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유튜버가 유키 구라모토를 김제에 오게 해?
유키 구라모토가 김제의 작은 시골 마을을 찾아 연주하게 한 유튜브 채널이 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뿐만 아니라 가수 선우정아, 우주대스타 펭수 등이 그를 찾아 김제로 왔다.
대책 없이 연고도 없는 김제에 4,500만 원짜리 폐가를 덜컥 사고 얼떨결에 시작한 유튜브 채널은 현재 30만 구독자를 모았고, 국내 채널 기준 구독자 수 상위 0.5%의 상징 실버 버튼까지 받았다. 전북 김제 한 시골 동네에 위치한 유튜브 채널 오느른(onulun)이야기다.
오느른? 그게 뭔데?
오느른은 MBC 최별 PD가 2020년 4월 전북 김제시 부량면 옥정리에 117년 된 폐가를 개인적으로 충동구매하며 시작됐다. 이후 회사에 기획안을 내고 본격적으로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여 폐가를 고치는 과정, 이웃 주민들과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 평화로워 보이기만 하는 시골 풍경 속의 리얼한 노동까지 시골살이의 모든 것을 담았다.
아래 영상들은 오느른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상들이다.
2020년 6월 오느른의 시작을 알린 ‘4500만 원짜리 폐가를 샀습니다‘는 251.5 만 뷰(22년 1월 기준)를 기록하며 오느른 채널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동영상이 됐다.
첫 영상답게 오느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 영상으로 왜 하필 시골의 이 집을 사게 됐는지, 과연 이 집이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한다. 특히 이 영상은 앞으로 진행될 콘텐츠의 배경인 김제의 평화로운 모습을 아름답게 아주 잘 표현했다.
이 영상에서는 폐가를 고쳐가며 자연스럽게 김제에 녹아들어 가는 최별 PD의 모습과, 그런 최별 PD를 바라보는 김제의 이웃 어르신들이 정감 있게 등장한다. 어르신들의 환대 속에서 최별 PD는 약(?)도 치면서 자연스럽게 김제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느른은 도대체 어떻게 성공한 거야?
오느른의 가장 큰 특징은 영상미다. ‘영상 때깔이 쓸고퀄(쓸데없이 고퀄리티)’라는 감탄 섞인 댓글이 달릴 만큼 매주 올라오는 영상마다 뛰어난 영상미를 자랑한다. 당연히 그럴만한 게 현역 영상 전문가가 작업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카메라 감독이 촬영하면 최 PD가 넘겨받아 이를 편집해서 유튜브에 업로드한다. 언제든 TV에서 방영해도 부끄럽지 않은 퀄리티를 뽑아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제로 지난 21년 MBC 설 특집 다큐멘터리로 편성되어 오느른이 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느른의 성공요인을 단순히 ‘영상 때깔’ 하나로만 퉁치기는 어렵다. 유튜브는 이미 치열한 레드오션이 되어버렸다. 방송국 출신 유튜버가 하나 둘도 아니고, 수많은 영상전문가들을 보유하고 유명 연예인까지 동원한 지상파 방송국 자체 채널들도 유튜브 특유의 문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쓴맛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별 PD는 오느른의 성공요인을 ‘영상미’가 아닌 ‘동시대성’으로 설명한다.
문제는 ‘취향이 얼마나 동시대성을 띠고 있는가’이다. 최 PD에게만 ‘옛날 집’ ‘귀촌에 관한 욕구’가 있었다면 콘텐츠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란 이야기다. 그는 ‘연출자 자신과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하는지’가 중요한 지점이라고 말했다.
- 「‘시골 폐가’ 고쳐 사는 얘기, 28만 명 매료」, 단비뉴스
물론 오느른의 성공요인에 동시대성은 큰 작용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동시대성만으로 오느른의 모든 성공요인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2018년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가 개봉한 이후 고단한 도시를 떠나 시골로 향하는 삶은 빠르게 트렌드로 떠올랐다.
