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매일 영어책을 낭독하면 생기는 일] 시리즈입니다.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함께의 힘: 의지를 믿지 말고, 환경으로 몰아가기
요즘 독서를 한다는 것은 굉장한 집중력과 의지가 필요한 일이 된 것 같다. 특히 유튜브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SNS)가 도처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젊은이들의 독서율이 점점 하락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새해 목표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독서’와 ‘영어 공부’다. 매년 목표로 다잡아 넣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일상생활 속에 쉽게 간과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일, 집안일, 육아, 여행 등 여러 이유로 독서와 영어 공부는 늘 뒷전이다. ‘나중에 시간 났을 때 해야지, 이번 주말에는 시간 내서 해야지’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보낸 하루하루가 얼마인가? 그렇다고 시간이 많다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니다. ‘이번 주말에, 이번 추석 때 일주일 황금연휴가 있으니, 그때 밀린 책 실컷 읽어야겠다’라고 다짐한다 한들, 정말 그렇게 되던가?
해야 할 일들이 밀려 들어오고, 랜덤하게 내 시간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마구 등장한다. 그래서 자기 계발은 가슴 한구석에 미안한 마음 반, 후회하는 마음 반으로 남아있게 된다. 대부분 이런 경우, 자기의 빈약한 의지를 탓한다. ‘내가 뭐 그렇지’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하고 말이다.
그러면, 나는 언제 책을 읽을 수 있단 말인가? 책에 푹 빠져 사는 사람들은 특유의 ‘독서 DNA’라도 타고난 것일까? 스포츠 스타들이나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정신력으로 해냈다, 힘든 기간을 의지력 해냈다는 인터뷰를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럴까? 우리는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뭐든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해빗, Good Habits, Bad Habits』의 저자는 ‘변하고 싶다면 변할 수밖에 없는 환경부터 만들라’고 조언한다. 인간의 의지력은 언젠가 고갈되기 때문이다. 즉, 본인의 의지를 믿지 말고 상황과 환경을 만들어 이를 습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산다. “시작이 반이다!”라고 외치며 호기롭게 시작하지만 금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원점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자꾸 실패를 반복하는 이유는 뭘까? 인간 내면의 충동적 본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삶의 목표 중 대다수가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강렬한 충동 때문에 방향을 잃고 좌초된다. 그리고 그 끝에는 끔찍한 무기력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수년간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성공한 사람들은 이런 불굴의 정신력으로 좋은 습관을 형성하지 않았다. 그들은 무언가를 자제하거나 인내할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 자제력 대신 습관을 활용했다…. 우리는 이 실험에서 습관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가 보상이 아닌 ‘상황’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 『해빗: 내 안의 충동을 이겨내는 습관 설계의 법칙, Good Habits, Bad Habits』 by Wendy Wood
원서 낭독에 있어 환경이란,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 넉넉히 있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스스로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하루 시간 중 언제가 내가 꾸준히 1시간을 낼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해보자. 나에게는 새벽시간과 점심시간, 그리고 아이들이 모든 잠든 후가 가능했다. 나의 첫 북클럽은 밤 10시였다. 아이들이 자면, 보상심리로 나만의 자유의 시간을 갖고 싶어진다. 반쯤 소파에 누워서 유튜브나 웹서핑을 하다가 잠드는 게 보통이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빨간 버튼이, 페이스북의 파란 버튼이, 푹신한 침대의 달콤한 유혹이 나를 손짓한다. 이러한 유혹을 뿌리치고 책을 선택하는 것은, 내면의 본능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하지만, 누군가 그 시간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정각 그 시간에 그룹콜 전화가 걸려와서, 낭독할 시간이라고 문을 두드린다면? 조인한 후에도 바짝 집중해서 읽을 수 있도록 내 순서가 계속 돌아온다면? 일단 참여만 하면, 최소 십여 페이지를 읽고 하루를 뿌듯함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렇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그저 그렇게 보낼뻔한 그 ‘죽은 시간’에 원서 낭독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나를 몰아넣는 것이다.
