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친들과의 연애를 대부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P에게는 단 한 명의 구질구질한 ‘구남친’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구질구질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그는 오히려, ‘나쁜 남자’였다. 나쁜 남자와 못난 남자 사이 P는 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겨울의 한기가 떠올랐다. 가을에 만나 다음해 여름에 헤어졌으니 네 계절을 모두 났는데도 P에게 그와 보낸 시간은 온통 겨울빛이었다. 어느 눈 오는 날 연락이 되지 않는 그를 보러 신림동 고시촌 꼭대기까지 … [Read more...] about 참을 수 없는 구남친의 찌질함에 대하여
그알싶 세월호 편을 보고
어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세월호 편에 방영된 내용은 엄밀히 말하면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알싶 제작진이 독자적으로 오랫동안 추적, 탐사한 정보들을 내놓았다기보다는, 그간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온 여러 사람들의 작업을 재구성하여 '지상파 방송화'한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런 기사들을 따라 읽어오지않은 내게는, 새로운 내용이 있었다. 1주기 무렵 세월호 사건의 법정 기록을 정리한 『세월호를 기록하다』를 읽고 몇 가지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었다. 일단 … [Read more...] about 그알싶 세월호 편을 보고
“연애, 꼭 해야 해?”
“연애 꼭 해야 해?” C가 물었다. 그녀는 스무 살 때의 첫 연애 이후 만 7년째 연애 없이 지냈다. 같은 반 동기의 구애로 시작된 그녀의 CC 생활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둘이 함께 있으면 함께 있다는 이유로, 둘 중 하나만 있으면 하나만 있다는 이유로, 타인들이 그들의 상황에 관해 이것저것 묻거나 재미 삼아 몰아가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분위기가 특히 싫었다. 연애가 끝났을 때, 그녀는 마음속 돌덩이 하나를 치운 기분이었다. 반 생활은 그만뒀지만, 미련은 없었다. ‘비연애’에 … [Read more...] about “연애, 꼭 해야 해?”
그알싶 소라넷 편을 보고
일요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점을 먹고 나니 페북 타임라인이 어젯밤 방영된 그알싶 소라넷 편으로 뒤덮여 있다. 원고를 뒤로 한 채 1,000원을 결제하여 시청했다. 중반쯤이었다. 인터뷰이로 등장한 '야노'라는 소라넷의 '베스트작가'가 자신이 한 짓(몰카 촬영 및 유포, 여자친구의 나체 사진 촬영 및 유포, '초대남'으로 가담한 특수 강간)에 대해 너무나도 담담하고 당당하게, 때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가 한 짓보다도 놀라웠던 건 그의 반성한 적 없을 확신이었다. 그는 알몸이나 … [Read more...] about 그알싶 소라넷 편을 보고
당신이 되어본다
“자기가 그럼 자기중심적이지, 남 중심적이야!” 드라마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에 나오는 이미숙의 대사다. 엄마의 지나친 간섭으로 삐걱대는 결혼 준비 과정에 지친 딸의 질타(“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자기 생각만 해? 엄마는 너무 자기중심적이야”)에 이미숙은 오히려 역정을 내며 이렇게 답한 것이다. 우리가 힐난의 의미로 쓰는 ‘자기중심적’이란 말이, … [Read more...] about 당신이 되어본다
연애 칼럼니스트에게 데이트 폭력이란?
#나는연애칼럼니스트다 저는 연애에 관한 글을 씁니다. '연애 칼럼니스트'란 명칭은 여전히 낯간지럽고, 통용되는 '연애칼럼'과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믿고 싶지만, 아주 심플하게 이야기하면 연애에 대한 글(칼럼)을 쓰니 연애 칼럼니스트인 것이지요. 어쨌거나, 저는 연애에 관한 글을 씁니다. 연애가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고, 널리 권하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의미 있는 타인과의 지속되는 깊은 관계의 경험은 우리의 삶을 뿌리부터 흔들어 바꿔놓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더 나은 인간이 … [Read more...] about 연애 칼럼니스트에게 데이트 폭력이란?
연애에 대한 몇 가지 인문학적 고찰
※ 이 글은 해피브릿지 사내 인문학 강연을 위한 강의록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인생은 짧다, 연애하라” 삶의 유한성을 상기시키며 준엄하게 연애를 명하는 이 문구는 지난 3월 간통죄 폐지 이후 한국에 재상륙한 기혼자용 데이팅 사이트 ‘애슐리 메디슨’의 광고 카피다. 여기서 연애는 서로 헌신하는 윤리적 관계로서의 사랑(love)이라기보다는 혼외정사(affair)에 가깝지만 문구는 어쨌거나 강렬하며, 우리들의 시선을 끈다. 연애를 끌어오는 것은 우리 시대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 중의 … [Read more...] about 연애에 대한 몇 가지 인문학적 고찰
다자연애, 정확한 사랑의 실험
지난 2월 <한겨레21>은 '다자연애'를 특집기사(“두 사람을 동시에 사귈 생각 없니?” 그날부터 ‘열린 연애’가 시작됐다)로 다뤘다. 다자연애란 독점적 연애와 대비되는 말로, 세 명 이상의 사람이 합의 하에 동시에 연인관계를 맺는 것을 뜻한다. 기사에 힘 입어, 다자연애에 관한 미디어의 관심이 높아졌던 상반기였다. 다자연애에 대한 높아진 관심 그 역사는 오래이나 한국에서는 활발히 논해진 적 없는 다자연애가 새삼 미디어의 주목을 받을 때는 대중문화 영역에서 논쟁적인 … [Read more...] about 다자연애, 정확한 사랑의 실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