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향적인 여행자다.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고, 보통 근처 카페와 밥집만 전전하는 싱거운 하루를 보낸다. 이런 나에게 숙소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적인 나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다. 여행지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일이고, 그렇게 익숙해진 공간을 쉽게 떠나지 않는다. 놀랍지 않게도 이 여행기의 이름은 ‘방을 나가지 않는 여행자’다.
이런 성향의 여행자일수록 에어비앤비는 완벽한 플랫폼이다. 지금까지 나는 태국의 치앙마이와 빠이,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포르투, 스페인의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빌바오, 그라나다, 세비아, 그리고 마지막 도시인 베트남 호찌민까지 약 200일 정도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구했다. 가끔 호텔, 도미토리, 한인 민박을 사용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다음 여행지를 준비할 때 가장 먼저 접속하는 사이트는 에어비앤비다.
그렇게 구한 숙소에서 짧게는 1주일, 길게는 두 달간 머무른다. 지금 머무르는 호찌민의 숙소도 한 달간 장기 숙박 중이다. 자신만의 여행을 구축하는 방랑자라면 에어비앤비의 집을 유랑하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여행이 된다. 내향적 성향의 여행자일수록, 장기여행을 하는 사람일수록 에어비앤비가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적어봤다.
로컬과 일상의 결합: 방문을 여는 동시에 여행이 시작된다
낯선 나라에 도착해 숙소에 체크인하는 순간부터 나의 여행은 시작된다. 세련된 도심이 아닌 으슥한 현지 골목 사이를 걸어가 번지수를 찾고, 처음 만난 호스트와는 미리 외워온 짧은 현지어로 인사를 나누고, 전달받은 헐렁한 열쇠로 방문을 여는 그 일련의 모든 과정이 여행자의 감흥을 자극한다.
순백의 호텔의 주는 정제된 편안함이나 2층 침대 사이에서 만나는 세계 각국 여행자와의 교류도 매력 있지만, 에어비앤비의 매력은 또 다르다. 이국적인 여행지의 개성과 호스트 개인의 매력이 결합해 방 자체가 독특한 여행 경험을 선사한다.
리스본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예약한 에어비앤비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새벽 1시였다. 그 시간에도 호스트 빅토리아는 테라스에서 담요를 두르고 손을 흔들며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함께 캐리어를 끌고 올라간 빅토리아의 집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내 다리 사이를 지나다니며 야옹거렸다. 이동 중 처음 만난 인종 차별자와 연착된 비행으로 노곤해진 피로함이 곧 “내가 포르루갈에 오다니!”라는 설렘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고양이라니!
따로 또 같이, 아늑한 나만의 공간: “네 집처럼 생각해.”
방을 나가지 않는 여행자일수록, 그리고 현지에서 머무르는 기간이 짧지 않을수록 숙소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재들이 필요하다. 매일 나가서 외식할 수도 없기에 부엌이 있어야 하고, 소금이나 설탕, 식용유도 있어야 하고, 앉아서 작업할 수 있는 공간도, 집 안에서 세탁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미 사는 사람의 집에 몸 하나만 얹으면 되는 에어비앤비는 여러모로 편하다.
내가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너의 집이라고 생각해”다. 마드리드에서 만난 에므라의 집은 수많은 음식 재료는 물론이고, 와인과 위스키도 즐비한 미식가의 집이었다. “먹고 싶을 때 언제든 와인을 먹어도 돼”라고 말하는 그 말이 얼마나 반가웠던지(심쿵…). 연어 스테이크를 구울 때 에므라의 감자를 한 두 개 사용하거나, 그의 집에 쌓인 수많은 미술 관련 서적을 뒤적거리며 마드리드 미술관 투어를 준비하는 재미도 있었다.
가끔 에므라는 우쿨렐레 초보자인 나의 연주에 맞춰 현란한 핑거스타일 기타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일주일을 보냈지만, 기본적으로 에므라는 게스트의 퍼스널한 공간을 존중하고 여행자가 자기 집에 완전히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호스트였다. 나는 그들의 집을 내 집처럼 만끽했다. 도시는 낯설어도 숙소만큼은 낯설지 않았다.
타인의 취향 수집하기: 여태껏 모르고 산 게 아까울 정도
에어비앤비와 함께하는 200일간의 여행은 가장 사적인 ‘집’이라는 공간에서 타인의 취향을 수집하는 일이라고 정의 내릴 수도 있겠다. 여러 에어비앤비를 전전할수록 나는 집과 공간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단순히 인테리어나 소품의 수준을 넘어,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서 내게 맞는 부분을 나도 모르게 발견하고 수집하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원룸 오피스텔에서만 살아온 내가 어쩌면 룸메이트와 같이 투룸에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바꾸게 된 것도 에어비앤비 덕분이다. 독립적인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서로의 개인 공간을 존중할 줄 아는 파트너만 있다면 넓은 공간에 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각자의 방이 있으면서, 거실은 큰 탁자가 있는 공종 작업 공간으로 조성하고, 같이 먹을 원두를 공동 구매하는 삶,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집엔 호스트들의 집에서 본 재미있는 아이템들로 하나씩 채워야지. 나는 이슬람 문화가 곳곳에 남아있는 그라나다의 에어비앤비에서는 나그참파 인센스 스틱의 매력에 빠졌고, 바르셀로나의 숙소에 머무를 때는 광목천을 떼다 파티션을 구분하는 좋은 팁을 얻을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게 에어비앤비 여행은 커피를 마시는 수많은 방법을 경험하는 과정이었다. 호찌민에서는 베트남 전용 드리핑 기계 ‘핀’을 이용해서 진한 연유 커피를 만들어 마셨고, 포르투에선 캡슐 커피를, 리스본에서는 커피메이커를, 발렌시아에선 핸드드립을, 바르셀로나에선 모카포트로 만든 커피를 마셨다. 여행 기간에는 쇼핑하지 않는 편인데, 한국에 돌아가서 사고 싶은 것들은 잔뜩이다. 한국에 가면 먼저 커피메이커부터 살 생각이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소통: 느슨한 대화를 하고 싶다면
호텔은 프런트로 연결되는 전화를 이용하는 것이 귀찮을 때가 있다(전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더. 한국에서도 배달 앱만 사용했다고…). 한인 도미토리는 문만 열면 호스트와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극도의 개인주의자인 나는 가끔 필요한 때만 얼굴 보는 정도가 편하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와는 기본적으로 앱 자체 메신저나 왓츠앱을 통해 대화하니 언어적인 문제로 버벅댈 필요도(물론 번역도 해주긴 한다), 호스트를 만나기 위해 방문을 두드릴 필요도 없다. 숙소를 예약할 때부터 서로 인사말을 주고받고, 체크인 순서나 미리 질문할 걸 메신저로 나눈다. 잠깐의 대화지만 첫 만남의 떨림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여행 도중에는 언제나 메신저로 질문하고, 현지인만 알 수 있는 정보를 물어볼 수도 있다.
