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형제가 있으면 좋은데.” "사위라도 있어야지." 장례식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남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남자라는 성별은 가정의 큰 대소사를 관장할 권력을 차지했다. 이때까지 들었던 말들도 스쳐 지나갔다. 혼자 오피스텔을 구할 때는 “부동산은 남자랑 같이 봐야 무시 안 당해. 꼭 대동하고 가.”, ”위험하니까 원룸 말고 신축 오피스텔로 구해. 돈 더 들더라도 보안 잘 되어있는 곳으로.” 혼자 살고 싶다고 하면 “그러다 늙어서 아프면 어떡해? 누가 돌봐줘?”, … [Read more...] about 비혼의 할머니가 될 것이다
‘섹스 앤 더 시티’가 퍼뜨린 완경 혐오
※ 이 글은 영화 〈섹스 앤 더 시티 2〉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생애주기에 따른 여성 몸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강조하고자 폐경 대신 완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완경과 관련된 정보는 로빈 스타인 델루카의 책 『호르몬의 거짓말』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섹스 앤 더 시티〉는 단연 많은 여성들의 바이블로 여겨지는 TV 시리즈다. 보는 눈이 즐거워지는 화려한 패션, 뉴욕에서 주도적으로 일과 사랑을 쟁취하는 네 명의 뉴요커들. 사랑과 섹스를 말하기에 주저함이 없고, 화려한 도시에서 … [Read more...] about ‘섹스 앤 더 시티’가 퍼뜨린 완경 혐오
감히 빌린 돈으로 여행을 떠난 대학생을 위하여
※ 고병권 선생님의 책 『묵묵』(돌베개, 2018)의 「감히 해외여행을 떠난 기초생활수급권자를 위하여」에서 따온 제목임을 미리 밝힙니다. 글에 나온 통계 및 사실관계는 「대학생의 생활비 대출과 대학 졸업 및 취업성과 간 관계 분석」(교육재정경제연구, 2018)를 참고했습니다. 그마저 사치라고 하면 얼마 전 커뮤니티에서 본 기사 하나가 있다. 제목은 「가난한 대학생 도우려 만든 생활비 대출받아… 여행 가는 휴학생들」이었다. 1년 전 기사인데 요즘 왜 또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는지 몰라도, … [Read more...] about 감히 빌린 돈으로 여행을 떠난 대학생을 위하여
지금까지 책을 잘못 읽어왔다
얼마 전 한국어 자격증 취득을 위해 오랜만에 문제집을 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이 자격증을 아주 과소평가했다. 5년 전쯤 같은 시험을 치렀을 때 기출 몇 번 풀고 고득점한 경험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펼친 문제집은 왜 이리 어렵던지. 어휘와 어법이 부족한 것은 둘째 치고, 읽기 영역을 주의 있게 한 번에 풀어나갈 집중력마저 사라졌음에 위기감을 느꼈다. 며칠간 공부와 기출을 풀어낸 결과 조금씩 기대 점수가 오르긴 했지만 어쨌든 모국어에 대한 자신감이 현저하게 떨어진 순간이었다. 내가 … [Read more...] about 지금까지 책을 잘못 읽어왔다
나에게 필요한 ○세권
《디렉토리 매거진》은 주거 관점으로 1-2인 가구, 밀레니얼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기록하는 잡지다. 창간한 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내용이 알차 구입해서 읽는다. 창간호의 주제는 '보증금', 두 번째 호의 주제는 '함께 사는 존재', 그리고 가장 최근호의 화두는 'Within 500M', 즉 ○세권이다. 이전 호가 주거 구입 형태나 동료 등 집의 내부 환경을 다뤘다면, 집을 둘러싼 외부 환경을 다룬 것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몰세권이나 편세권, 벅세권, 숲세권에서부터 도대체 … [Read more...] about 나에게 필요한 ○세권
고무신과 의전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에는 해방 후 보수적인 가정에 며느리로 들어간, 그 시절 나름 대학도 다닌 고학력 주인공이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 노릇을 배우는 장면이 나온다. 시어머니는 집에 놀러 온 이모님과 고모님들의 고무신을 보얗게 닦아놓으면 얼마나 좋아하시겠냐고 몰래 귀띔을 한다. 주인공은 지푸라기 수세미로 고무신을 닦아 어른들로부터 입이 마른 칭찬을 받지만 며느리 생색을 내준 시어머니가 조금도 고맙지 않다. 그러나 얼마 후 남편의 생일로 식구들이 모였을 때는 시키지도 않았지만 자석에 이끌린 … [Read more...] about 고무신과 의전
의전이란 무엇인가: 일인자만을 위한 ‘완벽한 무대 설계’
지금은 퇴사한 회사에 있을 때 유독 기억에 남는 의전이 있다. 의전의 끝판왕 총무실과 협업하는 프로젝트의 킥오프 미팅을 준비하던 날이었다. 그때 총무실 과장님은 프로젝트 막내였던 나에게 전화를 걸어 6명의 현업 팀장님들을 대상으로 칼국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나는 전화를 끊고 동공의 초점을 잃었다. 칼국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 칼국수처럼 호불호 없는 음식이 어디 있어…? 팀장님들이 칼국수 싫어하는지는 어떻게 확인해…? 팀장님들한테 메신저로 ‘안녕하십니까 … [Read more...] about 의전이란 무엇인가: 일인자만을 위한 ‘완벽한 무대 설계’
우리가 인스타그램에 중독되는 방식
나는 왜 디지털 디톡스에 실패했나 반년 전쯤, 디지털 디톡스에 처참하게 실패한 전력이 있다. 디톡스(detox)는 인체 유해물질을 해독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란 디지털 중독에 빠진 현대인들에 대한 처방으로써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중단하고 휴식을 취하는 요법을 의미한다. 디지털 단식이나 디지털 금식이라고도 표현하기도 한다. 당시 태국 치앙마이에서 여행 중이었던 나는, 여행하면서도 온갖 디지털 기기와 화면에 중독된 나의 모습에 불현듯 경각심을 느끼고 … [Read more...] about 우리가 인스타그램에 중독되는 방식
내 비밀이 죽고 나서 밝혀진다면
일본에 자살을 많이 하는 어느 지역에 한 푯말이 세워진 이후 자살률이 낮아졌다고 한다. 푯말에 적힌 말은 이러했다. 당신의 하드디스크는 깨끗하게 지웠습니까? 트위터에서 본 이미지라 진위는 모르겠다만, 죽기 위해 자살 바위까지 간 자의 마음을 돌리는 공포에 대해서는 다소 공감이 간다. 내 사생활과 치부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프라이버시 폭로에 대한 공포가 아닐까. 안타까운 건 지금과 같은 시대에 하드디스크를 지우는 것 정도로는 사생활을 지킬 수 없다는 … [Read more...] about 내 비밀이 죽고 나서 밝혀진다면
200일간 에어비앤비로 여행하기
나는 내향적인 여행자다.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고, 보통 근처 카페와 밥집만 전전하는 싱거운 하루를 보낸다. 이런 나에게 숙소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적인 나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다. 여행지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일이고, 그렇게 익숙해진 공간을 쉽게 떠나지 않는다. 놀랍지 않게도 이 여행기의 이름은 ‘방을 나가지 않는 여행자’다. 이런 성향의 여행자일수록 에어비앤비는 완벽한 플랫폼이다. 지금까지 … [Read more...] about 200일간 에어비앤비로 여행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