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가신다고요? 혹시 여기 들어보셨어요?
제주도에서 가장 제주다운 곳, 제주를 가장 잘 알려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아마도 사람들은 감귤, 삼다수, 하르방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래서 육지 사람은 감귤밭이나 삼다수 공장, 혹은 제주 곳곳에 있는 하르방을 찾아가려 할지도 모른다. 이들 모두 소중한 제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긴 하지만, 제주의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어떤 사람’은 없을까.
제주에는 감귤만, 삼다수만, 하르방뿐만 아니라 2016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녀’도 있다. 해녀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사실 우리가 해녀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다. 특별한 장비도 없이 잠수복과 오리발, 마스크만으로 무장한 채 물질을 하는 모습이 전부다. 그런 우리에게 깊이 있게 제주와 해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곳이 있다.
이곳은 2019년 3월 제주 종달리의 낡은 어판장을 개조해서 시작됐다. 문화체육관광부상, 중소벤처기업부상, 청년벤처기업인상 등을 수상했고 누적 3만 명이 다녀갔으며 에어비엔비가 ‘제주도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곳’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무엇이 그리도 특별하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일까.
제주도 해녀 문화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해녀의부엌
해녀의부엌은 해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연극과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재료로 요리한 다이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본점의 공연은 총 네 가지 주제로 진행된다.
물질하느라 학교에 가지 못한 게 한으로 남은 해녀,
어린 나이에 원정 물질을 떠나 사고를 당한 해녀,
해녀가 되기 싫어 도망쳤다가 가족을 위해 다시 물질을 해야만 했던 해녀 등바다로부터 삶과 죽음을 함께 건네받은 해녀의 역설적 삶을 고스란히 담았다. 메시지는 한결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살아 보자는 내용이다.
- 해녀와 젊은 예술인의 합작 무대, ‘해녀의 부엌’에 가다, 탑클래스
해녀의부엌에서는 해녀의 인생을 소재로 한 연극을 공연한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야기 덕분에, 해녀는 언젠가 한 번쯤 들어본 단어가 아니라 내 눈앞에서 눈물 나는 인생 얘기를 나눠주는 ‘살아있는 한 사람’이 된다. 기념관이나 굿즈에서만 볼 수 있는 해녀가 아니라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할망(할머니), 어멍(어머니)’이 된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실제 해녀분들과 대화하는 시간도 가진다. 관객들이 ‘숨은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몇 미터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심지어는 ‘상어 만난 적 있는지’ 같은 질문을 던지면 해녀가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대답해주는 형식이다. 제주 방언을 쓰는 해녀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기에, 아는 ‘제주 할망’이 생긴 기분이다.
해녀의부엌도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문을 닫은 적 있다. 그동안 해녀의부엌은 공연을 재정비하며 공연당 정원을 줄이고 직원이 직접 서비스하는 등, 서비스의 퀄리티를 끌어올렸다. 덕분에 지금도 만석인 경우가 많다.
본점이 오픈한 지 2년 만인 2021년 11월에는 조천읍에 미디어아트를 가미한 연극 중심의 2호점(북촌)까지 냈다. 두 지점의 운영 방식이 약간 다르다. 본점은 약 20분간 해녀가 직접 출연하는 토크쇼 형식의 공연을 즐긴 후 뷔페식으로 음식을 즐기는 반면, 북촌점은 약 1시간 동안 배우가 이끌어 가는 기승전결이 갖춘 극을 보며 1인 한상차림의 음식을 즐긴다는 점이 다르다.
해녀이자 억척스레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을 경험하는 해녀의부엌
김하원 대표는 제주도 종달리 출신으로 할머니, 고모, 큰어머니가 모두 해녀였던 해녀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한예종에서 연기를 공부했다. 어느 날, 해녀가 채취한 뿔소라, 톳 등의 해산물이 판로를 찾지 못하고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알게 됐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연기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한예종 동기, 선배들과 30년 넘게 버려진 어판장에서 공연을 해보기로 했다.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어촌계 분들과 해녀분들을 모두 모시고 공연과 다이닝을 함께하는 방식을 직접 시연하고 나서야 어렵게 이곳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제 해녀의부엌은 한 해 다이닝으로 사용하는 뿔소라만 5톤을 넘기는 수준이 됐다. 해녀 수입의 60%가량을 차지하는 뿔소라가 팔리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낸 것이다. 동시에 해녀들에게 물속이 아닌 ‘무대’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드렸다.
김하원 대표는 한예종을 입학하면서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 치료 관련 수업을 모두 들었다. 본인 스스로 연기를 배우면서 삶이 치유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배우를 꿈꾸며 연기를 배우기보다는 ‘연기를 활용해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실제로 강남에서 학원을 차려 아동 대상 연극 치료를 해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치유되는 아이들을 보며 연기의 힘을 제대로 느꼈다. 그래서 그런지 해녀의부엌에서도 드라마 테라피(Drama Therapy)적인 요소가 드러난다.
해녀들은 대부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자신의 삶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움츠러든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 이를 치유하고 ‘영웅’으로 만들어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공연을 보면서 너무 좋아하셨다. 어떤 분들은 ‘내 인생이 부끄럽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래 내가 잘 살아온 거네’라면서 오열하기도 했다. 이제는 무대에 서고 관객 만나는 걸 좋아하신다.
해녀의부엌은 관광자원으로서 발굴되지 않았던 ‘해녀’라는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해녀가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 인정받고 치유되는 과정을 만들었다. 또한 그 과정을 함께하는 관객들까지 위로를 선사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제주에서 태어났지만 제주에만 머무르지 않는 해녀의부엌
해녀의부엌은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단순히 제주도에 자리한 특색 있는 레스토랑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체험중심적 F&B모델을 만들어 가려는 것이다. 이미 해산물 채취, 손질 등을 담은 푸드 콘텐츠를 제작하여 펀딩 플랫폼에서 뿔소라 및 뿔소라장을 성공적으로 유통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온라인 몰에서 해녀의 해산물 식품을 판매하는 구조를 준비 중이다.
코로나 시대로 오프라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온라인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김하원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결국 사람은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증명이 될 겁니다. 비대면 시대에 사람과 사람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죠.
사람들은 한 번의 오프라인 경험에서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게 될 것이다. 이 흐름 속에 해녀의부엌은 가장 제주스러운 경험을 만들어 매력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탄탄히 쌓은 브랜드 경험을 확장해나가며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해녀의부엌의 미래가 기대된다.
원문: 경욱의 브런치
참고
- 「해녀 삶과 해산물… 연극에 요리를 더한 ‘해녀의부엌’」 한겨레
- 「뿔소라 먹으며 눈물 흘리며… 2080 해녀와 딸들이 만든 제주도의 특별한 부엌」중앙일보
- 「해녀와 젊은 예술인의 합작 무대, ‘해녀의 부엌’에 가다」 topclass
- 「”해녀의 부엌’으로 제주 엄마들의 이야기를 전하다’ 한예종 출신 예술인 김하원 대표」
- 「“제주 바다, 제가 지킬 거예요”」 여성경제신문