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되겠냐?
유튜브 시작하기로 했어.
안될걸?
나 진짜 퇴사한다.
못할걸?
새로운 사업을 해볼 거야.
그게 되겠냐?
우리가 무언가를 새롭게 도전할 때면 주변으로부터 ‘안될 걸?’ 같은 부정적인 대답을 쉽게 마주한다. 혼자 설레며 고민하는 순간을 지나 원대한 계획을 용감히 선언하는 순간, 항상 누군가는 찬물을 끼얹는다. 절대 성공할 리 없어.
너무 속상해하진 말자. ‘절대 성공할 리 없어(That will never work)’는 우리만 듣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넷플릭스의 공동창업자 마크 랜돌프(Marc Randolph)가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를 배우자에게 말하자 들었던 말이었다.
우리는 오늘날 넷플릭스가 얼마나 거대한 제국이 됐는지 잘 알고 있다. 마크 랜돌프는 ‘절대 성공할 리 없어’라는 말에 어떤 결과로 대답 해왔을까. 그는 우리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넷플릭스만의 파워풀한 문화나 추천 알고리즘뿐 아니라 또 무엇이 넷플릭스가 성공에 이르게 했는지 알려준다
넷플릭스는 ‘유레카’로 태어나지 않았다
스타트업의 시작을 말할 때 ‘유레카’ 서사는 아주 자주 이용된다. 넷플릭스의 현 CEO 리드 헤이스팅스가 아폴로13 비디오를 늦게 반납하는 바람에 연체료를 40달러나 내게 됐다. 멀리 있는 비디오 대여점까지 가는 것도 귀찮은데 연체료를 내라는 말에 열 받은 그는 넷플릭스를 창업했고 그게 지금의 넷플릭스가 되었다.
이 스토리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넷플릭스의 창업 스토리다. 창업자는 마치 유레카의 순간처럼 ‘연체료 사건’ 같은 이벤트를 계기로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으로 스타트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사실 넷플릭스 사업모델은 마크 랜돌프가 맞춤형 샴푸, 맞춤형 개밥 등 형편없는 사업 아이디어를 계속 계속 생각해내다가 마지막에 도달한 아이디어였다. 그것도 지금 우리가 아는 넷플릭스처럼 콘텐츠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을 미리 구상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우편광고(Direct Mail)’모델을 활용할 사업을 고민하다 보니 결국에 DVD를 우편으로 배달하는 비즈니스에 다다랐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제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갈증을 가진지는 한참 됐다. 아직도 시야가 좁고 볼 수 있는 미래가 머지않은 내게 새로운 사업 기회와 모델을 탐구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왜 내게는 ‘유레카’의 순간이 오지 않는 건지 스스로에게 원망도 많이 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탐구해보고 생각해보다가도 내 머릿속에서 스스로에게 ‘되겠냐?’는 질문을 하는 순간이면 그대로 힘이 쭉 빠져버렸다.
마크 랜돌프는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라는 말에 ‘아무도 모른다’라고 대답하고 싶어 책을 썼다고 했다. 나름대로 작은 장사를 하고 나니 그가 말한 ‘아무도 모른다’의 무게감을 이제는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다. 책에서는 많이 생략되었겠지만, 오랜 기간 마크 랜돌프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얼마나 불안한 마음으로 걸었을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는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그 길을 걸어냈고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라는 말에 ‘아무도 모른다’고 대답할 수 있게 됐다. 넷플릭스를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나도 괜스레 희망을 얻었다.
실리콘밸리의 어마어마하게 똑똑한 창업자들은 유레카 같은 순간 사업 기회를 명민하게 포착하고 20–30대에 제국을 이루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넷플릭스는 에어비앤비나 우버같이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가 아니라 1997년도에 설립되어 닷컴 버블을 이겨낸 20년도 더 된 회사였다. 게다가 공동 창업자인 마크 랜돌프는 1958년생, 리드 헤이스팅스는 1960년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조금 더 힘을 얻었다. 그래, 우리에게 시간과 기회는 충분히 남아 있다. 아직 아무도 모른다.