요즘 내가 호찌민 숙소 호스트 로지에게 가장 최근에 한 질문은 “근처 어디에서 과일과 야채를 살 수 있어?”였다. 도대체가 주변에 가게라고는 보이질 않아서… 로지는 야채와 과일을 같이 구할 수 있는 큰 마트의 위치와, 마트에 갈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인 그랩 오토바이 타는 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소통의 과잉과 소통의 부재, 에어비앤비는 그 중간에서 평형을 유지하고 호스트와 느슨한 유대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나는 그 신뢰 속에서 안전한 여행을 한다는 감각을 느낀다. 얼굴을 보지 않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난 그게 더 좋다.
좋은 숙소를 고르는 팁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두 가지 팁이 있다.
첫 번째, 양보할 수 없는 자기만의 최소 기준을 만드는 것. 나에게 그것은 1인실인지/채광이 잘 되는지/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부엌이 있는지 정도다. 이 기준을 충족한다면 집이 좁거나, 거리가 도심에서 먼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 번째, 슈퍼 호스트의 숙소를 예약하는 것. 방이 아주 예쁘거나, 가격이 저렴해도 후기가 없거나 평이 좋지 않은 곳은 애초에 거른다. 예쁘고 아름다운 방보다 중요한 것은 호스트로서의 숙련도와 친절도다. 무엇보다 혼자 여행하는 입장으로서, 슈퍼 호스트의 방을 고르는 것은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되어준다.
사실 나는 내가 원하는 기준만 충족되면 그 외에는 무던하게 넘어가는 편이다. 지금 머무는 방은 하루에 1만 원꼴이고, 방도 넓고 부엌도 있고 채광도 좋고 노트북도 있다. 하지만 베트남의 전형적인 올드한 빌딩이라 위생적으로 청결하지는 않고, 화장실에서는 도마뱀과 바퀴벌레가 가끔 출몰한다. (너무 치명적인가요? 나는 괜찮아…)
돈을 많이 지불할수록 예쁘고 좋은 방을 고를 확률은 당연히 높아진다. 하지만 제한된 예산 안에서도 본인만의 기준이 있다면 얼마든지 좋은 방을 고를 수 있다. 나는 동남아에서는 1박 평균 1만 원대, 유럽에서는 2–3만 원대 숙소에 머물렀다. (1주, 2주, 혹은 한 달 대여 시 파격적인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숙소도 많다. 보통 한 달 대여 시 기존 숙박비의 20–30%를 할인해준다.)
좋은 호스트를 골라야 하는 것만큼, 내가 좋은 게스트가 될 필요도 있다. 에어비앤비는 상호 간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는 공유경제 플랫폼이다. 이 신뢰의 기반은 호스트와 게스트의 쌍방향 후기 시스템에서 온다. 내가 슈퍼 호스트 후기에 의존하는 것처럼, 호스트 역시 게스트의 후기 이력을 참고한다. 내가 나이스한지 진상인지 이력과 후기가 계속 축적되는 것이다.
나도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에어비앤비의 방을 깨끗이, 내 집처럼 사용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어쨌든 호스트의 집을 잘 사용하고 깨끗이 떠나는 것은 최소한의 덕목이다. 완벽한 여행을 보낸 숙소에는 구구절절 긴 후기를 남겨주는 것도 좋다.
나의 여행은 세계 여행이라기보다는, 한 달 살기를 각기 다른 곳에서 반복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상을 떠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라지만, 나는 여행지에서 빨리 나만의 일상을 다시 만들고 싶다. 그럴 때는 로컬들의 삶에 숟가락을 얹기만 하면 되는 에어비앤비만큼 좋은 곳이 없다.
지난 여행을 떠올려본다. 빠이의 샤워실 타일을 따라 이동하는 개미들의 줄, 리스본의 집에서 만난 두 마리 고양이 진저와 초코, 치앙마이의 부엌에서 실패한 레몬그라스 요리… 무엇보다 다시 볼 일이 없다는 걸 알지만, 꼭 다시 보자고 안았던 호스트들과의 짧고도 반짝거리는 이별의 연속.
당신이 방을 잘 나가지 않는 사람이라면, 게으른 고양이 같은 영역 동물이라면, 타인의 취향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면, 에어비앤비는 완벽한 순간을 제공할 것이다. 나에게 에어비앤비와 함께하는 여행은 낯선 타지에 아늑한 자기만의 방 만드는 일이었다.
※ 다음 편은 잊지 못할 한인 민박 편으로 찾아오겠습니다(기약 없음).
원문: 사과집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