혼자 하면 작심삼일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만남이 매일 같은 시간에,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서로 의지하며 격려하는 멤버들과 반복적으로 이뤄진다면 꾸준히 지속할 수 있다. 그렇게 한 달, 세 달, 1년을 하다 보면, 신기하게 내 시간이 이제는 원서 낭독을 해야 하는 삶으로 최적화된다.
기존에는 내겐 독서할 수 있는 최적화된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스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의지를 갖고, 그것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 그리고, 그걸 옆에서 함께 격려하고 응원하는 멤버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원서 낭독 북클럽을 몇 년 동안 지속하게 한 핵심 원동력이다.
몰입의 힘: 1시간이 10분처럼 지나가는 놀라운 마법
당신의 하루를 돌아봤을 때, 무언가에 온전히 몰입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10분, 1시간? 아니, 최근 몰입의 순간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무언가 집중해서 하려고 하면 유튜브의 인기 동영상을 보고 있다던가, 알지도 못하는 지구 반대편 사람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들어가 있진 않은가?
우리는 우리의 몰입을 방해하는 너무나 많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아니, 외면하고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몰입의 순간, 하지만 거기까지 혼자 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가장 집중도가 높을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시험 보기 직전이나, 발표를 앞둔 순간일 것이다. 그때는 도달해야 할 명확한 목표가 있고, 무엇을 해야 할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몰입의 즐거움』 저자는 몰입의 조건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사람의 기분은 몰입 상태에 있을 때 절정에 이른다. 그것은 도전을 이겨내어 문제를 해결한 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몰입을 낳는 활동은 대부분 명확한 목표, 정확한 규칙, 신속한 피드백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 『몰입의 즐거움』 by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처음에 영어 원서를 나 혼자 읽으려고 했을 때, 1~2페이지를 혼자 읽기가 쉽지 않았다. 한 단락까지 읽었다 해도, 두 번째 단락 넘어갈 때쯤 이미 머릿속에는 딴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설령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다가 금세 마우스를 클릭하거나,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하게 된다. 이미 몰입의 사이클에서 저 멀리 벗어나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책을 읽을 때, 초반부 몰입은 약간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아직 스토리나 내용의 충분한 서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누구이며, 주변 관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조금 더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초반 몰입에 실패하게 되면 ‘뭐 이리 복잡해! 누가 누군지 모르겠네’, ‘이 책은 나랑 맞지 않네’ 하면서 쉽게 포기해버리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원서 낭독 북클럽을 몰입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만들면 어떨까? 팀원 모두가 완독이라는 한 곳의 목표를 바라보고 있고, 돌아가며 두 문단씩 매일 1시간 동안 낭독한다는 규칙이 명확하고, 내 차례가 왔을 때 최선을 다해 낭독하게 된다면 몰입이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어도 1시간 동안 내 눈은 책의 텍스트를 따라가야 하고, 귀는 상대방의 낭독 소리를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이어달리기하듯 내 순서의 바통이 전달되면, 내가 읽어야 할 부분을 낭독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통이 내 손안에 있는 순간, 나의 몰입도는 최고조가 된다. 내가 달려야만 경기가 계속 진행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낭독이 진행되는 1시간 동안, 내 손에 최소 대략 5-6번의 바통이 주어진다. 최소한 이 시간만큼은 몰입의 주파수를 최고로 높이는 순간이다. 이렇게 주기가 반복되다 보면, 점점 더 지속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몰입의 즐거움 』 책의 저자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우리가 몰입할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정한 몰입의 즐거움은 대인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부분은 원서 낭독 북클럽이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책을 같이 읽음으로써 멤버들과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고, 매일 같은 시간에 만나는 유대감이 계속 나를 몰입의 상태로 안내해주는 것이다. 즉, 서로의 몰입을 돕고 행복을 극대화시키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경우 몰입 경험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활동의 내용이 금방 시시해지기 때문이지만, 친구는 일평생을 가도 끊임없이 자극을 줄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우리의 정서적 지적 기량을 갈고닦는 데 큰 도움이 된다.
