 끼고, 내 순서가 되면 마치 통화하듯이 말하면 된다. 이어폰 접속 불량으로 지지 직하는 잡음이 들리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새로 구매하자. 비싼 것도 필요 없다. $10 정도 투자하면 충분하다.
3. 마지막으로 책을 준비한다
우리 그룹의 첫 리딩 책은 『GRIT』이었다. (한국어로는 『그릿 :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이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일명 ‘존버’ 정신이 있더라는 자기 계발서다. 대중서이자 베스트셀러로 내용도 영단어도 많이 어렵지 않고, 두께도 적당해서 시작하는 책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책은 각자 준비한다. 도서관에서 대여하든, 서점에서 구매하든 상관없다. e-Book이든, PDF 파일이든, 종이책이든 포맷도 상관없다. 단 낭독할 때 같은 콘텐츠를 보고 있는 게 중요하므로, 출판 버전은 맞추는 것이 좋다. 같은 제목의 책이라도 해도 8쇄 책과 14쇄 책은 내용이 크게 추가되거나 삭제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능하면 최신 버전으로 준비하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준비인 ‘설레는 마음’이다. 첫 낭독 스터디 때 설레서 잠을 설쳤던 기억이 있다. 소풍 가방에 맛있는 김밥과 스낵을 싸놓고, 내일 친구들과 나눠 먹을 생각에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던 그런 기분 말이다. 이 기분을 이렇게 느낄 줄이야. 참 반갑고 기분 좋은 설렘이다.
자! 이제 준비가 됐으니, 다음 순서를 따라 스터디를 진행해보자!
원문: 켈리랜드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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