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12시가 넘어 과거의 오늘을 살펴보다 마침 1년 전 이맘때가 딱 버닝썬 사건이 터졌을 즈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그 이름만 남아 있고, 누가 무슨 일을 벌였는지 대부분의 머릿속에서는 대략 희미해졌을 그 사건. 아이돌 그룹 출신의 승리라는 연예인이 클럽을 운영하면서 거기에 찾아오는 여성 손님들에게 조직적으로 약물을 먹여 정신을 잃게 만든 뒤 ‘VIP 고객들’에게 ‘제공’했던 사건. 그런 여성들의 나체를 촬영해 동료 연예인들이 속한 단톡방에서 돌려보고 품평을 하며 … [Read more...] about 버닝썬, 양진호, 그리고 N번방: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영화 ‘건축학개론’이 싫은 이유
영화 〈건축학개론〉을 아주 싫어한다. 처음부터 싫었다. 물론 사람들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는 이해하고, 나 역시 영화가 내뿜는 감수성에는 공감하는 측면이 있지만 말이다. 그 시절의 공기, 그 시절의 음악, 그 시절의 감성. 돌아오지 않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 다만 영화가 서연(수지와 한가인 분)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나중에 이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남성이 그 대목에서 분노는커녕 오히려 감명을 받는 것을 보고 그만 놀라고 말았다. 아니 썸 타던 여자, 자기가 … [Read more...] about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영화 ‘건축학개론’이 싫은 이유
왜 ‘82년생 김지영’에게만 보편의 서사를 요구하는가
영화 〈82년생 김지영〉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김지영이 아이 어린이집 엄마들 모임에 참여했다가 다른 엄마들의 출신대학과 전공을 알게 되는 장면. 김지영은 그 자리에 있는 엄마들이 누구는 서울대 수학과를 나왔고, 누구는 연기를 전공했고, 누구는 공대를 졸업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지금은 모두 같아 보이지만 한때는 모두 꿈이 있고, 직업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란다.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다. 결국 여성이라면 어떤 대단한 성취를 이루었든, 얼마큼 열심히 공부했든, 대부분 … [Read more...] about 왜 ‘82년생 김지영’에게만 보편의 서사를 요구하는가
〈82년생 김지영〉: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저는 왜 엉망일까요
전에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페이스북 보면 승혜 님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정말 다들 그렇게 생각할걸요?” 스스로를 그렇게 바라본 적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들으면서 조금 놀랐는데, 생각해보면 정말 다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이만하면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아픈 데 없고, 사지 멀쩡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제도권에 안정적으로 편입했고,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아이도 둘이나 있고, 그것도 아들딸 골고루 있어서 아들만 있으면 '딸을 낳아야지' 딸만 … [Read more...] about 〈82년생 김지영〉: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저는 왜 엉망일까요
10년을 ‘이대 나온 여자’ 소리 안 들으려고 발버둥 쳤다
낙인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가 2006년에 영화 〈타짜〉가 개봉했다. 그때도 재미있었고 지금 다시 봐도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비롯한 일련의 여성들에게 굉장한 빅엿을 먹인 영화이기도 하다. 〈타짜〉로 인해 거의 10년간을 똑같은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대학생일 때, “올~~~ 이대 나온 여자네!!!” 졸업식에서, “올~~~ 이대 나온 여자네!!!” 소개팅에서, “올~~~ 이대 나온 여자네!!!” 취직했더니, “올~~~ 이대 나온 여자네!!!” 이대 사태 포탈 … [Read more...] about 10년을 ‘이대 나온 여자’ 소리 안 들으려고 발버둥 쳤다
남성적인 작가, 여성적인 작가
얼마 전 소설 수업 시간에는 정용준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다 읽고 돌아가면서 소감을 말하는데, 그중에 한 수강생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역시 남성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뭔가 굵직굵직하고, 이야기도 힘이 있고, 그래서 마음에 들어요. 여성 작가들하고 다르게. 여성 작가들은 너무 소심하다고 해야 하나, 작은 이야기만 다루고 그러잖아요. 전 여성 작가보다는 남성 작가가 잘 맞는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내 얼굴은 트럼프를 바라보는 툰베리처럼 구겨졌는데, 아마 맨 뒷자리에 앉아서 보이진 … [Read more...] about 남성적인 작가, 여성적인 작가
소설가가 쓰는 요리책 서평집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스무 살 넘어서까지 요리를 전혀 못했다. 할 기회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아예 관심 자체가 없었다고나 할까. 그러다가 일본에 혼자 살게 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당장 뭔가를 먹어야 하는데 뭘 먹는단 말인가! 당시의 나는 밥솥에 밥을 어떻게 안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매일같이 밖에서 먹거나 편의점 음식만을 먹을 수도 없고. 인터넷을 찾아보자니 지금처럼 자료가 잘 정리된 것도 아니었다. 요리책을 보고 만들려니…… 이건 뭐,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 말투성이다. … [Read more...] about 소설가가 쓰는 요리책 서평집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필요해지고 싶어요: 영화 ‘박화영’
『사채꾼 우시지마』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일본 뒷골목의 세계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굉장히 자극적이고 무섭다. 그 험악함으로 인해 호불호가 매우 갈리기도 한다. 물론 나는 아주 좋아하지만. 우시지마를 읽다 보면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힌다는 우파적인 세계관을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거기엔 흔히 ‘사람 냄새’로 대변되는 어떤 인간미 따위는 전혀 없다. 오히려 자연의 생태계에 더 가까운 아주 촘촘한 먹이사슬이 있다. 그리고 그 먹이사슬은 야생의 그것보다 훨씬 더 … [Read more...] about 필요해지고 싶어요: 영화 ‘박화영’
재미있는 책을 고르는 법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에 뜬 포스팅 중 이런 것이 있었다. 쉬는 동안 다 읽어주겠어! 하면서 10여 권의 책을 쌓아놓고 인증한 사진이었다. 깜짝 놀랐다. 절반 정도는 읽기는커녕 샀던 기억조차 없는 책들이었다. 10권 중 읽은 것은 단 두 권. 나머지 8권 중 두 권 정도는 앞부분을 살짝 읽다 말았고, 6권은 아무런 기억이 없는 것을 보니 펴보지도 않은 채로 몇 년 뒤 중고서점에 정리해버렸나 보다. 작년부터 책을 다시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공백 기간이 길었다. 물론 아주 읽지 않았던 … [Read more...] about 재미있는 책을 고르는 법
“여대가 왜 있어야 해?”
다른 분 담벼락에서 '여대의 필요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남자들이 왜 여자들끼리만 몰려있는 공간에 그토록 반감을 갖는지 잘 모르겠다. 지하철 여성 전용칸도 그렇고 각종 '여성 전용'의 어떤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갖는 모습을 많이 봤다. 여자들이 '비혼 비출산 선언'을 하는 데 대해서도 엄청난 조롱을 하거나 반감을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욕하고 무시하는 '메퇘지년들'이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고 그냥 우리끼리 잘 먹고 잘살겠다는데, 그럼 늬들도 좋고 우리도 좋은 거 아닌가? … [Read more...] about “여대가 왜 있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