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점을 먹고 나니 페북 타임라인이 어젯밤 방영된 그알싶 소라넷 편으로 뒤덮여 있다. 원고를 뒤로 한 채 1,000원을 결제하여 시청했다.
중반쯤이었다. 인터뷰이로 등장한 ‘야노’라는 소라넷의 ‘베스트작가’가 자신이 한 짓(몰카 촬영 및 유포, 여자친구의 나체 사진 촬영 및 유포, ‘초대남’으로 가담한 특수 강간)에 대해 너무나도 담담하고 당당하게, 때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가 한 짓보다도 놀라웠던 건 그의 반성한 적 없을 확신이었다. 그는 알몸이나 성기 사진이 웹상에 공개된다고 해도 얼굴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윤간당하고 사진 찍혔다고 해도 술에 취해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성들에게도 별 피해가 없다고 말했다. 이 정도로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가 있다니 어이가 없다는 투였다.
초대남 경험이 있는 다른 소라넷 유저는 초대남으로 초청되어 갔다가, 눈이 가려진 채 결박되어 있는,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는 못했지만 하지 말라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즉 이런 식의 윤간에 동의한 적이 없음이 분명한 여성을 보고 돌아 나오는데 “줘도 못 먹냐”는 소릴 들었다고 한다.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났다.
나는 여전히 젠더/소수자 감수성이라고는 짜내야 겨우 있고,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에 공감도 잘 못하고, 페미니즘에도 오랫동안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잘 알지도 못하면서), 명예남성의 길을 추구하며 살아왔지만,
결정적인 순간 피할 수 없이 여성에게 이입을 한다.
결박 당해 윤간을 기다리는 여성의 공포, 믿었던 남자친구에 의해 섹스영상이 유출된 여성의 배신감과 두려움, 신상이 털려 낯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온 욕과 야한 농담, 성기 사진, 자위 영상 등과 시시때때로 마주해야 하는 여성의 수치심, 분노, 공포, 막막함, 불안이, 그러지 않으려 해도 엄습한다.
그런 감정들이 휩쓸고 지나가고 나면 분노를 가눌 수가 없다. 저 새끼들이 똑같이 당했으면 좋겠고(어떻게 해야 그 여성들이 느낀 고통을 그 새끼들도 똑같이 느끼게 할 수 있을까?), 내가 돈만 있다면 청부업자를 고용해서 배로 되갚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적 복수에 대한 열망은 자주 반사회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꼭 처벌받았으면 좋겠다고만 이야기한다. 하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내 분노의 반사회적 측면이 드러날 때도 있는데,
내 이런 분노를 내 주변의 남성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그들도 기본적으로는 나와 똑같이 생각한다. 저 새끼들이 잘못했고,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고, 피해자들이 불쌍하고, 이런 일들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더 소리 높여 이 문제가 문제라 말하는 남성들도 있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공포와 분노를 공유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너무 쉽게 내 증오가 과도하다고 이야기하고, 굳이 그런 걸 찾아보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보슬아치 거리고 김치년 거리는 웹상에 넘쳐나는 게시물과 댓글들에 내가 흥분할 때 그래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냥 무시하라고 이야기한다. 쌓아왔던 증오와 분노를 터뜨리는 여성들에게, 그래도 미러링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너무 쉽게 이성적이고, 너무 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게 그들의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벽을 느낀다는 것이다. 더불어, 나 역시 내가 피해자일 수 없는 어떤 문제에 대해 이런 벽이어왔겠구나 깨닫는다.
이 과도한 분노가, 사태의 분석에도 해결에도 도움되지 않는 이 지나친 분노가 의미 있을 수 있다면 내가 내 한계를 밀어내는 한에서만 그러하리란 것 역시, 깨닫는다.
원문: 정지민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