넷플릭스의 미래는 매출의 3%에 의해 결정됐다
넷플릭스가 결정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순간은 비디오테이프에서 DVD로, 그리고 또 스트리밍으로 넘어가는 그 전환의 시점을 정확히 보고 각 지점을 공략했던 때다.
초창기 넷플릭스가 사업을 구상할 때 초기의 목적은 DVD 대여 서비스였다. 하지만 실제로 서비스를 론칭하고 나니 DVD 대여보다는 판매가 매출에서 압도적으로 더 큰 비중(97%)을 차지했다. 언젠가는 넷플릭스를 압도하는 아마존이나 월마트 같은 다른 거대 소매업체가 이 시장에 뛰어들어 DVD를 판매할 것은 자명했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반드시 DVD 판매가 아닌 대여의 비중을 늘려야 했다.
하지만,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포기하면서까지 대여에 집중하는 시점은 언제가 가장 적절할까. 넷플릭스에게는 그 시점이 대여가 전체 매출에서 3%밖에 차지하지 않던 순간, 아마존과의 매각 협상이 불발된 순간이다. 만약 내가 넷플릭스의 CEO였다면 전체 매출 대비 DVD 대여 매출이 3%에 불과한 시점에 이를 메인 비즈니스로 전환하고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었을까.
부끄럽지만 그동안 나의 의사결정은 상당히 근시안적으로 이뤄졌다. 첫 회사를 고를 당시 IT기업들은 빠르게 부상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가총액 상위에는 엑슨(Exxon), 페트로차이나(Petrochina), 쉘(Shell) 같은 정유업체들이 있었다.
‘아무리 IT 회사가 핫하다고 해도 아직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정유회사를 첫 직장으로 골랐다. 하지만 채 10년도 가기 전에 이제 시가총액 상위에는 IT기업들이 대부분인 시대가 됐다. 회사를 그만두고 장사를 시작할 때도 내 판단의 기준은 ‘당장 돈을 더 벌 수 있는지’였다.
이커머스의 상승세는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미래였지만, 당장의 시장은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이었다. 또 한 번 ‘아직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바뀌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가치보다 지금 당장의 손에 잡히는 현재가치가 더 중요시했던 과거 결정에 후회는 없다. 하지만, 매우 근시안적인 기준으로만 의사결정을 이어오다 보니 멀리 보는 투자를 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넷플릭스는 시장에 맞춰 차근차근 진화해왔고 또 계속 진화한다. 1997년 스타트업 극초기 단계에서 마크 랜돌프는 CEO를 맡아 사람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기반을 닦았다. 본격적인 스케일업(Scale-up)과 경영관리가 필요해진 1999년부터는 성공적으로 Pure Software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매각까지 한 경험이 있는 리드 헤이스팅스에게로 그 역할이 넘어갔다.
리드 헤이스팅스는 2002년 넷플릭스의 나스닥 상장을 성공적으로 완수했고, 넷플릭스가 계속 DVD대여서비스에만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2007년 스트리밍으로 서비스를 확장하도록 이끌었다. 또한 2013년부터는 하우스 오브 카드로 대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런칭하면서 콘텐츠까지 직접 제작, 유통하는 회사로 발전시켰다.
2020년 7월, 넷플릭스는 리드 헤이스팅스와 테드 서랜도스 공동 CEO 체제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테드 서랜도스는 2000년부터 콘텐츠 총책임자를 역임한 사람이다.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중심의 회사에서 콘텐츠 중심의 회사로 다시 한번 무게중심을 변경하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인이다.
시장과 기술은 계속 진화한다. 넷플릭스는 DVD에서 스트리밍으로 진화하고 또 스트리밍에서 콘텐츠로 진화한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에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속도로 알맞게 진화해간다.
넷플릭스가 매출의 3%에 불과한 DVD 대여에 집중하지 못했다면, 넷플릭스는 분명 지금까지 생존할 수 없었다. 나도 지금 진화하지 않으면 언젠가 죽는다고 느낀다. 그동안의 단기적인 호흡을 버리고 좀 더 긴 호흡으로 새롭게 찾는 나의 3%는 어디서 봐야 할까. 아직 막연하기만 하지만 제때 나만의 3%를 찾고 무게중심을 옮길 수 있다면, 미래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아직 아무도 모른다.
