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이 파리의 얼굴이라면
‘예술의 도시’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파리를 떠올릴 것이다. 전 세계적인 명성의 루브르 박물관을 필두로 명작들이 즐비한 오르세, 퐁피두 미술관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자리한 갤러리, 센 강변에서 중고 책과 고서적을 판매하는 부키니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도시 전체에서 예술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에펠탑은 누가 뭐래도 명실상부한 ‘파리의 얼굴’이다. 그런데 에펠탑이 파리의 얼굴이라면, 어딘가에는 ‘파리의 머리’ 같은 곳도 있지 않을까. ‘파리의 심장’인 노트르담 성당 맞은편에는, 책을 사랑하는 전 세계인들이 살아생전 꼭 방문하겠다고 생각하는 보석 같은 서점이 있다.
1919년 개업해서 이제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서점, 헤밍웨이가 20대 무명 작가 시절 즐겨 찾았던 것으로 유명한 서점, 영화 〈비포선셋〉, 〈미드나잇 인 파리〉의 배경이 될 정도로 현대 예술가들도 사랑하는 서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서점인 이곳의 이름은 바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이다.
셰익스피어 컴퍼니? 셰익스피어가 세운 회사야?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에서 Company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회사’라는 뜻이 아니라, ‘동호인·동료’라는 뜻으로 쓰였다. 우리말로 풀자면 ‘셰익스피어와 친구들’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1919년 실비아 비치가 차린 서점이다. 당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는 무명 작가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예술인도 함께 어울렸다.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밍웨이, 192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인 『위대한 개츠비』의 피츠제럴드, 영어로 쓰인 소설 중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는 『율리시스』의 제임스 조이스 등 역사적인 문인들이 모였다. 뿐만 아니라 초현실주의 사진작가인 만 레이, 초현실주의 화가인 막스 에른스트까지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도 어울렸다. 이곳은 취미나 기호를 같이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살롱에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는 프랑스 특유의 살롱문화가 꽃핀 곳이었다.
1914년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면서 실비아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문을 잠시 닫게 됐다. 후에 2대 사장이 되는 조지 휘트먼(George Whitman)은 1958년 ‘르 미스트랄(Le Mistral)’이란 이름의 서점을 파리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실비아 비치와 친분이 있던 그는, 그녀가 사망한 이후 그녀의 장서들을 모두 인수하고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을 맞은 1964년 공식적으로 간판을 새로 달았다. 지금은 지금은 조지 휘트먼의 딸인 실비아 비치 휘트먼이 3대 사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약간의 노동, 책을 읽겠다는 약속, 그리고 한 페이지의 자서전이면 누구나 무료로 묵을 수 있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누구에게든 ‘무료 숙박’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을 회전초라는 뜻의 ‘텀블위드(Tumbleweeds)’라고 부른다. 텀블위드가 되기 위해서는 ‘몇 시간의 노동, 매일 책을 읽겠다는 약속, 그리고 한 페이지의 자서전’을 쓰는 것만 하면 된다. 이것만 지킨다면 무명 작가든 유명 인사든 나이, 인종, 성별, 학력 수준 무엇도 상관없이 머무를 수 있다.
최대 6명까지 머무를 수 있기 때문에, 함께 머무는 다른 텀블위드들과 책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지금까지 약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책으로 둘러싸인 침대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갔다. 누군가는 몇 줄짜리 시를 남기기도 했고, 누군가는 한 페이지를 꽉꽉 채운 자서전을 쓰기도 했다. 3대 사장인 실비아 비치 휘트먼은 이들을 엮어 『Shakespeare and Company, Paris: A History of the Rag & Bone Shop of the Heart』이라는 이름의 책을 내기도 했다.
딱히 돈이 되는 것도 굳이 왜 ‘무료 숙박’을 제공하는 걸까. 그 이유는 2대 사장이었던 조지 휘트먼이 서점 한편에 새겨놓은 이 문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낯선 이를 불친절하게 대하지 말아라, 위장한 천사일 수도 있으니
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
1935년 조지 휘트먼은 젊은 시절 주머니에 40달러만 넣은 채 걷고, 히치하이킹하고, 열차를 무임 승차하며 말 그대로 회전초처럼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미국을 방랑했다. 그는 이 여행에서 아슬아슬한 순간을 많이 만났다. 이질에 걸린 채 물도, 식량도 없이 3일 내내 걷기도 했다. 그러다 생면부지의 마야족 사람에게 간호를 받는 등, 수많은 낯선 사람에게 따뜻한 마음을 선물 받았다.
이를 잊지 않았던 휘트먼은 보답하는 마음으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텀블위드를 시작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 메일 한 통만 보내면 누구든 텀블위드가 될 수 있다.
작가들을 위한 따뜻하고, 쾌적하고, 멋진 곳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1920년도에도 작가들에게 따뜻한 공간이었다. 지금은 헤밍웨이가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지만, 당시에는 이렇다 할 작품도 없는 무명의 가난한 작가일 뿐이었다. 책을 살 돈도 없던 그에게 실비아 비치는 무료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주었다.
그 무렵 무척 가난했던 나는 오데옹 거리 12번지에 있는 실비아 비치의 대여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책을 빌리곤 했다. 겨울이 되면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쌀쌀한 거리에 있는 그 서점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입구에 커다란 난로를 피워 놓았다. 따뜻하고, 쾌적하고, 멋진 곳이었다.