소박하고 단순한 생활을 강조하는 미니멀 라이프스타일 전문지 킨포크(Kinfolk)가 유행했고, 소지섭과 박신혜가 미니멀 라이프를 산다는 내용의 〈숲 속의 작은 집〉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제작되기도 했다. 오느른은 이런 움직임들 이후인 2020년에 등장했으므로, 오느른 이전에도 리틀 포레스트 스타일 감성의 동시대성은 충분히 검증되었다고 판단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왜 하필 비슷한 결의 컨텐츠 중에서도 오느른이 특히 더 주목을 받았는지’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오느른이 더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느른 채널의 주축인 최별 PD 스스로가 〈리틀 포레스트〉 감성에 강하게 반응하는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오느른 구독자들은 영화나 예능에서 보여줬던 잘 짜여지고 연출된 시골스러운 삶을 구경하는 것 아니라, 삶에 지쳐 김제를 찾고 또 김제에서 살아가며 조금씩 치유되는 최별 PD의 모습에 더 큰 진정성을 느끼고 감동을 받았기에 오느른이 주목 받을 수 있었다.
버려진 집을 고치면서, 나에게 방치되었던 나도 조금 고쳐졌다
최별 PD는 장관상도 받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프로그램도 맡아 제작하며 나름 잘 나가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코로나19로 야심차게 기획했던 프로젝트가 허무하게 무산되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고 ‘이게 참, 괜찮은 인생인 걸까?’라는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그때 쓴 글이나 기억나는 저의 표정들, 순간들이 엄청 화가 나있었던 것 같아요. 세상에 대한 화도 있지만 저에 대한 화가 너무 큰 거예요. 거의 맹목적으로 PD가 되고 싶어서, 또는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는데 막상 손에 쥔 게 하나도 없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꿈을 이루는 순간이 지나고 나니까 제 인생에는 이 직업밖에 없는 거예요. 직업 외의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는 느낌이었어요.
-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채널예스>
그러다 문득 평소 관심이 있던 시골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서울 근처인 강화도 쪽을 알아보다가 집값이 너무 비싸 점점 싼 집을 찾다가 전북 김제까지 오게 됐다. 집까지 진입하는 길도 좋고, 뭐 살 때 항상 말리는 친구가 ‘나라면 산다’라고 인정까지 해주니 집을 본 바로 그날 가계약까지 하게 됐다. 그리고 이 폐가를 새로 고쳐가면서 그는 집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고쳐지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자존감이 채워진 느낌이에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만약에 내가 PD를 그만둔다면 난 과연 쓸모 있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 일 말고 특별히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일이 무너졌을 때 저도 같이 무너진 거고.
근데 처참했던 폐가가 고쳐지고 새로운 공간이 되는 걸 보면서 어쩌면 나도 다른 곳에 쓸모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폐가 고치고 사는 유튜버 오느른이 말하는 진짜 휴식」, Sikgu
동네 친구 1호인 아흔다섯 할아버지, 이웃사촌 중년의 이여사님 같은 어른들과 함께 시골 살이를 하다 보니, 폐허가 사람이 살아갈 집으로 점점 변화하는 것처럼 그의 삶의 태도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최별PD는 지금까지의 삶이 괜히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살았음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약간 허탈하기도 했어요. ‘뭘 그렇게 열심히 살았나, 왜 그렇게 속 끓이면서 살았나, 어차피 다 갈 데로 갈 텐데’ 싶은 거예요. 제 PD 인생을 봐도 항상 일을 열심히 했는데, 그렇게 했던 것보다 <오느른>이 훨씬 잘 됐잖아요. 그것도 너무 웃긴 거예요.
-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채널예스>
그가 시골살이를 하며 느낀 일련의 깨달음은 모두 영상으로 기록되어 오느른 채널에 올라간다. 오느른은 겉에서 보면 시골살이 Vlog이지만, 안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시골살이를 좋아하는 최별 PD의 치유와 성장 이야기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그 고민을 나누고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진심담긴 과정이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걸까’를 고민하는 오느른 구독자들에게 어필했다고 생각한다.
굳이 시골에 오지 않아도 시골을 느끼게 하는, 오느른
뉴로컬을 공부하며, 매력적인 로컬 브랜드를 설계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오느른은 세 가지를 알려준다.
