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교육열이 높은 게 아니라 경쟁열이 높은 것뿐이라는 평가가 틀리지 않는 듯하다. 사교육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협박’ 마케팅 또한 이것과 연장선상에 있다. 학원 등록 전에 소위 말하는 placement test 결과를 놓고 상담실장은 어머니에게 정해진 멘트를 날린다.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도대체 어머니 뭘 하셨어요.
당장 어머니는 우리 아이 받아달라고 하면서 신용카드를 꺼내 3개월 치 수강료를 지불한다. 참 슬픈 풍경이다. 우리나라 교육을 망치고 있는 3대 축(교육 당국, 학교, 학부모)의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진다. 사교육 업체들의 변을 들어보자면, “우린 학부모가 원하는 걸 줄 뿐이다”라는 변 같은 말뿐이다. 3대 축에 사교육 업체를 포함하여 4대 축으로 확장할까 한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영어는 평가가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가 인지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있다. 평가를 하더라도 상대평가로 줄을 세우기보다 절대평가를 하는 것이 올바르다. 수능에서 영어 과목만 절대평가를 하는 이유다. 매우 바람직하다. 더 나아가서는 아예 영어 시험을 없애고 수업 시간을 늘린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언어는 스트레스 상황 하에서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가 길을 걸어가다 곰을 만났다고 치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가? 부신피질에서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뿜어져 나온다. 이 호르몬의 별칭은 ‘Fight or Flight’ 호르몬이다. 싸울래 튈래? 빨리 결정하게 하는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소화기능은 멈추고 언어중추도 마비가 된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이유가 설명된다. 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머리는 싸울까 튈까를 고민할 뿐이다.
우리가 시험을 보거나 누군가 나를 평가하려 들 때에도 이 호르몬이 분비된다. 남이 나를 평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평소에는 즐겁게 스케이트를 타다가도 심사위원 10명이 나의 기술과 예술성을 1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고 하면 긴장이 되면서 평소에 잘 되던 트리플 악셀에 실패한다. 바로 코르티솔 때문이다. 시험 때만 되면 소화가 안 되는 이유도 바로 코르티솔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막 말문이 틀 무렵 할아버지를 “하삐 하삐”라고 부른다. 그러자 엄마가 “할.아.버.지! 하삐가 아니야!” 라고 화를 낸다. 이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그 아이는 영원히 우리말을 배우지 못할 것이다. 언어 습득의 과정이 지적질을 동반한다는 것을 아는 순간 입을 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언어 습득 과정에서 평가와 지적질은 없어도 좋을 불청객이다.
미국의 학교 중에는 도서관에 애완견을 데리고 와 아이들이 그 앞에서 읽게 하는 ‘Read to Dog’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있다. 처음에는 읽기가 안 되는 아이들 위주로 하다가, 학업 성취도가 높아지자 이제는 일반 학생들로 확대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상승하는 요인이 무엇일까? 귀여운 강아지를 보니까 정서적으로 안정이 돼서? 강아지가 집중해서 들어줘서? 다 맞는 얘기지만 결정적 요인은 이렇다.
강아지는 지적질을 안 하기 때문
아이들을 평가 점수와, 석차, 랭킹에서 해방시켜 주자. 영어 실력은 그에 비례해서 일취월장할 것이다.
독서량을 경쟁 시켜 랭킹을 게시하는 어린이 리딩 프로그램을 흔하게 볼 수 있다. AR 점수를 기록하여 타 학생과 비교하고 경쟁을 부추기기도 한다. 학원이 아이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는 증빙 자료로 성적표를 어머니에게 제시하기도 한다. 전 월 대비 약간의 성적 향상이 보인다는 말과 함께.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어차피 중학생이 되면 우리 아이들은 평가와 경쟁의 아마존으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 입시의 밀림을 헤치고 나와야 한다. 그런데 그 짧은 초등학교 6년을 못 참고 전국 석차를 확인하고서야 직성이 풀리는 학부모님들! Please leave your kid alone!
4차 산업혁명의 변곡점에 와 있는 부모의 과제는 ‘어떻게 하면 아이를 교육시킬 것인가’ 보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내버려 둘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일 수 있다.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겐 지식과 학위보다 창의력과 사고력이 핵심 무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홍보) 필자가 설계한 리딩앤에서의 1단계 Warm Up과 5단계 Wrap Up은 채점을 하지 않는다. 정답을 맞힐 때까지 하고 또 하면 된다. 사지선다에서 세 번 틀려서 정답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궁극에는 “Hooray!” 환호성을 들려준다. 엄마 아빠한테서는 들어보지 못한 소리일 것이다.
4단계에서는 발음을 평가하여 음소 단위로 일치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 또한 평가의 잣대로 삼지 않고 ‘Try Again!’이 없다. 그저 “Ok! Great! Excellent!” 이렇게 3단계로 격려해 줄 뿐이다. 단순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지과학적인 교육법(Pedagogy)을 바탕으로 세심하고 정교하게 설계된 철학 있는 리딩 프로그램이다.
독서라는 것이 ‘즐거움’으로 기억되는 축적의 과정을 통해 자기 주도적인 독서를 하는 아이로 성장한다면 4차 산업혁명에 맞서 이보다 더 잘 준비된 학생이 어디 있겠는가?
원문: 김성윤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