- 헤밍웨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Moveable Feast)』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무명의 헤밍웨이에게 문학과 예술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공간, 작업실 삼아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는 이때를 회고하며 ‘덕분에 좋은 책을 많이 읽게 됐고 그 덕분에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명의 그에게 다정한 마음을 나눠주었던 실비아 비치 덕분인지,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는 파리에서의 나날들이 축제 같았다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젊은이로서 파리에서 살아보게 될 행운이 있다면, 그렇다면 파리는 이동하는 축제(A moveable feast)처럼 당신의 남은 일생 동안 당신이 어디를 가든 당신과 함께 머무를 것이다.
- 헤밍웨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없었다면 20세기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Ulysses)』도 없었다. 난해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유명한 이 책은, 당시 연재하던 미국의 문예잡지에서 내용이 부도덕적이라며 게재를 금지당했다. 그러나 소설의 가치를 알아보았던 실비아 비치는 1922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책을 출판했다. 덕분에 고전 중의 고전으로 불리는 『율리시스』가 존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갈 곳 없는 무명 작가들에게 글을 읽고 쓰게 돕는 곳이자, 영문학계의 걸작들로 평가받는 온갖 ‘문제작’들의 산실이었다.
근데 이름도 셰익스피어고 영문학 서점인데, 왜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에 있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파리에 위치한 영문학 전문 서점이다. 영문학 작품의 출판을 도왔고, 지금도 구하기 어려운 영문학 고서적을 판다. 프랑스 파리에 자리하고 있지만 불문학보다는 영문학에 더 중심을 둔 서점이다.
프랑스인들이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것을 감안하면, 불문학 전문서점도 아니고 영문학 전문서점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서점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왜 파리의 중심부에 영문학의 성지인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설립된 것일까?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을 알아야 한다. 백과사전에 정의된 ‘잃어버린 세대’의 뜻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환멸을 느낀 미국의 지식계급 및 예술파 청년들에게 주어진 명칭’이다. 헤밍웨이가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의 서문에서 인용하면서 유명해졌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파괴된 유럽과는 달리, 미국은 전후 특수를 누렸다.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금주법, 기독교 근본주의 운동, 남부지역 KKK의 득세 등 암울한 시기를 보내게 된다.
염증을 느낀 미국의 예술가들은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그중에서도 파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번성하던 경제 덕분에 파리로의 이주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적었다. 당시에도 파리는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미국인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그렇게 잃어버린 세대는 파리에서 호화롭고 방종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제임스 조이스, 거트루드 스타인 등 미국의 예술가들이 파리로 모여든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파리에 ‘영문학의 성지’가 생겨난 것이다.
파리 속에 깊이 녹아든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서점이다. 이들은 프랑스 특유의 살롱 문화를 기반으로, 파리를 세계 문학의 중심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다시 말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프랑스 속의 작은 미국으로 분절되기보다는, 파리 안에서 문학이 살아 숨 쉬도록 로컬로 깊숙이 들어갔다. 그래서 이들은 파리가 ‘예술의 도시’가 되는 데 일조했다고도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지금도 계속해서 파리에서 문학이 번성할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잠시 중단되었으나 ‘파리 문학상'(The Paris Literary Prize)란 이름으로 전 세계 신진작가 대상의 등단을 지원하기도 했다. 『율리시스』 출간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함께 율리시스를 읽기도 한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행사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과거에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사람들끼리 어울리며 책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업적을 인정하여 2006년 2대 사장이었던 조지 휘트먼에게 ‘문화예술 공로 훈장(Officier des Arts et des Lettres)’을 서훈하였다. 콧대 높은 파리지앵도 프랑스 정부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단순한 예술가 간 교류의 장을 넘어 미-불간 문화 교류의 장이 되었고, 파리와 전 세계 문학의 발전에 기여한 것이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싶다.
현재 실비아 비치 휘트먼과 함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운영하는 공동대표 다비드 들라네(David Delannet)은 한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그저 책으로 가득한 벽만 본다면, 그것이 전부라면 다시 찾아가지는 않겠죠. 그냥 인터넷으로 사면 되니까요. 그래서 많은 서점은 책을 둘러싼 서비스를 제공해요. 책을 둘러싼 이야기, 공간, 느낌, 경험 당신이 믿는 것에 관한 것을 제공하잖아요. (중략)
진열된 책들은 서로 조화되어 있어요. 그래서 당신이 그걸 봤을 때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어’ 아니면 ‘저 책을 읽고 싶어’라고 생각하게 되죠. 서점에 오면 책을 읽고 싶고 이야기를 알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마음이 더 강해질 겁니다.
- tvN 인사이트 특별기획 다큐, 김영하의 〈책의 운명〉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도 코로나19로 인해 문을 닫을 위험까지 간 적이 있다. 하지만 전 세계의 문학 애호가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파리의 로컬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노력은 헛되지 않았는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그 자리 그곳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책과 문학을 읽게 만들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열려 있는 서점, 파리의 머리 역할을 하는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존속하는 한 파리가 예술의 도시라는 명성은 쉽게 잃지 못할 것 같다.
원문: 경욱의 브런치
참고자료
- SHAKESPEARE AND COMPANY.COM
- ‘문학을 사랑하는 여행자라면? 파리의 명소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 그 안에 숨은 특별한 공간의 정체‘ (tvN)
- 「서점이 책과 예술을 사랑할 때-‘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 (2022.03.06, 아트인사이트)
- 「[유럽 인문학 기행] 9. 파리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2020.05.20 부산일보)
- 「In a Bookstore in Paris」(2014. 10. 21 Vanity Fair)
- 「Shelf mythology: 100 years of Paris bookshop Shakespeare and Company」 (2019. 11. 15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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