가장 먼저, 오느른은 김제의 ‘시골스러운’ 경험을 온라인 영상컨텐츠로 전환함으로써 굳이 김제에 오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 누구나 편하게 김제의 로컬성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지금까지 로컬의 경험은 오프라인으로 특정 지역의 맛집이나 관광지를 찾는 것이 물리적 경험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뉴 로컬 시대에는 오느른이 잘 보여준 것처럼 물리적으로 특정 지역을 방문하지 않아도 그 지역성을 편하게 경험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경험할 수 있는 채널이 새롭게 확장된다는 것은 로컬 브랜더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오느른의 경우 구독자들을 위한 비영리 카페 ‘오,피스’를 운영하는데, 유튜브 채널 이외에 별다른 홍보채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지도상에 주소지도 등록되어 있지도 않고, 좌석도 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월 600여 명 정도 방문하는 매력적인 곳이 되었다. 이는 기존의 방식과 달리 온라인을 베이스로 삼아 만든 전국적이며 강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오프라인을 향해 확장하는 방식의 로컬 컨텐츠가 충분히 가능함을 시사한다.
둘째로, 오느른은 배경이 될 지역 자체보다 로컬 브랜더 개인의 역량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오느른은 보통 사람들에게 익숙한 로컬 지역인 제주, 강릉, 부산 등이 아닌 김제를 배경으로 한다. 김제는 인구가 9만 명 밖에 되지 않는 소도시일 뿐만 아니라 잘 알려진 관광자원도 많지 않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도시이기에 제주나 강릉 같은 도시에 비하면 김제에는 사실상 로컬 브랜더에게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느른은 김제가 가지고 있는 날것의 ‘시골스러움’을 잘 표현하여 그 지역성을 살리는 컨텐츠를 만들어 냈다. 성심당이 대전을 빵의 도시로 만든 것처럼, 테라로사가 강릉을 커피의 도시로 만든 것처럼 오느른도 나름대로 김제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 비록 오느른은 전통 로컬기업들과는 달리 낯선 지역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플레이어이지만, 이들만큼이나 아주 자연스럽게 로컬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이를 브랜드화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마지막으로는 오느른은 로컬 브랜드를 기획하는 기획자와 브랜드가 합일이 되는 ‘브아일체’의 경지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서 오느른의 성공요인은 최별 PD 스스로가 시골집에 관심이 있었고, 또 집을 고치고 이곳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철저히 계산된 연출 아래 연기자가 연기했을 때는 오느른이 보여준 깊이있는 고민과 진정성 있는 치유의 과정은 나오기 어렵다. 자연스럽게 영상에 녹아들어 간 고민과 진정성은 지금의 오느른을 있게 한 가장 큰 경쟁력이다.
거대 자본과 엄청난 인플루언서들의 지원을 등에 입은 로컬 브랜더가 아니라면, 트렌드에 편승한 그럴싸한 브랜드 전략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본인의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과 자연스럽게 자신의 페르소나가 녹아들어가는 브랜드를 기획하고 이를 실행해나가는 ‘브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하며 브랜드를 더욱 뾰족하게 만들고 그 브랜드에 공명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가 닿는 것이 더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오느른 채널은 많은 장점을 갖추긴 했으나 아직 완성 된 뉴 로컬은 아니다. 다 갖춘 것 같고 성공하기만 한 오느른에게도 풀어야할 숙제와 고민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느른이 보여준 새로운 접근방식과 그의 성공요인은 새로운 로컬성을 지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하면서도 훌륭하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조금씩 더 나아지는 오느른 채널을 함께 지켜보며 우리 모두 각자가 서로의 삶과 새로운 로컬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서로 각자 원하는 지점에 잘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PS.
놀랍게도 먼저 연락을 준 쪽은 유키 구라모토의 매니저였다고. 유튜브 채널을 보고 ‘유키 선생님과 ‘오느른’의 영상이 닮은 것 같아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주었다는 것이다. 김제에 온 유키 구라모토는 동 틀 무렵 고요한 김제의 장터에서 ‘Dawn’을 연주하고, 수해를 입어 쓰러진 보리밭의 위에서 쓸쓸히 ‘Lake Louise’를 연주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린 영상은, 유키 구라모토가 평범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김제를 거니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영상이 아닐까 한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싶을 때 찾아보시기를.
원문: 경욱의 브런치
참고 자료
- 오느른 유튜브 채널
- 〈최별 PD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시골 폐가’ 고쳐 사는 얘기, 28만 명 매료〉
- 〈폐가 고치고 사는 유튜버 오느른이 말하는 진짜 휴식, MBC 최별 PD〉
- 〈쓰러져 가는 폐가를 4,500만 원에 구입했어요 : 오느른 최별 PD의 머니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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