성공? 아무도 모른다
마크 랜돌프가 자신의 배우자에게 넷플릭스의 사업구상에 대해서 말할 때 넷플릭스가 ‘Netflix and Chill’이라는 말을 만들 정도의 회사가 될 줄은 전혀 상상 못 했을 것이다. 심지어는 투자를 받으러 다닐 때 넷플릭스의 DVD 대여 모델을 ‘개똥 같은 소리’라고 말하는 투자자도 있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미국 전역에 약 5,000개 이상의 매장을 가진 비디오 대여 업체 블록버스터를 죽이고 살아남았다. 단순히 살아남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스트리밍 시장 가입자의 30%를 차지하는 대제국을 이루었다. 이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것의 첫 출발점은 그가 배우자에게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라는 말을 듣던 순간이다.
이제라도 10년 단위로 미래를 보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그동안 나는 10년 단위 계획은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다닐 당시 세우던 5년 단위, 10년 단위 경영계획은 어차피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내년, 심하면 반년 만에 또다시 짜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이제는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가까운 미래뿐 아니라 반드시 먼 미래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넷플릭스가 매출의 3%에 미래를 걸고 체질 전환을 하며 생존했던 것처럼, 지금 당장의 매출보다 더 큰 미래를 보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언젠가 죽어 버린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10년 전의 과거와 오늘을 비교해보고 다가올 10년을 예상하는 연습을 한다. 10년 전의 우리는 차를 끌고 가서 대형마트에서 직접 식료품을 구입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는 모바일로 쿠팡, 컬리, 네이버 등을 통해서 주문하고 택배로 식료품을 받는다.
10년 뒤에 우리는 식료품을 어디서 사서 어떻게 보관할까. 어쩌면 10년 뒤에는 배민의 딜리처럼 사람이 아닌 로봇이나 드론이 배달하면서 배송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B마트같이 딱 필요한 순간에 딱 필요한 양만큼만 소비하는 식료품 스트리밍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될지 모른다.
유통업계, 그리고 커머스업계는 계속 그리고 아주 빠르게 변화 중이다. 아마존은 ‘당신의 이윤은 나의 기회(Your margin is my opportunity)’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네이버, 쿠팡 같은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 간의 최저가 경쟁 심화로 셀러들의 제품 판매 이윤은 점점 면도날에 가깝게 얇아진다. 게다가 아마존이 PB상품을 키워가는 모습을 보면 기존의 제조, 유통업체들은 자칫 잘못하면 진짜로 절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비디오테이프가 DVD로 옮겨가고 DVD가 On-demand streaming으로 필연적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제품 판매를 통한 마진은 시간이 갈수록 필연적으로 적어진다. 대충 2–3년 존속이 목적이라면 하던 대로 해도 괜찮다. 하지만 10년, 혹은 그 이상을 바라본다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수익 모델을 짜고 변화해야만 살 수 있다.
‘그게 되겠냐?’는 사람들의 비아냥을 무시하고 결과로써 증명하는 경영자들의 스토리는 언제나 가슴을 뛰게 한다. 특히, 마크 랜돌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막막하기만 했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힌트를 얻었다.
사업 아이디어가 짠 나타나는 ‘유레카’ 같은 순간을 기다리지 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탐색해 봐야겠다. 지금 당장의 매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3%는 무엇일지, 어떻게 미리 대응해야 할지 계속 고민해야겠다. 지금은 비록 가능성에 불과해 보일지라도 ‘있으면 좋겠는’ 무언가가 아니라 10년 뒤에 이거 ‘진짜 없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싶은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견해가 좁고 미래를 보는 안목이 좋지 못하다. 하지만, 계속 고민하고 이런저런 시도 끝에 내 나름의 결론에 반드시 도달하리라고 믿는다. 뭔 ‘개똥 같은 소리’냐고?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원문: 경욱의 브런치
함께 보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