- 『몰입의 즐거움』 by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특히, 몰입에서 오는 짜릿함과 행복함을 경험하게 되면, 낭독의 세계에 더욱 빠져들게 될 것이다. 정신없이 읽다 보면, 어느새 1시간이 10분처럼 지나가 버리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끝났어? 이제 막 주인공 둘이 만났는데?’하고,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 미칠지도 모른다. 마치 아침드라마가 클라이맥스에서 OST가 나오면서 ‘다음 이 시간에…’ 자막이 뜰 때의 아쉬움이 밀려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괜찮다. 우리는 내일도 같은 시간에 읽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힘: 낯선 영역으로의 과감한 초대
낭독 북클럽을 통해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사람은 변화를 싫어하고 낯선 것에 거부감이 있기 마련이다. 나 같은 경우는 소설이나 자기 계발 서적은 좋아하지만, 경제·과학이나 미술책은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책 리스트를 정리해보니 장르의 쏠림 현상이 심했다.
북클럽에서 한 권을 완독 후에, 돌아가면서 다음 책을 정하기로 했다. 멤버 중 한 분이 『서양미술사, The Story of Art』를 추천하셨다. 미술에 대해서는 무지했기에 나에겐 새롭고도 낯선 영역이었다. 제목과 달리 미술의 역사를 나열한 책이 아니라, 유명한 작품들을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친근하고 재밌게 풀어나갔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삽화들은 정말 놀랍도록 정교한 건축, 한 번은 봤을 법한 유명한 그림들, 정말 돌로 조각한 것으로 믿기지 않는 부드러운 곡선의 동상 등,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이 책은 예술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높은 평가를 받는 글로벌 스테디셀러다. 완독 후, 작가의 통찰력과 예술의 매력에 반해 하드커버를 소장용으로 별도 주문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아이들도 꼭 읽었으면 싶을 인생 책이 됐다. 만약, 낭독 북클럽 멤버의 추천이 없었더라면, 혼자서는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좁았던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다.
『지리의 힘, Prisoners of Geography』 책을 접했을 때는,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 세계 지도를 이렇게 자세히 본 적이 있을까 싶었다. 원서 제목이 훨씬 책 내용을 잘 반영하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침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국가들이나 거대한 산맥에 둘러싸인 국가들. 어떤 대륙은 발전을 이루고, 또 다른 대륙은 고립되는 삶을 살기도 한다. 세계사의 오랜 침략과 분쟁, 발전과 진화를 지리적 관점에서 풀어낸 탁월한 책이다. 각 챕터가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국가별로 되어 있어서, 이 책을 돌아가면서 낭독할 때는 마치 CNN 특파원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 밖에도 처음으로 미국 하이틴 로맨스 소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To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도 원서로 읽어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유치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랜만에 죽어있던 연애세포가 살아난 듯 푹 빠져서 읽었다.
한국에서 <응답하라> 드라마 시리즈를 정말 재밌게 봤는데, 미국 하이틴 소설도 배경만 바뀌었지 공식은 비슷하다. 학교 킹카가 평범한 여주인공을 좋아하고, 삼각관계가 되어 얽히고설키고, 빠질 수 없는 심쿵한 로맨스까지. 미국 고등학교로 배경만 바뀌었지, 시대와 공간을 넘어 하이틴 로맨스의 공식은 어디든 통하는 것 같다.
북클럽 멤버들과 읽으면서 남자 주인공의 쿨하고 멋진 모습에 ‘까약!’ 소리도 질러가고, 알콩달콩한 로맨스 장면에서는 얼굴도 살짝 붉어져 가며 감정 이입해서 정말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함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낯선 영역으로 한 발짝 들여놓기가 내 삶을 더 풍성하고 신선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올해는 경제 서적뿐 아니라, 과학 서적도 많이 읽고 싶다. 함께 하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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